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브라질 아저씨의 조크, "나, 이제 한국말을 알아들어!^^"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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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은 볼 게 많은 도시라 분위기도 지금까지의 도시와 많이 달랐다.
지금까지는 어느 마을을 가든지 순례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도시는 순례자보다 관광객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성당이든 가우디 건물이든 사람이 엄청 많았고, 광장에도 사람이 엄청 많고, 카페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요일인데도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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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도 중심가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기념품도 샀다.
우선 초반에 무겁다고 안 산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두개 샀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것을 처음에 사서 배낭에 메달고 가거나 목에 목걸이처럼 하고 길을 걷는다.
마치 그것은 '나 순례자입니다.'하는 이름표같은 것이었다.
우린 이것도 짐이 된다며 순례길 반을 걸을 때까지 이거 없이 순례를 했다.ㅋ
이제야 '순례자 이름표'를 단 거 같다.
멋지게 조개껍데기를 달고 걷는 사진은 다음 여행기에서 멋지게 보여주기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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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에 더워서 잠을 못 잘 때가 많아서 부채를 하나 샀다.
지금까지 스페인에 불어닥친 이상기온으로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계속 되는데도 숙소에서 에어컨을 틀어주는 곳은 단 한군데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루종일 열띠게 걸었던 사람들이 적게는 대여섯 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이 한방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목에 땀띠나게 땀을 흘리며 자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깼을 때, 부쳐댈 부채가 하나 꼭 필요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플라맹고를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더 스페인스러운 부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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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에서 산 스포츠 샌들과 가우디 표지석.
스포츠 샌들은 산티아고 길에서 꼭 필요한 신발이란 생각이 든다.
실내화로도 신을 수도 있고,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 구경 다닐 때 편하게 신을 수도 있고, 또 나중에 생각한 건데 발에 물집이 잡혔을 때도 이 신발을 신었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샌들에 끈이 있어서 굳이 배낭에 집어넣을 필요도 없고 그냥 배낭 어딘가에 메달고 가도 되기 때문에 짐의 부피가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서 옛날 보다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도 걸어보니 그렇게 힘든 길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걸어보지 않은 피레네 산맥은 당연히 샌들로 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초반에 인내의 언덕을 넘는 길도 좀 가파르고 돌길이라 샌들로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외에는 현재까지는 거의 평지이고,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뿐이었으니 샌들을 신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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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 광장에는 레옹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보니 이건 그냥 술바인 듯하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서 술을 마시지는 않고 있는데, 해가 조금 나니 몇몇 사람들이 술잔을 여기에 놓고 서서 술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복잡한 중심가를 구경하다가 며칠 전 만난 한국 아저씨들을 다시 만났다.
같이 다니던 젊은 사람들과는 내일 헤어진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레옹을 구경하려고 하루 더 있을 거라고 했단다.
그 아저씨들도 도시 구경은 안하고 내일 다시 걸을 거라고 해서 내일 또 길에서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아저씨들도 연륜이 있어 우리처럼 여행의 노하우를 아는 것일까?
집착이 없다.ㅋ

돌아오는 길에 길에서 벳토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저씨는 우리를 보자마자 “나는 알베르게를 잃었어. 너희 혹시 우리 알베르게 가는 길 알어?”라고 물었다.
벳토아저씨는 우리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고 있다.
아까 숙소에서 짐을 풀때, 어제 물렸다는 베드버그 때문에 안부 인사를 나눠서 서로 그걸 알고 있었다.
벳토아저씨는 또 길을 잃은 것이다.
그리곤 우리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하며 이렇게 물은 것이다.
우리도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라 같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걸으며 "You are everyday lost man!"이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Every hour lost man."이라며 울상인 표정을 짓는다.
벳토아저씨도 영어를 못하고 나도 영어를 못해 우리는 이런 수준으로 대화를 한다.
이렇게 서로 알아듣기 쉽게 쉬운 영어밖에 구사하지 않는데도 우린 항상 의사소통이 잘 안 됐었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숙소를 잃은 급박한 상황이어서였을까? 오늘은 바디랭귀지도 잘 통하고, 짧은 영어도 잘 통했다.
아저씨도 신기했는지 자기가 이제 한국말을 알아듣는 거 같다고 좋아하신다.
난 안 되는 말이지만 영어로만 했는데.... 한국말이라니...ㅜㅜ
아무튼 재밌는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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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레옹에서 유명하고 평점도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으려고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8시 전에는 절대로 식사가 안된단다.
작은 마을에서는 아무리 정해진 시간이 있어도 2, 30분 일찍 온 손님 정도는 주문을 받아주는데, 대도시는 절대로 그렇게 해주질 않는다.
아마도 작은 마을에서는 다들 주인이 서빙까지하는 작은 식당이었지만, 대도시는 주인은 따로 있고 종업업만 일을 하고 있으니, 엄격하게 근무수칙을 지키는 듯했다.
대도시여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이런 건 아주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레옹 맛집에서의 저녁은 포기하고 숙소 옆에 있는 호텔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알베르게에 묵는 손님에게만 특별히 만들어주는 순례자 메뉴가 있다.
오늘은 걸은 거리는 짧았지만 도시 구경하느라 너무 돌아다녀서 피곤한지 입맛이 없어서, 맛은 평균 정도밖에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에 갔었던 중심가 카페나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북적북적했던 걸 보면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맛이 별로 없는 집이었을 수도 있겠다.
특히 이집에서 먹은 라이스 스프는 우리나라 죽처럼 생겼는데, 달기 정도가 거의 설탕죽같았다.
아는 비주얼에서 나는 상상 불가의 맛이 우리의 미각을 감동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나머지 반의 산티아고 길을 걸을 것이다.
도시를 구경하면서 느낀 건데, 오늘부터 1일인 사람들이 레옹에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한눈에 보면 딱 티가 난다.ㅋ

푹~ 자자.
어제 같은 숙소에 묵었던 중학생 팀이 오늘도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는다.
옆방이라고 해도 겨우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들이 저녁 늦게까지 웃고 떠들어 엄청 시끄러웠다.
수녀님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조용히하라고 주의를 주고 가도 잠시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내일 목표는 잘 걷은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을 피해 숙소를 잡는 것이 되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브라질 아저씨의 조크, "나, 이제 한국말을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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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추억갖고 계시네요

여행은 정말로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거 같아요.
경험, 추억, 자유....ㅋㅋ

재미있는 이야기 계속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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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전에 보니 베로니카님도 걷는 걸 잘하신다고 그러시던데...
언제 이런 여행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각자 걸을 수 있는 만큼, 하루종일 걸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엄청난 산티아고 시리즈네요
약 한달정도 다녀오신건데 몇년정도 다녀오신듯한 착각이 들 정도에요^^

그래서 작정하고 시리즈로 시작했답니다.
다녀와서 정리를 했더니, 자그마치 500페이지가 넘었었거든요...
전 한동안 포스팅 걱정은 없을 듯합니다.ㅋㅋㅋㅋ

녀석들 좀 조용히 하지~~~ ㅠㅠ

제가 영어라도 능숙하게 했으면 한마디 했겠지만...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네요.ㅜㅜ

너무 아름다워요~
여행지도 예쁘고 두분 사랑도너무 예뻐요~ 저도 언젠간 이런 사랑을.... 쿨럭..

너무 행복해 보여요🥰🥰항상 행복하시길~

그러게, 라면 박물관을 왜 혼자 가셔가지고...ㅋㅋㅋ

다음엔 둘이서 가야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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