[Soul essay] 축제가 끝난 도시
가족들과 함께 여행 중이다. 여행 첫 날인 어제의 목적지는, ‘창녕군 부곡면 온천중앙길’이었다. 예전 같으면, ‘부곡 하와이’ 한 마디로 설명이 되는 동네였지만, 작년 5월에 폐업을 한 이후로 ‘부곡 하와이’는 더 이상 이 동네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이 동네에 들어서면, 아직 땅 밑으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맨홀 뚜껑마다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부곡 하와이는 끝이 났지만, 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섭씨 78도의 온천수는 아직 이 동네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사거리 도로 한 복판 맨홀 뚜껑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장면은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이곳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외침 같기도 하고, 깊이 내쉬는 한숨 같기도 하다.
부곡 하와이의 방문객을 맞기 위해 생긴 호텔과 숙박 시설들은, 부곡 하와이 없이 자력으로 방문객을 끌어 모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자구책의 일환으로, 숙박 시설들은 손님의 특성에 맞게 테마형 객실을 준비했는데 어제 우리가 묵은 모텔은 이 지역 숙박 시설 중에서도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객실 안에 미끄럼틀과 뽀로로 캐릭터 테마의 복층 침실을 갖추고 있으며, 온천수가 콸콸 나오는 가족탕도 완비되어 있다. 주말엔 한 달 후까지 방을 구할 수가 없고, 그나마 평일엔 한 두 객실 정도 자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아내가 폭풍 검색과 인터넷 서핑을 통해, 우린 이 모텔 ‘딸기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어떤 호텔은 학교 축구팀의 전지훈련 숙소 전문으로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호텔 벽면에 몇 군데 축구팀에 대한 환영 인사를 담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으니 말이다.
부곡 하와이의 위상
1979년에 전국 최초로 워터파크형 온천 풀장으로 개장한 부곡 하와이는 단순한 워터파크 이상의 위상을 지녔었다. 해외여행이 활성화 되지 않은 80년대에 이곳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영남권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단체 차량이 수없이 오갈만큼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유명 가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곳 온천수는 전국적으로도 수질이 좋기로 소문났는데, 온천수라고 해도 다시 데워서 내놔야 하는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수온이 너무 높아서 오히려 냉각기를 가동해야 할 정도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건, 한 30년 전쯤이었다. 교회 집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교회 성도들의 야유회에 함께 나서게 된 것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2시간 남짓한 거리를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수영이라곤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해본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곳과의 첫 대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무대에서 이름 모를 가수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던 풀장은 축구장보다도 커 보였다. 음악 소리, 사람들이 들뜬 표정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걸 종합할 수 있는 단어는. ‘축제’라는 말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 난 흑역사 하나를 썼다. 그간 난 이런 초대형 풀장은커녕 작은 수영장도 가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평소 계곡에서 하던 대로 팬티만 입고 수영장 물로 뛰어 들었던 것이다. 함께 갔던 엄마도,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다른 성도들도, 수영장에 정해진 복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분들도 나의 팬티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물로 뛰어든 직후, 수영복과 수영모 미착용을 이유로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물 밖으로 나와야 했다. 에덴의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열린 부끄러움에 대한 인식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인식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열렸고, 난 탈의실로 향하는 내내 벌거벗고 있는 듯한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벌거벗고 있는 듯한’은 좀 순화된 표현일 수 있다. 젖은 팬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하면, 난 실제로 벌거벗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부끄러움이 알려질까 봐, 크게 화도 못 냈다. 내 생애 첫 수영용품을 그곳에서 구입했고, 다시 버스를 탈 때까지 녹초가 되도록 물놀이를 했다. 내 부곡하와이 방문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언제나 기억 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은퇴한 시설
가족탕에서 35개월된 첫째 딸, 8개월된 둘째 딸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다. 아이들의 힘을 최대한 빼고, 일찍 재울 계획을 세웠다. 재우고 글 한 편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책도 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정은, 아이들의 힘이 빠지는 만큼, 내 힘도 빠진다는 사실이다. 뽀로로 이불 위에 아이들을 차례로 재우고 노트북을 켠지 얼마 안 되어 눈이 스르르 감겼다. 노트북을 배고 자도 좋을 만큼 달콤한 잠이 몰려왔다. 창녕군 부곡리 온천중앙길 밑으로 여전히 섭씨 78도로 솟구치는 온천수는 그렇게 힘을 과시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고 노곤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다음 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고 동네를 빠져 나오는데, 동네 입구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부곡하와이’를 마주했다. 폐업의 사유는 복합적이었는데, 초대형 현대식 워터파크가 전국 각지에 생겨나 수익이 크게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고, 그 와중에 경영진의 횡령 등의 부정도 있었다고 한다. 부곡하와이 앞에는, 전 경영진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직원들의 플랜카드가 여러 장 걸려 있었다. 부곡하와이의 폐업과 함께 그 안에서 손님들을 맞던 직원들도 직장을 잃었다.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아직도 부곡리를 흐르는 온천수처럼 그들도 건재하기를,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기를 바랐다.
