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월정(弄月亭)’에서-속도가 앗아간 여유(#136)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제는 차들이 국도보다는 고속도로를 더 많이 탄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길수록 기존 국도는 존재감이 없어진다. 더불어 여행지도 그렇다. 국도를 달릴 때는 중간 중간에 들릴만한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다리쉼도 할 겸 들렸다 가곤 했다.

이제는 딱히 목표로 한 곳이 아니면 들리게 되지 않는다. 근데 요즘 나는 과일나무 답사 여행을 다니다보니 국도를 가끔 달리게 된다.

농월정(弄月亭)이라고 아시는지? ‘弄月’은 ‘달을 희롱한다’지만 이 정자에서는 ‘달과 논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 같다. 그러니까 농월정은 달과 놀 수 있는 정자다.

위치는 경남 함양군 화림동 계곡에 있다. 국도를 달려야만 볼 수 있는 곳. 풍루랄까, 끼가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차에서 내려 계곡을 건너, 농월정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넓은 바위가 나온다. 사실 어마어마한 바위다. 정자 둘레에만 1000여 평에 이른단다. 그 한 쪽 끝에 정자가 있다. 어떻게 이런 계곡 가장자리에 정자를 지었을까? 혹시나 큰물이 지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지만 당시 선비들 생각에 목수들이 동의하고 지은 걸 보면 오래 세월 관찰한 결과물이리라.

정자를 오르기 전에 기둥을 자세히 본다. 일단 나무를 반듯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살렸다. 그리고 주춧돌 역시 기존 바위를 그대로 썼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자연 상태 돌에다가 기둥을 세우자면 ‘그렝이질’이 필요하다. 돌 모양에 맞추어 콤파스로 나무 밑동을 파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반듯한 주춧돌에다가 나무 기둥을 세우는 것보다 더 튼튼하다. 기둥이 뺑 돌아가며 골고루 힘을 받는다.

정자에 오르면 넓은 바위와 내가 펼쳐진다. 다만 아직은 냇물이 많지 않아 정취가 덜하다. 그래도 달이 뜨면 달과 놀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솔직히 요즘 삶에서는 달 보기가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삶이 바빠서 밤하늘을 볼 틈이 없다. 달보다는 스마트폰 불빛을 훨씬 더 많이 본다. 밝은 전기 빛도 달빛을 흐리게 한다. 달빛은 깜깜한 밤이어야 제 맛이다. 우리네 삶 자체가 대부분 절기나 달 흐름과 무관하다. 일부러 달을 찾지 않는 한, 달이 떠도 달마중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보니 나 역시 산골에 살아도 달을 마중하고, 달과 놀아본 기억이 아득하다. 어두운 밤길에 달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던가? 길을 밝혀주고, 길을 가는 내내 나를 따라 동무를 해주던 존재. 냇가를 지날 때면 하늘에도 달이요, 물에도 달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시인의 감흥이 일어나곤 했다.

달과 놀 수 있는 여유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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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
●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농월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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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弄月亭)’에서-속도가 앗아간 여유(#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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