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친구가 몇명이나 있습니까?

in #kr-pen8 years ago (edited)

저는 문돌이 입니다.
모든 공돌이가 코딩을 하는 것이 아니듯, 모든 문돌이가 문학을 하는 게 아닙니다.
문돌이니까, 눈치가 보이니까, 문학책 한 두권 읽는 수준입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전문성과는 거리가 한참 먼 글입니다.그냥 제 느낌을 쓴 글입니다.
무식하다느니, 더 깊이있는 분석을 요한다느니 하는 댓글은 사양입니다. ㅋㅋ

어제 봄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꿈많던 고등학교 시절, 1학년 국어 교과서 제일 앞에 실렸던 시로 기억됩니다.

                                     봄 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외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饗宴)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봄비>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서, 이 세상을 떠난 임을 그리는 애상적인 시‘라는 설명이 '정답'이었습니다.

친근한 시어들과, 서정적 표현 때문에, 사춘기 소년소녀들에게 딱맞춤 시였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도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봄비>의 후반부는 엘리어트의 <황무지> 와 정서가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그 뿐 아닙니다. <봄비>의 전반부 역시 고등학교 때 배웠던 정지상의 한시 <송인>과 매우 흡사한 느낌입니다.

                      送人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錄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강둑에 풀빛 푸르고
           님 떠난 남포에 슬픈 노래 들리네
           대동강 물 언제나 다 마를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더해지니 

이 시는 한자 모르더라도, 고등학교 때 대부분 한번쯤은 외웠던 멋진 시입니다.
한국 사람이 쓴 한시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 사람들마저 신품(神品)이라고 격찬했다고 합니다.

‘대동강 물 언제 마를까, 해마다 이별의 눈물 보태는 것을...’이라고 노래한 구절은 말그대로 절창입니다.

그건 그런데...,
<송인>을 읽다보면 이수복님의<봄비> 앞구절이 <송인>의 앞구절과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봄비가 그친다, 강가에서, 풀빛이 푸르다, 서럽다, 이별이다...

시들끼리 느낌을 차용하기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만 그런가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시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수복님의<봄비>를 매우 좋아합니다. 사실은 <봄비>의 모티브가 된 것 같은 <송인> 역시 어떤 한시와 느낌이 매우 유사합니다.

                           送元二使安西(송원이사안서) / 원이를 안서로 보내며 
                                                                                                    왕유(王維) 699~759
             위성조우읍경진(渭城朝雨浥輕塵) / 위성의 아침비는 가볍게 먼지 적시고
             객사청청류색신(客舍靑靑柳色新) / 여관의 버들잎은 파릇파릇 새로 돋네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進一盃酒) / 그대여 다시 한 잔의 술을 마시게나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 / 서쪽 양관에 가면 친구도 없을 것이네

위성곡 혹은 위성삼첩 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시입니다.
요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하는데, 확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만 나오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위해 술한잔 하다가 이 시를 읊으면, 갑자기 대우가 달라진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송원이사안서> 앞부문이 <송인>의 전반부 정서나 표현방법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송인>이 신품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지만, ‘짜깁기’한 거 아니냐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송인>의 ‘송군남포동비가’ 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포가 대동강 하구에 있는 포구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정지상은 평양에서 살았고, 대동강을 많이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 남포에서 이 시의 모티브를 잡았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남포가 실제 지명인지, 아니면 굴원의 시에서 차용해 온 상상의 지명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고운 임을 남포에서 떠나 보내네’라고 굴원이 노래한 뒤, 많은 옛 시인들은 실제 헤어지는 포구가, 동포이든, 서포이든, 북포이든 간에 모두 남포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굴원의 노래 이후 ‘남포’라는 지명은, 시인들에게 으레 ‘이별’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시어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랬든 어쨌든, 정지상이 당대 최고 문장이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대동강수하시진, 별루연년첨록파’라는 구절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남녀의 이별을 노래한 최고 걸작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얘기 다 떠나서,
저보고 평생 읽어본 시 중에 10수를 꼽으라고 하면, <송원이사안서>를 포함하겠습니다. 시 몇 편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ㅎㅎ

저는 <송원이사안서>의 전구(세번째구) ‘勸君更進一盃酒 권군갱진일배주’가 절창 중의 절창으로 느껴집니다.
친구와 이별하는 그 안타까움을, 이렇게 담담하게 노래한 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송원이사안서>는...
관리(공무원)가 되어, 멀리 서역으로 떠나는,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친구를 전송하러,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 있는 위성까지, 왕유가 따라가서 쓴 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 원이에게 술을 한잔 더 권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당시 서역으로 떠난 관리들 중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막과 산맥같은 험준한 자연적 환경 뿐 아니라, 이민족의 침입이 잦은 지역이어서, 죽음의 땅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멀고 먼 사지로 떠나는 친구를 전송하며, 울고 불고 짜고 지지고 볶고 하는 요란한 행사 대신, 거저 담담하게 술 한잔을 더 권하는, 이런 느낌...

