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1] J 이야기
연어입니다. 비트코인이 800만원까지 찍으며 반등 무드를 만들고 있네요. 기념으로 저의 자전적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 올려볼까 합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두며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네요.
때는 고3, 계절로는 지금쯤의 일인 것 같다. 하루는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 받았지만 자주 만나던 중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에 이대 근처에서 얼굴 좀 보자는 것이었다. 날씨도 좋겠다, 딱히 주말 약속도 없던 나는 시간에 맞춰 이대 앞에 있는 호프집인지 경향식 집인지 알쏭달쏭한 곳을 향했다. 친구는 나를 반겼고, 약속대로 '환상의' 돈까스를 주문해 주었다. 열심히 썰던 나의 나이프 질을 멈칫하게 만든 녀석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나 얼마전에 가출했어. 요즘 여기서 먹고 자면서 일하는데, 여기 주방장 형이 돈까스도 끝내주게 하거든. 네 생각이 나서 불러본거야."
이런, 교육자 집안에 꽤나 모범적이었던 녀석이 가출씩이나 하다니! 나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이대 앞이냐?"
"야,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겠냐"
얘기를 들어보니 시시컬컬한 이유로 욱해서 나온거 같은데 모양새를 보아하니 오래 버티지는 못할 듯 싶었다. 곧 집에 들어가겠거니 하고는 그간 나름대로 동네 좀 개척해 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노래방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녀석 얘기로는 부산에서 유행하던 노래방이란게 이제 막 서울에 상륙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포맷 그대로 노래방 기계는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한 곡을 재낄 수 있었고, 친구가 만원 짜리로 바꿔온 동전 20개로 각자 10곡씩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선택한 곡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나의 타오르는 감수성을 대변할 회심의 선곡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창 녀석은 예상대로 집과 자신의 학교로 컴백했고, 이내 가을로 접어들게 되었다. 학력고사 세대라면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당시 고3의 가을은 8번 정도의 전국 모의고사를 연타로 치르며 지원할 대학교와 학과를 정해야 하는 긴장감 가득한 시즌이었고, 그런 분위기 덕분에 고3이었던 우리는 많은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전략은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서 모범적이고 성적이 우수한, 지금으로 치자면 일명 '엄친아'들끼리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것이었다. 각자 집에다가 하는 얘기는 뻔했다. 학교에서 자습하는 건 효율이 떨어지고.. 누구랑 누구도 어느 독서실에 다니니 거기가 더 공부하는데 좋을거라는데 감히 어느 부모가 오케이 하지 않겠는가?
살벌한 고3의 풍경을 예상했다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으나, 어머니들의 자랑이었던 '8학군의 전사'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겠다기 보다는 누가 더 많이 놀고서도 성적을 유지해 나가는 천재인지 증명하는 배틀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수험생이니까 저녁은 든든히 잘 먹어야 했고, 저녁을 잘 먹었으니 소화도 시키고 스트레스도 풀 겸 노가리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다 밤 10시가 되면 너나할 것 없이 독서실 건물 지하에 있던 노래방에 모여들었다. 500원 짜리 동전을 넣어야 했던 기계는 몇 개월만에 진정한 한국식인 선불제로 바뀌어 있었고, 우리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고 남은 지폐나 동전들을 모아 2시간 정도 부를 만큼만 선불로 지불하였다. 그렇게 자정이 될 때까지 두 시간 남짓 노래를 부르다 보면...
드디어 우리의 구세주 독서실 총무형이 1차 알바를 마치고 2차 알바인 노래방으로 입성하셨다. 노래방 스크린에 툭-툭- 두 시간이 더 튕겨졌고, 이건 총무형만의 반가운 인사였다.
'얘들아, 나 왔어~ 걱정말고 잘들 놀아'
거의 매일 빠짐없이 4시간의 노래 파티가 지속될 수 있는 데에는 총무형의 든든한 후원이 큰 몫을 하였다. 덕분에 나는 노래방에 입성한지 채 반년이 되지 않아 선곡책에 알고있던 거의 모든 곡을 한 번씩 부를 수 있었고, 더 이상 부를게 없던 나머지 마침내 우리의 영원한 피날레 곡으로 자리잡은 명곡을 꺼내들었다. 밤 10시 부터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뜨거운 10대의 우정을 기리며 말이다..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하나뿐인 인간의 별 지구를 위해서..
그랜다이저는 생명을 건다..
UFO 군단을 무찌른다..
(에블바디!!)
그랜다이저! 그랜다이저!
그~랜 다이저~~!*
우리는 고향별을 잃은 우주의 망명자이자 목숨을 걸고 제2의 고향 지구를 지켜주던 듀크프리드 왕자의 기상에 경의를 표하였으니, 아마도 듀크프리드 왕자는 전기 대학에 우수수 낙방한 우리 모두에게 경의를 표했을 것이리라. 쩝...
