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투자자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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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투자방식은 정말 이상하다. 지양해야 할 투자방식일 것이다. 우선, 항상 시장가에 가깝게 매수, 매도를 하는데 매매를 자주하는게 싫어서 주문이 체결되지 않는걸 극도로 꺼린다. 나에게 돈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여유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돈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행복한 시간을 희생하는건 너무 슬픈 일이다. 원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슬픈 일. 나는 그 저울질 끝에 매매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대지만, 귀찮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나는 나스닥에 꽤 오래 가지고 있는 종목이 있다. 업계에서 대표적인 기업이었는데, 이미지가 영 꽝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리막길을 걷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가장 자주 거론되던게 특정 업체가 내놓는 리포트였다. 그 업체의 리포트에서, 내가 투자한 기업은 지는 별이었으며, 대중들의 언더도그마를 자극하는 기업이 새롭게 떠오른 태양이었다. 재밌는 점은, 대중들의 언더도그마를 자극하던 그 기업은 자신들의 인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수적인 시장에서 저항하는 젊은 혈기를 가진 반항아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아마 인터넷에서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던 것에는 그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업체가 이용하는 리소스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왜곡된 리소스가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지표가 그 기업에 불리했다. 어쩌면, 정말로 지는 별이었을지 모른다. 많은 곳에서, 많은 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기업이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내지는 몰락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몰락의 근거로 상기한 통계를 이용했다.

나는 이상한 이유로 그 기업의 미래가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눈 여겨 본 것 중 하나가 임원들 근속년수였다. 몰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임원들의 근속년수를 토대로 반대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그들은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퇴직한 임원들의 행보도 나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였다. 퇴직한 임원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도,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반 직원들의 이직률도 낮았고 근속년수도 길었다. 기업은 수평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임원들은 아이디어를 알아볼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꼭 나쁜 지표만 있는게 아니었다. 기업의 성과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 가령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것에 시선을 뺏겨 사람이라는 중요한 지표를 놓치고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그 기업의 미래가치를 얼마나 높게 보건 나는 비트코인에 훨씬 큰 비중을 두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비트코인이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할 것이기에. 그럼에도 나는 비트코인이 30% 오른 날보다 그 주식이 5% 오른 날 더 기뻐했다. 아마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자만심을 충족시켰기에, 그리고 대중들에 반하는 내 힙스터 기질의 발현이 틀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기에, 마지막으로 노장이 무너지는 모습을 싫어하는 기질의 작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에나 존재하는 노장을 좋아한다. 사령관이 아닌 장수. 앞서서 싸우는 늙은 장수를 사랑한다. 그 기질은 반지의 제왕에서도 모두가 레골라스를 좋아할 때 김리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요즘 나를 김리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 은근히 기쁘다. 나이로 따지면 레골라스가 훨씬 많지만, 아무래도 레골라스에게는 노장의 투박함이 없지 않는가. 무엇보다 수염이 없다. 이상한 이야기를 했지만, 확실히 이성적인 투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그 이후로 특별한 호재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기업은 추격을 뿌리치고 확고한 업계 1위로 거듭났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무엇이 유효했는지 정확하게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라고 정확할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다 죽는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상기한 리포트를 인용하는데 내가 어찌 신뢰하겠는가. 나는 감정적으로 도박적인 투자를 한 것일까, 통찰력 있는 투자를 한 것일까? 정답은 둘 모두 아니다. 나는 이상한 투자를 했다.

내 성공담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기에 이번엔 실패한, 기행적인 투자행태를 공개하겠다. 이번에는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다. 꽤 비중을 크게 두고 매수한 알트코인이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70% 이상(스팀은 제외하고)을 유지하던 내 기본적인 투자원칙에 굉장히 반하는 투자였는데, 그 이유도 참 기이했다. 아이디어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투자비중을 조금씩 늘려갔는데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보였다. 그리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비트코인이 내려앉으며 알트코인들은 더욱 크게 내려앉는다. 하락장에서는 항상 있었던 일이다. 각 알트코인의 가치와는 무관한 일이다.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작에 손절해야 했지만 매매가 하기 싫었다. 하락장에 허둥지둥하며 팔아치우는건 의리도 아니고, 체통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80%를 기록했다. 나는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김리와 마찬가지로 수염이 덥수룩한, 선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미련한 사람일까, 선택을 후회하기 싫은 자존심이 더럽게 강한 사람일까.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투자자는 맞는 것 같다. 나는 좋게는 독특하다, 나쁘게는 이상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게도, 나를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는 정을 잘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잘 털어놓지 않는 고민을 털어놓은 그녀, 나를 걱정해주던 그녀, 나를 즐겁게 해주던 그녀가 아닌 감정적 유대라고는 하나도 없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그녀에게 끌렸다. 내가 그녀에게 끌렸던 이유는, 그녀도 이상한 사람이라서였던 것 같다.

