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에 취약한 대중

in #kr-science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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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세뇌에 가까운 목적을 지닌 홍보물들을 볼 수 있다. 홍보의 대상은 사이비 종교, 사이비 이론, 사이비 사상에 이르며 최근 한국에서는 정치적 목적까지 지닌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번 이러한 자료들에 빠져들면 밴드웨건 효과, 확증편향 등에 대해 신뢰가 강화되어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힘드니 처음부터 빠져들지 않는게 상책이다. 왜 이런 자료들에게 쉽게 속을까?

인터넷에서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어휘가 '팩트'이다. 이 팩트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팩트라 주장하며 내미는 자료는 신뢰도를 얻는 모양이다. 사실은 우스운 일이다. 우선 팩트라는 외래어는 표현의 폭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한국어는 팩트라는 단어가 필요할 정도로 빈약한 어휘를 지니고 있지 않다. 분명 '나는 인간이다'를 '내가 인간이라는건 팩트다'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가 팩트라는 표현을 듣는 분야는 주로 사회 분야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실이라 할 수 있는 이론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현상들을 효과적으로,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반 지식이 부족하다. 혹은 기반 지식은 충분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에는 그저 각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통찰들이 있다. 이 통찰들 중에는 위대한 것들도 있지만 이를 Fact라 부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왜 인터넷에서는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에 '팩트'라는 표현이 유행했을까?

통찰은 형태가 중요하지 않다.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한문장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대중들에게는 정말 위대한 통찰을 담은 설명보다도 수식, 화학식, 그래프, 표, MRI 등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료들이 포함된 설명은 전문적인, 신뢰도 높은, 팩트에 기반한 설명이고, 단순히 활자만 이용한 설명은 신뢰도 낮은 '뇌피셜'이다.

심지어 글만으로 이루어지는 설명에서도 대중들에게 착각을 줄 수 있다. 주장, 설명과 관계 없으며 뒷받침 할 근거로 작용할 수 없음에도 전문적인듯 보이는 표현을 섞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의 신뢰도는 굉장히 높았다. 실험자들이 '나쁜 설명'으로 규정하고 제시한 글에 '전두엽', '뇌검사'와 같은 단어를 섞었더니 나쁜 설명의 신뢰도가 '좋은 설명'을 압도했다. 만약 여기에 수식, 화학식, 표, 뇌사진까지 놓여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사실들은 인류에게 지성과 고고함이 있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비참함을 준다. 여러분들은 비판적 사고를 잃지 않으시길 바란다. 끊임 없이 의심하라.


참고
Deena Skolnick Weisberg, Frank C. Keil, Joshua Goodstein, Elizabeth Rawson, and Jeremy R. Gray - The seductive allure of neuroscience explanations.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20, 470–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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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팩트란 것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데, 거기에 착각과 윤색까지 더하지니 인간 간의 진정한 소통이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매스미디어에까지 더해지면 더욱 와전되는 것이 많을 것 같네요.

정말 별 관련도 없고 논지를 뒷받침 하지 않는 자료라도 전문성 있어 보이기만 하면 그걸 '팩트'라고 인지하는게 정말 안타깝지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사기꾼이 많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교육이 자율적인 사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문에서 제시한 실험처럼 전문성 있어 보이는 자료에만 속는게 아니라 루머에도 민감하지요. 이번 버스기사 사건만 보아도...

본래는 다른사람들이 글을 평가하면서 댓글로 팩트폭력이라고 많이했는데 유행하면서 자기가 쓴글에 스스로 팩트를 다는 경우가 늘더군요. 그리고 그런글일수록 대체적으로 신뢰가 낮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서로 구미에 맞는 통계자료를 많이 제시하는데 통계도 충분히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 있지요. 사실들의 나열이 사실인건 아니니까요.

요새 팩트라는말을 유행어처럼 쓰는것같아요 ㅋㅋㅋ

그 와중에 그게 또 먹히니 안타깝습니다.

이런 글을 볼때마다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어요 (팩트라는 단어가 잘 먹히는 저포함 ?! ㅋㅋ)

약점을 알고 있다면 조금은 덜 하겠지요.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함에 공감합니다. 이걸 알아도 정작 중요한때에는 항상 속고마는 저를 발견합니다 ㅜㅜ

진짜 속았다면 속았다는 자각도 없었을거에요.

설사 자료가 진짜 팩트라 하더라도 그걸 실수로 혹은 일부러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죠. 평일 낮에 집전화로만 설문조사를 해서(즉, 의도적으로 젊은 층 배제) 여론몰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다른 외국의 실험도 유명했죠. 야생 사슴들의 활동반경을 조사하는데, 한 여대에는 항상 숫사슴들만 갔어요. 그래서 숫사슴들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발표했었는데, 나중에 내린 결론은 그저 숫사슴들이 힘이 더 세고 지구력이 좋아서,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있던 그 대학까지 많이 갈 수 있었을 뿐 성별과 상관없다고 밝혀졌죠.

본문에서 인용한 실험의 경우에는 'Brain scans indicate'라는 구절을 삽입한 것만으로 신뢰도가 폭등했습니다. 찬찬히 한국 인터넷 문화를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해당 실험을 시행했다면 훨씬 거대한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교육의 차이겠지요. 수용적인 교육만 거듭한 결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주장조차도 타인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자료에 기반합니다. 전문가도 아닌 이들이 전문성 없이 낸 의견이 '팩트'로 인지되며 확산되기도 하지요.

알다가도 모르는 게 정말 세상인것 같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안다라고 말하다가도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팩트라는 사실 역시 진정 팩트인지 헷깔릴 때가 있습니다.

모른다는 자각이 있는게 앎의 시작입니다.

인터넷 기사만 봐도 제목만 읽고 내용을 읽지 않은채 기사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레퍼런스에 제시한 논문을 검색하지 않으셨겠지요. 제가 악의적인 목적을 가졌다면 충분히 왜곡할 수 있었습니다.

걍 있어서보이기 위해서 쓰는거죠. 쉽게 말해 허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넷 기사에서 자주 쓰는 '충격,경악' 이런 종류일뿐이죠.

사실은 팩트란 표현을 지적하고 싶었던건 아닙니다. 본문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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