어쩌랴, 이과반이었던 우리였기에 싸인을 미분하면 코싸인이 되고, 코싸인을 미분하면 마이너스 싸인이 되는 우주의 진리를 익히며 마징가 Z든 그랜다이저든 만들어낼 수 있는 공학박사 김박사의 길을 따랐어야 했거늘.. 그저 우주 파일럿 듀크프리드 선배에게 폭 빠졌던게 죄라면 죄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몇몇 녀석은 잠시 후기 대학에 몸을 싣기도 했지만 우리 '8학군의 전사'들은 각자의 취향과 선택에 의해 한강 북쪽에 있던 모 학원과, 남쪽에 있던 모 학원으로 헤쳐모이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재수 생활을 맞이하는 경건한 심정으로 둘 중 한 학원에 몸을 싣게 되었다. 아, 뼈아픈 재수 생활을 경험한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세 번째 기준..
"선배님, 어느 학원이 더 물이 좋을까요?"
나라고 놀기만 했으랴, 그래도 내 인생이 걸린 일인데 말이다. 그렇게 자못 진지한 자세로 수험 생활에 임했으나.. 왠걸? 공부만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어버린 두 가지 상황에 새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첫 번째는 마지막 학력고사에서 첫번째 수학능력 시험(+ 본고사)로 바뀐 제도였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막대한 암기를 요구했던 학력고사의 병폐를 없애고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판별해 내겠다는 수학능력 평가시험은 기존과는 사뭇 다른 문제 패턴이었는데, 좋게 말하면 암기를 '지양'하고 종합적 판단을 '지향'하겠다는 거고, 더 좋게(?) 말하자면 암기에 대한 부담을 확 떨어내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더 이상 암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시험을 쳐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도통 노는걸 병행하지 않으면 공부 진도가 나가지 않던 몹쓸병이 다시 도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단순한 지식을 외우기 보다는 '종합적'인 지식과 인식이 필요한 새 제도에 그간 교과서 이외에 엄청난 양의 독서를 즐기고 온갖 다큐멘터리에 심취해 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물만난 연어가 되었던 것이다. 내 머릿 속에는 (지금 생각하면 꽤 잘못된) 하나의 함수식 결과가 도출되었는데,
새 입시제도 = 대충 공부해도 성적이 나오는 제도..
가 된 것이었다. 학력고사에 비해 수능시험은 워낙 광범위하고 규정짓기 어려운 영역까지 다루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도 한 방에 성적이 잘 붙지 않는데, 이건 바꿔 말하면 그닥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한 방에 성적이 잘 내려가지도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의 시험에 듀크프리드 왕자와 함께했던 공부 습관은 결국 후자 쪽에 포커싱을 맞추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맞닥뜨리게 된 상황은 고3때 골치를 앓았던 수학 점화식을 벼락치기로 마스터한 것이었다. 기억들 나시는지 모르겠지만, 점화식은 극한으로 이어지고, 극한은 미분으로, 그 미분은 또 적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결 고리를 가진다. 게다가 나는 이과 선택이었기 때문에 삼각함수 미적분이니 뭐니 해서 그야말로 점화식에서 부터 잘 점화(?)가 되지 않으면 모래로 지은 탑이 되는 셈인데, 변명같지만 고2, 고3때 미적분 파트쪽을 맡아주셨던 수학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의 점화식에 대한 지식은 매우 꼬여있는 상태였다. 학창시절에는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건지, 선생님이 헷갈리게 가르쳐 주신건지 알쏭달쏭했는데, (선생님께는 좀 죄송한 얘기지만) 재수할 때 그나마 3일 정도 수업을 듣고 나서야 점화식-극한-미분-적분을 연결짓는 개념을 말끔히 머릿속에 박아 넣을 수 있었던 걸 보면 뭔가 고교때 나와 수학 선생님과의 궁합은 최악이 아니었다 싶다.
일단, 이과 지망생에게 치명적이었던 들쑥 날쑥한 수학 성적이 벼락치기 여부과 상관없이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되자 부모님께는 또 다른 알리바이가 생기게 되었다. 뭐, 그저 자식만 믿는 부모님 입장에서야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고 있으면 아들 녀석이 나름 마음을 잡고 재수생활에 임하고 있나보다 싶겠지만, X버릇 남 못 준다고.. 우리 멤버들은 각자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출중한 모의고사 성적을 유지하며 죽어라 놀기에 바빴던 것이다. 정말,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갈때 선배형들이 얘기해준 진리가 있었는데.. 바로..
