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5] 스팀잇 3주년을 맞이하여...

in #kr5 years ago (edited)

연어입니다. 기본 군사 훈련과 특기 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을 때 쯤 일입니다. 무슨 신병 프로그램이었는데 자대 배치 전 몇 일간 군부대 전체를 돌고 교육을 받는 일종의 적응 기간을 갖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번은 정기적으로 회식(음주)이 허용되는 날이었는데, 저희를 인솔하던 장교가 제대 축하 회식을 마치고 돌아다니던 전역 예정자 두 명을 데리고 와 신병들에게 소감 한 마디 하도록 시키더군요. '깨구리' 마크를 달고 전역을 앞둔 예정자들을 바라보는 저희 신병들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아마 다들 상상시 가실겁니다.

재미있게도 이 두 명이 하는 얘기는 정반대였습니다. 하긴, 이들 뿐만이 아니라, 군입대를 앞둔 청년에게 해주는 주변 선배들이 격려도 대개 이러하지요. 첫 번 째 전역자가 나서서 얘기합니다.

"여러분, 너무 힘빼지 마세요. 군생활 깁니다. 군대에서는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해봐야 남는게 없어요. 요령껏 잘 따라만 가고 너무 튀지 마세요. 뭐라도 잘하기만 하면 더 피곤하기만 합니다."

정말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전역자의 감회이고 직접 체득한 교훈이니 이것도 새겨들을만 했습니다만 이내 다른 전역자는 또 이렇게 얘기하지 뭡니까?

"저도 이제 전역을 합니다. 정말 그동안 열심히 군생활 한 것 같네요. 열심히 하나 하지 않으나 국방부 시계는 돌아갑니다. 힘들고 지루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제대의 시간이 다가왔네요. 여러분도 열심히 군생활 하시고 건강히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첫 번째 전역자는 '효율적인(?)' 군생활을 당부했고, 두 번째 전역자는 '열심히' 하는 군생활을 권유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좋은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고참한테 라면 한 번 맛있게 끓여줬더니 전역할 때까지 라면 끓이라고 부려먹더라.. 뭐 이런 얘기들 많이 들어보셨겠죠. 똑같은 시간, 똑같은 월급 (저 때는 이병 월급이 7천원, 병장 월급이 1만1천원 정도?), 똑같은 진급.. 어느 것 하나 성실함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차등되어 주어지기 어려운 징집군대 안에서 마냥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말이죠. 사실 저도 군대에 가기 전에 어떤 얘기를 따라야 하는 건지, 어떻게 군생활에 임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전역자가 얘기하는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그들의 얘기하는 태도를 눈여겨 봤습니다. 물론 전역자에게서 뿜어나오는 특유의 기운이란게 있습니다. 몸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제대를 눈 앞에 둔 상황,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에 부름을 받고 국방에 임하며 갇혀 있던데서 벗어난다는 해방감, 군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바뀌어 가고 있는 사회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불안감 등등.. 하지만 신병들에게 담담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하는 그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다르더군요. 제가 선택하고 싶었던 것은 두 번째 전역자의 눈빛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역자의 얘기처럼 튀지 않고 요령껏 행동하며 '군방의 의무를 다하고 깔끔하게 전역'한다는 기본 명제에만 충실하기엔 두 번째 전역자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듯함과 보람의 기운이 제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저런 눈빛으로 전역할 수 있다면 굳이 안해도 될 일 더 하고, 그렇게 까지 해야했다 소리 듣더라도 더 신경쓰고 먼저 나서서 하는게 뭐가 대수랴..


여의도 정치권에 몸담았던 시절, 일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인연을 쌓아온 형님 한 분이 요즘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습니다. 제가 경상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행님아~'하고 형님 형님 소리하는게 자연스러웠을텐데, 저는 예전부터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사람에게 '형님'자를 잘 못 붙이는 편입니다. 차라리 '선생님'이란 호칭이 편하지요. 하지만 나이 차이나 쌓아온 친분을 생각하면 정말 '형님'이라고 못할 것도 아닌데 수 십번이나 '그냥, 형님으로 불러라'하고 권유를 받고서야 형님 동생이 된 관계이지요. 한 번은 그 형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더군요...

누구에게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란게 있다. 뻔한거 아니겠냐. 나한테 밥 한끼라도 사주던가, 나를 시원하게 한 번 웃겨주던가, 아니면 나에게 배울만한 교훈을 안겨주던가... 모름지기 이건 모든 처신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남을 만나는 자리에 나갈때도 항시 이 셋 중에 하나는 지키려 했다. 돈이 없어 식사비를 낼 형편이 못 될 때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서 담소를 나누려 했고, 그러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아지면 넉넉치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밥 한끼 나누려 했지. 상대가 고민이 있으면 최대한 들어주고, 또 필요하다면 도움이 되는 말도 좀 해주고.. 이렇게 살다보니 나는 돈은 많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많아. 그리고 알 수 있지, 그 사람들이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보고 싶어한다는걸 말이야. 누군가 나를 보고 싶어하고 만나면 진심으로 반가워 하고.. 그게 사는 맛 아니겠냐?


오늘이 스팀잇 3주년이 되는 날인가 봅니다. 제가 3년 전 8월에 가입을 했으니 적어도 2년 반(잠수 기간을 빼면 2년도 안되겠지만요)은 스팀잇 이웃의 한 명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저도 이렇게나 오랜 기간 여기에 붙잡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까 차 한 잔 마시면서 되뇌어 보니 그간 스팀잇을 중심으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또 알게 모르게 내 생활에 스팀잇, 스팀 블록체인이란게 깊이 자리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분에 군생활도 생각나고 해서 잠시 끄적여 봤네요.

스팀잇 3주년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이웃 분들과 자축하고 싶은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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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생해 봐야 월급은 똑 같다라는 선배와
맡은 일은 빵꾸는 내지말자는 선배
비슷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지만 나중가면
크게 다른 법이죠.

세상사 사람 살이가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지죠.
어느 것이 옳은지는 사람살이가 마쳐야 하는 법이고요.

주위에 저런 형님 혹은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무척이나 삶이 풍족할 듯 합니다.

"끼리 끼리 논다" 라는 말이 있죠. 유유상종인가요?
연어님이 좋은 분이신겁니다.

스팀 3주년과 더불어 오래 오래 버텨서 10년 아니 50년 정도 갔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건배!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스팀잇입니다.

오늘이 스팀잇 생일이네요.
케잌에 촛불 켜고 노래라도 불러야 하는데

연어님이 아니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께서 해주신 말 정말 소중하네요. 잘 새겨놓겠습니다.

새일이군요. 빵파레을 울려야겠네요.
🎉🎉🎉🎉

효율적인(?)것과 열심히 하는 군생활... 뭐 사람마다 다르겠죠!!
효율적인게 어떤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열심히 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오치님께서 스팀인 4주년이라고 하셨는데... 3주년인가요? ㅎㅎ
연어님도 참 오래 되셨네요!! 조상님~ ^^

벌써 3년이 되었군요. 속도가 생명인 블록체인 업계에서 3 주년을 맞이하는 서비스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정도면 자리 잡았다고 봐야하는데도 beta 딱지를 유지하고 있으니, 답답하군요.

벌써 3년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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