여러분은 친구를 이렇게 송별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멀리 떠날 때, 여러분에게 술한잔을 더 권해줄 친구가 몇이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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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마음을 나눌수 있는친구가 중요하지요.
카톡에 친구 많아도 편안하게 소주한잔 할수 있는 친구 많지 않습니다.

그렇죠.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구는 매우 드뭅니다. 아는 사람이 친구는 아니잖아요.

한 열 명쯤 되는 것 같네요.
글치만 돌아올 지는 모르는 곳에 간다면 과연 담담하게 술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열명? 부럽습니다. 끝까지 우정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멀어지는 사람이 생기더라구요.

대부분 아는사람은 많아도 속 마음을 전할 친구는 많지 않을꺼에요.
시 하니깐 대학때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때 습자지에 시를 쓰기도 했어요.
공돌이와 시가 참 안 어울리지요.
뭔가 일상에서 평범한 풍경을 보면서 영감이 떠오를때면 머리속에 한구절을 짓고 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삭막해졌는지 감수성이 많이 매말라 버렸네요.
인터넷 상으로 끄적인 시 한편을 올렸는데 국문과 출신분이 시를 잘섰다고 칭찬해주더군요. 혹시 국문과시냐고 묻더군요.
약간 인정받은 기분으로 우쭐 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예전에 누가 한말인데요 전봇대에 껌이 붙어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걸 보고 누가 더럽게 껌을 붙였나고 투덜 거린 사람이 있고 어떤사람을 그 껌을 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당신은 어떤 사람에 속하는지 묻더군요. 사물을 보면서 그 사물에 대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려고 꽤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네요.

코딩맨님, 코딩에 이어 시까지. 정말 대단한 재능이군요. 부럽 부럽. 시 계속 써 보세요. 여기가 자기 글 써기 좋은 곳이잖아요. 자꾸 써야 늘죠. 부럽부럽.

마음이 많이 말라서 더 이상 사물을 보고 글을 쓸 수 없어요.
저녁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에 흐쳐 지나가는 건물이나 가로등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잘 안느껴지네요.
순수한 감정이 사라지고 세상에 때를 많이 물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사실 코딩님 글을 제가 전혀 이해 못합니다. 그런데 내용과는 별개로, 글을 참 유려하게 잘쓴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다시 문학적인 글을 한번 써보세요.

시를 읽는 것에 정답이 있을까요- 삶의 경험에 따라 관점에 따라 무수한 결을 드러내고 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면, 그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송별의 원형이 시인들마다 공유되는 것은 어쩌면 집단 무의식의 발현 같은 것일까요?

@홍보해

@qrwerq님도 그러시겠지만, 문학하시는 분들을 보면, 타인의 문학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그게 알게 모르게 머리속에 각인돼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씩 표절시비가 벌어지는데,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하지만, 실제 표현이 비슷한 경우가 많잖아요.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어쨌든 이별하는 시들을 보면 봄, 강, 초록빛 풀. 비는 또 늘 그치더라구요 ^^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good21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방가방가 ^^

이거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교류하는 사람이 많기는 한데, '진짜' 친구가 몇이나 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반대로 제가 누군가에게 '진짜' 친구일 가능성도 ... 참 어렵네요^^;

어려운 상황에 처해봐야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또 자기는 그저 그런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죠. 고맙긴 한데, 좀 당황스럽죠.

그런친구 한 서너명 있어요.
한친군 버렸어요.ㅋ
오래 살다보니 이런 저런 모습들이 보여서
많은게 중요하진 않다고 느꼈습니다.
팔로우 보팅하고 갑니다.
^^

서너명 끝까지 아끼세요. 자신의 모든 것일 수 있잖아요. 고맙습니다.

문학에 정답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를 읽는 독자가 자기만의 느낌이 있을진대 그걸 전부다 일원화 시키는 작업은 옳지 않습니다. 평가의 방법을 달리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 오르지 않나 싶습니다. 멋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심톨님 시도 언젠가는 교과서에 실리겠죠. 교과서 가즈아~

저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다른 것 같습니다. -ㅅ-
(왜 저 시가 기억이 없지...;;)

지금은 어디로 가든 다시 볼 기대를 하면서 헤어지게 되다보니 저 시절의 절절함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아.. 교도소 같은 곳이라면 느낌이 비슷하겠군요..;;
(댓글이 산으로 가는 느낌이..;;)

ㅋㅋㅋ. 지금 뭔 소리하시는 건지...ㅋㅋㅋ
<봄비>가 없었다는 거죠. 저희 때는 <송원이사안서>가 없었어요.

진짜 친구의 범주가 어느정도인가? 부터 생각해봐야겠네요. 저 역시도 아무때나 불러서 같이 식사하고 사우나도 같이 갈수 있고, 여행도 같이 할수 있을만한 그런친구는 한명도 없네요 ;;;
보팅 & 팔로 해드리며 앞으로 자주 소통해요^^

아무 때고, 부담없이, 불러낼 수 있고...이런 친구 참 드물죠.
그래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정성을 쏟아야 할 것 같아요. 네.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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