이제 이 이상한 글의 제목을 이상한 투자자가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바꿔야하는게 아닌가 싶다. 카페 직원에게는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까. 새벽 3시에 나타나서 랩탑을 두들기는, 한겨울에도 아이스만 고집하는, 허공을 보고 있는(나는 명상할 때 눈을 감지 않는다. 오히려 깜빡이지도 않고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가끔씩 새벽 6시에 찾아오는 친구를 가진 사람.

이상한 사람은 이제 조카를 안아주러 간다. 처음에는 허리랑 팔이 아팠는데 요령이 생기니 이제 별로 힘들지 않다. 다행이다. 이렇게 이상한 글을 마구 써도 상관 없는 스팀잇은 참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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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댓글이 많은걸 보고 궁금해서 왔습니다!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투자엔 이상한 사람 연애엔 나쁜남자네요 ㅎㅎ

에이다 아니십닊(.....)

에이, 아무리 그래도 수익률로 맞추기는 어렵죠. 절대 못 맞추실겁니다!

폭락 안 한 알트가 어딨다고... 하나하나 가져오셔도 소용 없습니다!

아마 뭐 레드코인 같은거 아닐까요? 빨간맛

버스트다.

이러다 알트 다 나오겠습니다 ㅋㅋㅋㅋ

아인 80% 밖에 안 떨어졌나요? 의외인데...

아이디어가 재밌어 보인다는 말에 막 던져 봤습니다. 사실 잡알트는 시세 안 본지 오래 됐다는...

반골 기질 있는 분들은 이래서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그래서 성공하기도 하지요. 정신적 쾌감은 헛소리 하는 전문가 조언을 따라 성공했을 때에 비할 바가 아니니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성공만 할 수 있었는데 무슨 잭 스패로우 같은 로망을 가져가지고... 반골 기질로는 성공했고 수염난 아저씨에 대한 로망으로 실패했네요.

어떤 종목이길래 흔들리지 않고 있을 수 가 있을 까요?
어쩌면 종목과 사랑에 빠지셔서 교감을 한 걸지도 몰라요 ㅎㅎㅎ 사물에 영혼이 깃든다는데 주식이라고 모!!

레골라스가 더 나이가 많았었죠;;; 요정족이어서... 아 맞아; 저는 이상하게 프로도보다는 인간왕 한테 끌렸어요. 왕의 귀환!!! 똭!! (당연한 건가;;;)
그러고 보니 아이도 kimlee를 줄여서 @kmlee 인거네요??

@kmlee님은 공감해주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한테 더 끌린다구요????! 그렇담 저도 이 글에 공감 못해욧.
김리님도 참 싫네요!

아뇨.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애처로운 위치에 놓이는건 싫어합니다.

흐엌 마이너스 80 ... 지금 주변에 리플 40층대에 물리신분이 있어 남일 같지가 않군요. ㅜ

새벽 세시에 카페에? 그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라고 해야 이상한 킴리님에게 끌리는 멘트가 되겠네요ㅋ 하지만 전 묘한 낭만을 느낍니다. 글을 쓰고 돌아가 조카들을 안아주는 장면도 그 낭만의 연장으로 느껴지네요ㅎ

에이, 그런걸로 끌리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쉬우면서 어려울겁니다.

투자는 정답이없고 정도만 있을뿐인거같습니다
자신이 믿는것에 투자하는것
아무리 차트를 들이대고 예상을해도 자기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요
코인같은것도 제 스스로 했던건 수익이 났지만 남의말을 들은건 ..ㅜㅜ
그저 자신의 판단을 믿고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ㅋㅋ
@kmlee님이 왜 이러한 투자철학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네요ㅋㅋ

이상한 사람이라서요...

철학자님의 글을 좋아하는 우리는 모두 이상한 독자다.. 가즈앗!!!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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