"걱정마라. 고3이 더 논다"
였는데, 이 패러다임은 한 해 더 이어져 "걱정마라, 재수생이 더 논다"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래방이든 비디오방이든 매년 새로운 놀이방이 생기던 시절이었고, 노래방과 오락실에 싫증을 느끼던 우리에게 재수 학원가의 새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당구장, 노바다야끼, 그리고 온갖 민속 주점들이었다. 결국 학원은 출석 기록을 위한 곳이었고, 예의상 한 두 시간 수업을 들어준 후 같은 고교 삼수형들과 함께 탈출하던 빠삐용의 생활로 가득한 곳이었다.
말이야 이렇게 적었지만, 수험생 특유의 분위기에 휩씁려 나름 공부에 매진하던 초기 학원 생활을 보낼 때였던 것 같다. 당시 학원가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런가 모르겠지만 (여자 화장실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으나) 남자 화장실 안은 그야말로 칸칸이 온갖 음담패설 낙서와 그림들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여기에 대해 적쟎이 쇼크를 먹었던 것은 나름 전국에서 성적으로 난다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던 수준에 걸맞지 않게 유치찬란과 빵꾸똥꾸스런 낙서로 도배가 되어 있던데 있었다.
한번은 큰 일(?)을 보려고 칸막이 안에 쪼그려 앉았는데 정면 문짝에 검은 유성펜으로 적힌 글귀가 하나 보였다. (순서대로 읽으며 생각해 보시길)
이 화살표를 따라 왼쪽을 보시오.
--------------(90도 꺾여 이어지며)------------->
이 빙신아! 여기가 오른쪽이지 왼쪽이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이 조롱섞인 낙서에 욱했던 나는 그날로 파란 유성펜을 하나 샀고, 그 다음날 부터 틈틈이 2층부터 8층인가 10인가까지 짝수층(홀수층이던가?) 마다 있던 모든 남자 화장실 칸칸 마다 나만의 새로운 낙서를 적기 시작했다. 일명 93년 학원가를 뜨겁게 달궜던 작가 'J'의 등단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J란 필명은 내 이름의 이니셜이기도 했고, 졸업했던 고등학교에도 적용되는 이중적인 이니셜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교적 내가 좋아했던 알파벳이기도 했는데, 어쨌든 파란 유성펜으로 갈겨나간 작품(?)들 끝에는 늘 동그라미 안에 자리잡은 J라는 필명을 적어두었고, 이 이름이 학원 안의 남학생들 사이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여학생들 사이로, 더 나아가 한강 건너 라이벌 학원생들에게 까지 전해지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 소설을 비롯한 현대문학과 고전문을 가리지 않고 교과서나 필독 교양서적 수준에 나올 작품을 모두 수험생 입장에서 느끼는 소회를 담아 패러디했고, 나름 낙서로서 뽑아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감형 낙서를 입혔던 것이다. 내가 J라는 필명의 낙서쟁이라는 것은 학원내 동창 몇 명과 소수의 친했던 삼수-사수 형들만 알고 있었고 고맙게도 이들 모두 나를 아끼는 마음에 J라는 존재를 비밀리에 붙여줬는데, 이런 비밀스런 익명성을 유지했던 덕분에 별의별 에피소드를 겪기도 했다.
한 번은 내 존재를 알고 있던 삼수 형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다른 반의 삼수형 한 명이 친한 재수생 후배와 함께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더니 어제 저녁에 J 녀석한테 격려의 저녁을 사줬다는 둥 하며 거짓 친분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J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런 뻥(?)을 치고 다니다니.. 옆에 있던 형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고 그 중 한 명은 진짜 우리 J에게 밥 한 번 쏴야겠다며 내 머리를 쓰담아 주기도 했던 것이다. 간혹 새로 남긴 작품에 감격한 형들은 쉬는 시간에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를 껴안기도 하고, 뭐 여하튼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J란 존재를 알고 지낸다는 것만으로 입이 근질근질한 자랑거리가 되었던 셈이었다.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학원 옥상에서든 J에 대한 얘기가 바글바글했고.. 한 번은 한강 건너 학원쪽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놀고 있을 때, 간혹 문학작품을 넘어 유행가에 붙였던 패러디 가사 그대로 노래 부르는 친구들을 보고 깜짝놀라 물었더니..
"이 가사 몰라? 요즘 우리 학원에 유행인데?"
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한 명의 스타가 나오다 보니 여기에 도전장을 내미는 필력가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고, 또 누군가는 J를 포함한 모든 작가(?)에 대한 인기투표를 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냄새(?)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 투표난에 양심적인 투표를 하기 위해 '몇 층 남자 화장실 몇 째 칸'에 기필코 찾아 들어가 한 표를 행사하고 오는 학원생들이 많았으니 이것 또한 나로서는 당혹스러우면서 마음 뿌듯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J가 1등, 그리고 언제나 당돌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Dr.Communist'가 2등이었는데.. 혹시나 이 두 필명을 기억하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그리 허황된 거짓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이라 본다.
