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여행] 숟가락 들 힘만 있다면-순간을 영원으로(#157)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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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여행’이란 ‘나 아닌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그 두 번째 여행으로 이번에는 ‘서씨 아저씨’를 소개한다. 나와 아저씨 인연은 제법 오래다. 얼추 20년.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이 곳에 자리 잡을 때로 거슬러간다. 아저씨는 내게 우리 식구가 살 빈집도 소개해주고, 농사에 필요한 씨앗도 두루 챙겨주었다. 오고 가는 길에 마주치면 농사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곤 했다.

그러던 아저씨가 한번은 크게 사고가 났다. 가파른 곳으로 경운기를 몰다가 경운기가 뒤집히면서 그 아래 깔린 것이다. 마침 내가 일하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고, 사람들을 불러와 함께 경운기를 들어서 아저씨를 구했다. 많이 다쳤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서 무사히 수술을 했다.

나이가 있음에도 회복이 빨랐다. 아저씨는 키가 작지만 참 다부진 몸매다. 비록 정규 교육을 받은 건 별로 없지만 자기 관리를 그 누구보다 잘 한다. 술 한 두 잔 정도 이외는 마시지 않았고, 동네 분쟁에 대해서는 소리 소문 없이 역할을 하는 감초 같은 분이다.

힘들다는 농사로 자식 넷을 잘 키웠다. 내가 이곳으로 왔을 때 아저씨는 소를 몰아 쟁기로 밭을 갈았다. 대부분 땅도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그것도 평탄한 곳이 아닌, 사고 위험이 높은 가파른 밭을. 그렇게 하여 자식 모두를 결혼을 시켰고, 지금은 손주들이 주렁주렁. 아저씨네 집을 들리면 거실 한 쪽 벽면 가득 손주들 사진이다. 밝고 따뜻한 에너지가 감돈다.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따로 있다. 나이가 있음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여든 살이 넘었다. 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저씨랑 마을 보메기를 함께 했었다. ‘보메기’란 계곡 물을 논으로 끌어당기는 일을 말한다. 이게 참 일이 많다. 겨우내 쌓인 낙엽을 치우는 건 물론이요, 온갖 칡이나 찔레 덩굴들을 제거하면서 도랑을 정비하는 일이다. 이 보메기를 한창 많은 사람이 함께 할 때는 열 댓 명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벼농사를 짓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작년에는 아저씨와 나, 둘이서 했다. 근데 나는 올해 이 곳 벼농사를 포기했다. 멧돼지 피해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서 그 많은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을까 하는 건 나 혼자의 걱정이었다. 지팡이를 짚고서 그 많은 일을 했다. 물론 아주머니랑 둘이서. 팔순이 넘은 부부지만 두 분 다 허리가 꼿꼿하다.

내게 그 모습은 성자에 가깝다. 저렇게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돌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복이자, 자기 관리라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아저씨 아주머니는 밥숟가락을 들 힘만 있다면 기꺼이 일을 할 분이다. 두 분 모두, 늘 건강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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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여행] 숟가락 들 힘만 있다면-순간을 영원으로(#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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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코박봇 입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

본받야할 이웃을 두셨네요 아마 kimkwangwha님도 서씨 아저씨 같은 분일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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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입니다.^^

포기란 배추셀때만~!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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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온갖 탁한 인간군상 이야기만 접하다 이런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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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땅에 발딛고 사는 어른들이 있어 큰힘이 되네요

팔순이 넘으셨다구요? 아직도 엄청 정정하시네요~!
오랫동안 건강하게 농사일 하시길 바랍니다^^

본받을 점이 많아요^^

대단하신 분이네요 -_-bb

참 꿋꿋하십니다.

멧돼지피해를 언론에서만 접했지 실제 피해자의 글은 첨으로 보네요. 소개한 아저씨의 만수무강 응원할게요..

글로 다 쓰자면 책 한 권입니다 ㅠㅠ 고맙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한 분들을 보면 부럽고 멋찌십니다!!
일 조금하면서 미루고 힘들어하던 제 모습들이 부끄러워집니다. ㅠㅠ

부담 될 정도로 부지런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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