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덮고 싶은 남자와 해결하려는 여자 II

in #kr6 years ago (edited)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우선인 남자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뿌리뽑고 나아가자는 진취적인 여자 이야기를 전편에서 썼다. 이건 남녀를 일반화해서 쓰고자 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냥 하나의 사례일 뿐(남녀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간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펼쳐보았다. 걸핏하면 동굴로 숨는 프로잠수부인 상대방을 떠올리며 답답해하고 있거나, 문제 해결한다고 나서는 상대방을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상황은 우리들과 우리 주변에서 꽤 많이 일어나지 않는지?!

사실 어느 쪽이 정답이라는 얘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마다 내가 어느쪽인지, 무엇이 좀 더 바람직할지, 그런 것 다 떠나서 내 마음이 가는 쪽은 어느 쪽인지 등등을 셈해 볼 수 있겠다. 다만 얘기해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면.. 

1. 여자의 문제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남자에게 확 피로도를 제공할 수 있다. 

자칫하면 문제 자체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여자가 남자에게 줄 위험도 생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남자는 동굴로 숨어버릴 수도 있다. 이 일화에서 여자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면 이 지점이다. 문제 해결에 같이 나서자고 하고 싶은데 어떻게 동참시킬 것인가 '방법론'적인 부분. 기본적인 스트레스 허용에 대한 역치에 있어서도 적어도 이 이야기 속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것 자체를 '책임감 부족'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인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물론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라면 이런 문제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2. 이 남자의 방식을 고수할 경우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관계를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숫자로 표현하면 1-10까지 관계의 깊이가 있으면 한 1-4 정도의 관계만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인간관계, 세상사에서 크고작은 문제란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이를 피하는 것이 우선된다면 말이다. 바로 여자와 같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근본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공감대 정도는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여자의 노력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를 여자의 노력으로 보기보단 남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혼자 해결하고 올 건데 왜 자꾸 건드리지?' (근데 위 바퀴벌레 사례에선 심지어 '해결'도 아니고 그냥 '피하는 것'뿐임)

3. 저 상황에서 여자라고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물론 스트레스 허용 역치가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긴 하지만 여자 역시 문제 해결 과정에서 닥칠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본질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위에서 설명했던 여자의 '노력'이라고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자들이 대세와 크게 상관없는 것들을 갖고 피곤하게 남자를 괴롭히는 경우들도 있긴 하다. 이건 여자들이 고쳐야 할 문제인데, 역으로 이런 짓 안하는 쿨한 여자에 대해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네. 여성성이 부족하네.' 라고 보는 어이없는 시선 역시 고쳐야 할 문제. 뭘 어쩌란 말이냐.) 


4. 어쨌든 이 같은 상황에서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우고 원래 함께 손잡고 가고싶었던 길을 계속 가자는 게 저 여자의 입장이라면, 남자는 장애물을 굳이 힘들게 치우고 싶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 다른 길을 찾든지 쉬운 길로 가고 싶다. 여자에게 '이 길'을 계속 가는 건 중요한 과제다. 많은 길이 있고,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굳이 이 남자와 이 길을 가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발길을 돌려 다른 길로 가려는 남자의 행동이 섭섭해질 수 있다. 노력하지 않는 모습, 나와 함께 갈 의지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그럴 의사가 없는 게 맞다면 남자로서는 정확히 그걸 표현해주고 제 갈 길 가면 된다. 여자한테도 그게 이득이다. 마음도 없는 사람과 계속 가느니 말이다. 다만 그것이 아닌데 저렇게 곡해받는 상황이 되면 남자한테도 억울하고 여자한테도 슬픈 상황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남자가 그 의사를 어떤 식으로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만약 전략적으로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남자라면(ex. 어느 쪽인지 절대 얘기 안하고 숨어버리기. 그렇게라도 여지는 남기고 싶어잉. 막상 내 손으로 완전히 끝내긴 무셔 ㄷㄷ.) 본인이 자초한 개쓰레기 취급은 각오해야 한다.

이럴 때 보통 여자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그 장애물을 치우고 갈 정도로 널 좋아하진 않는 거야."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부분에 애정의 정도를 필연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완전히 별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애정 문제로 몰아버리면 판단을 내리기엔 한층 편하긴 하다.) 여자를 정말정말 좋아하고, 이상적이라고 여겼더라도 환경적 변화로 인해, 혹은 선천적으로 장애물을 치울 힘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이로 인해 이별이라는 결과가 와버렸다면, 이에 대해 남자는 무언가 느끼고 다음 관계부터는 행동 수정을 할 수도 있다. 경험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행동 수정을 그래도 안 하면 끝까지 1-4 정도의 얄팍한 관계만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거야 자신의 선택이다.


5. 반대로 남자의 변을 하자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가 왜 꼭 장애물을 치우고 이 길을 고집하려하는지', '왜 꼭 그 지난한 바퀴벌레 퇴치과정을 거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려고 하는가. 왜 내가 장애물을 적극적으로 치우지 않는 것이 곧장 여자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식은) 것으로 해석되는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고. 상관관계가 정말 없다면 그것을 여자에게 잘 설명해 주면 된다. 그게 힘들어서 수많은 관계 단절이 일어나고 만다. 이 설명조차 귀찮고 힘들다면 각자 오해하는 것도 당연하고, 멀어지는 것도 자연한 귀결이다. 솔직하고 가감없이 내가 장애물을 지금 같이 치울 여력이 안 되는 이유, 다른 쉽고 좋은 길을 알아보고 올 테니 언제까지 기다려달라는 설명 등을 해 줘야 한다. 상대방이 답답해하지 않을 정도로는 말이다. (맥락없이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자의 목적은 남자를 '이기는' 것에 있는게 아닌데 남녀공히 이걸 종종 오해하는 듯하다.)  


 ← 최근 출장 때 미국 뉴욕에서 사 온 하트모양 수정♥


만약 그 '설명'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줬는데도 여자가 계속 징징댄다면 그 여자도 이성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부족한 걸로 볼 수 있다. 그게 정 피곤해서 안되겠으면 헤어지고 그 여자에게 이별이란 파국을 선사함으로써 배움의 계기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여자 역시 남자의 애정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 '설명'을 듣고자 노력했는데 끝끝내 듣지 못했다면.. 남자에게 똑같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밖에. 둘 다 정상적인 학습을 하는 인간이라면 아마 다음 관계에선 똑같은 실수를 안 할 것이다. 연애란 그렇게 '릴레이 달리기'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전 사람에게 배운 것을 그 다음 사람에게 베풀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 파국조차 정말 소중한 인생의 경험이다. 애초에 남녀관계가 될 수 있었다는 자체 또한 기적이자 선물같은 일이라, 풍요로움을 더해주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따라서 당신이 건전한 마인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모든 연애는 우리를 성장시키며 '만나지 않았음 좋았을 인연' 같은 건 없는 것이다.

p.s. 모든 인간관계를 막론하고서, 좋을 때 좋은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을 때만' 나를 찾는다는 인상을 준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로 나를 믿는 건 아니구나,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지는 않는구나 라는 실망감과 서운함을 안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배려해서 부담 주지 않으려 했던' 정말 친밀한 관계인 상대방을 역으로 내게서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친밀한 사이일수록 이를 조심해야 한다. 적당히 거리 두며 관계 유지를 하는 관계들에선 이조차 불필요한 고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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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말씀 동의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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