하나둘 패러디 작품에 대한 작가들이 등단하고, 그 작가들의 작품들에 인기 순위를 먹이다 보니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각 작품과 작가에 대한 품평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품평 또한 남자 화장실 칸칸 마다 적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화장실 낙서를 지우기 바쁘던 아주머니 분들이 화장실 낙서를 그대로 유지하기 시작했고, 이건 아마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음란패설형 그림과 낙서에서 나름 지성(?) 품격(?)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보존하고 일손도 더는 일타쌍피성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쯤되니 아침부터 당구장 가랴, 야구하러 가랴, 야구 보러가랴 정신없던 학원(을 빙자한) 스케줄 속에서도 꾸준한 작품 게재만이 팬들에 대한 사랑과 은총에 보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힘들고 지루한 재수 생활에 한줄기 기쁨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학원 만은 꾸준히 나가게 되었던 것 같다. 스팀잇처럼 보팅 하나 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맹랑했던, 어찌보면 '그래봐야 낙서 수준'에 기물을 더럽히는 객기에 불과했던 것이기도 하나, 용케 대학에 붙어 새로 알게된 친구들에게서도 '네가 바로 J였냐!'는 반가운 소리와 함께 인생 지기를 만난듯한 반응을 느낄 수 있었고, 군생활 못지 않게 답답하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그런 재미로 덜어갈 수 있었기에 재수생들만의 끈끈한 우정을 쌓는데 J의 역할은 매우 컸던 것 같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모두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희미해져 버렸겠지만 아마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갔다면 여전히 나는 그렇게 파란 유성펜을 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93년의 J가 가슴속 친구의 한 명으로 남아있지는 않을까...
매우 비건설적이고 엉뚱한 스토리이긴 해도, 이 또한 제게는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 때 왜 제가 펜을 들어 기묘한 낙서 문화를 만들어갔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패배 의식 속에 자조하는 수준의 낙서를 인정할 수 없었고, 재수 생활은 엄연히 패배가 아닌 재도전이라는 메세지를 던져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 문제, 두 문제 차이로 대입 당락이 갈리던 시절에 그 아픈 상처를 조금은 승화시키고 싶었고, 재수생이라는게 사실 별거 없지만 그래도 나름 머리 좋고 공부 꽤나 한다는 친구들이 모여있던 곳이기에 자뻑이라 불리지라도 어느 정도는 긍지를 갖고 도전에 임하는 분위기를 일으키고 싶었지요. 매일 고개를 숙이고 책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지만, 적어도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할 때 만큼이라도 그 글들을 읽으며 위트에 웃고, 얘기하며 떠들고, 안주거리로 삼으며 스트레스를 좀 털어내는 데 요긴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운명 공동체에 대한 소명은 다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득, 저도 오랜 기간 잊고 살았던 이 스토리가 생각난 것은 스팀코인과 스팀잇을 쥐고 지쳐가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그때 학원 수험생 때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스팀잇 공간에 오신 분들 모두 이유불문 나름 시대를 빠르게 좇아가는 분들이라고 보는데, 우리 주변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이 중에 암호화폐에 투자를 하고, 그것도 스팀잇 같은 공간에서 글과 기회를 나누며 동참할 줄 아는 인원은 또 몇 명 쯤 될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의견이야 어떻든 오늘도 이렇게 글을 남기고 읽어 보는 스팀잇 이웃 여러분 모두 또 하나의 J가 아닐까 합니다. 대장주 비트코인이 800만을 넘어섰던 날인 만큼 아직 그 수혜가 스팀까지는 오지 못했더라도 이번 주말만은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여주는 분위기로 마무리 짓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기념으로 에블바디 그랜다이져로 대동단결 할까요?
그랜다이저! 그랜다이저!
그~랜 다이저~~!
J 난 너를 못잊어... ㅎㅎㅎ
역시 글솜씨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군요. 당시 J의 작품들을 여기다 좀 나눔하시죠? ㅎㅎ
^^
저의 아침을 즐겁게 만드셨네요~ㅎㅎ
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능으로 넘어가는 연도라고 하셔서 "연세" 가 딱 느껴졌네요. (글에 실제 연도를 표기도 해주셨고..)
"J" 시리즈 스팀잇에도 연재해주세요!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이야 저랑 비슷한 동연배일것 같은데 한번 j필명으로 된 작품들좀 풀어주세요. ㅎ
jcar보팅합니다.
사용하시는 연어 프로필이 그때부터 나온 것 같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