동네를 빠져 나와서, 백미러로 보이는 ‘부곡하와이’의 퇴락한 시설이 왠지 편안해보였다. 한 평생 열심히 일하고 얼마 전 은퇴한 김 차장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도 다음 번 이곳을 찾았을 땐, 예전에 ‘축제’로 집약되던 그때 그 분위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창녕군 부곡리 온천중앙길은 점점 멀어졌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러한 것처럼.
평생에 부곡하와이 가본적도 없었는데 폐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어요. 다시 예전처럼 그 건재함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글을 읽어내리면서 아이들의 힘을 최대한 빼게 한 후 일찍 재우려 했던 쏠메이트님의 마음에 너무 공감이 가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어요. 아이 재우려다 저도 잠들어버리기 다반사였거든요.^^
가보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 그곳에 대한 동경은 다들 갖고 있었나봐요. ㅎ
어떻게든 빨리 재우려고 여러가지 수를 쓰는데 성공률은 낮은 거 같아요ㅋㅋ 육아맘 화이팅입니다^^
부곡하와이 ~ 30대분들은 대부분 부곡하와이의 추억을 가지고 있겠죠 저도 작년에 아이를 데리고 부곡에 가족탕을 다녀왔는데요 뜨거운 온천수의 보드라움은 잊을수가 없네요 지난 연말에는 예약이 꽉차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답니다 조금 쇠퇴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가족탕이라는 컨셉으로 다시 예전의 활기를 찾을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아이와 가족탕을 다녀오셨군요^^ 가족끼리 오붓하게 온천을 즐기기에 좋았어요. 새로운 돌파구로 방문객을 불러모으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ㅎ 저도 기회가 되면 또 가보려고 합니다.
부곡하와이 유치원때 갔던 사진들이 생각나네요ㅎㅎ 딸아이랑 신랑이랑 다녀와야겠네요ㅎ
네 가족들과 가기 좋다라구요. 숙박시설 체그인하기전에 로얄호텔 1층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아이 놀아도 됩니다. 차만 사마시면 키즈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말로만 들었던 부곡 하와이...
쏘울메이트님의 흑역사와 함께
ㅋㅋ 이런 만화들은 대체 어디서 얻는 겁니까. 볼때마다 빵 터집니다ㅎㅎ
그간 모은 짤방+구글신의 은총입니다. 빵 터지셨다니 똘이장군도 기뻐할 것 같습니다 :D
웃음 지뢰네요. ㅋ 저도 이따금씩 매설하고 싶네요. 좋은 날 되세요.
이글 읽다가 온천을 그리게 됐네요 ㅎㅎㅎ
우쿨렐레를 취미로 하다보니 어찌하다 부곡하와이(? 딱히 상관은 없어보이지만 ㅎㅎ)를 소식을 바로 접하게됐는데 그런 추억이 있었군요 글읽고 나니 마지막사진이 정말 편안하고 내려놓은 느낌이 드네요
네 쇠락한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편안해보이더라구요ㅎ 부곡하와이에서 우쿨렐레 공연도 했나보죠? 상관관계 추정중ㅎ
앗 그림 잘 봤습니다. 역시나 멋져요!^^
아 그러면 좋은데 큰 연관관계는 없고 그냥 우쿨렐레가 하와이 악기다 보니 우쿨주변분이 한국 하와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얘기하셨어요 ㅎㅎ
아하ㅋ 재밌는 연관이네요~~ 한국 하와이
가상화폐 평가에서 스팀이 B-래요! (5위)
^^
좋은 컨텐츠가 즐거운 스티밋을 만드는거 아시죠?
좋은 평가! 굿입니다요^^
어렸을때 가족들이랑 부곡하와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폐업했는지 몰랐네요. 많은 문제가 있었군요..
저도 부곡하와이하면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 그때 한창 수영을 배우던 꼬꼬마였는데, 과도한 자신감에 어린 동생을 데리고 어른풀에 들어갔다가 구조대원들한테 구조된적이 있어요..^^;;; 그 생각하면 아직도 동생한테 미안해져서 잊을수가 없네요..(동생이 그날 많이 놀랐었거든요;;)
부곡하와이 체험자시군요ㅎ 엄청난 기억을 갖고 계시군요~~ㅋ 동생도 부모님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잊을수 없는 장소겠어요!
부곡하와이가 역사속으로 사라진줄도 몰랐네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재밌는 에세이 한편을 읽은 느낌이네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부곡하와이를 자주 가지도 않았는데 없어졌다는 소식은 왠지 슬펐어요. 동경하던 시설이라 그런가봐요ㅎ
저도 어릴적 엄마가 단체 관광 가시는걸 봤는데.. 따라는 안 갔지만 ㅋ 폐업 소식을 들으니 왠지 세월이 무섭고 변화된 세태가 긴장되고 그러네요. 오늘 하루도 힘차게 화이팅입니다!
네 단체 관광의 천국이었죠ㅋ 새로운 변화에 못버티고 넘어지는 것이 앞으론 더 많을 것 같네요. 이렇게 글로나마 추억하는 수 밖에요.
여행 중이시네요^^~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한 여행 하시길 바래요~~^^~
글이 술술 잘 읽혀지네요~
네 감사합니다.^^ 프리미엄 아울렛와서 여행의 마지막 일정 소화하고 있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