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끔은 클럽에 가고 싶습니다.
다 같이 정신줄 놓고 춤추는 분위기가 해방과도 같아 단체로 춤을 추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학창시절 캠프파이어 촛불타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전에 포크댄스부터 막춤까지 이어지는 그 시간이 좋았다.
들뜸과 열기 흥분과 에너지는 가득차고 특별히 내게 관심이 없다.
스포트라이트는 쏟아지지 않는다. 그저 다들 그 시간을 즐길 뿐
그러나 그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 항상 아쉬웠다. 그마저도 고등학생이 되니 없어져버렸다.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가 많았나?ㅋㅋ)
23살이 되기 전까지 클럽에 가본 적이 없었다.
클럽에 함께 갈 사람이 없었고 혼자서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얌전하고 성실하고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마음 속으로 언젠간 클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나의 은밀한 소망을 이뤄준건 그 당시 만난 남자친구다.
그는 나보다 3살이 많았는데 나와는 달리 아주 잘 놀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분위기도 잘 띄웠다.
내가 클럽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언젠간 여자친구와 클럽에 가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본인의 아지트로 날 데려갔다. 그와 사준 짧은 반바지와 루즈한 흰색티를 입고 홍대클럽 긴 대기줄에 합류했다.
민증검사를 하고 결제를 하고 손목에 도장을 찍어준다. 생각보다 아주 쉬웠다.
짐을 맡기고 바로 술 한잔을 마셨다. 알코올이 들어가야 분위기가 무르익는다고 했다.
빈틈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엠프는 쩌렁쩌렁 울리고 조명은 앞 뒤 분간하기 쉽지 않다.
너무 신났다. 자유를 느꼈다.
말은 필요 없었고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웃고 소리지르고 움직이고 싶은대로 움직였다.
10시면 곯아떨어지는 저질체력의 소유자가 4시까지 놀다 첫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 날 이후로 매년 내 생일이 되면 함께 클럽에 갔다.
어느 생일 나, 남자친구, 나의 절친, 절친의 남친.
그냥 무난히 저녁을 함께 먹으려 했는데 이유없이 흥에 취해 클럽에 가기로 한다.
문제는 그 날 내가 신분증을 두고 왔는 것과 검은 플랫, 검은 정장에 하얀 블라우스, 완전한 정장차림.
보통 클럽은 우릴 받아두지 않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인기 없는 아주 작은 클럽에 들어갔다.
바람잡이 역할의 두 명의 여자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춤을 추지 않았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어색한 분위기로 술 한잔 씩 마시고 있었다.
"안돼 안돼~ 나는 오늘 놀거야~ 놀자!! 춤추자~~!!"
난 술 한모금 마시고 하나도 안취했지만 생일날은 노는 날이기에 우리 넷은 미친 사람들처럼 춤을 췄다.
봉이 있는 난간에 한명씩 올라가서 춤을 췄고 나름 우리가 즐거워보였는지 점점 동요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의 해방구, 스트레스에 함몰되어 욕지거리를 내뱉고 체력이 방전되더라도 1년에 한 번은 미친 사람처럼 놀아야 했다. 신성한 의식을 즐기듯 꼭 생일날 난 클럽에 갔었다.
아직 한산하게 체킹 중
마법같은 하룻밤, 여기서보면 카페같다.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역시 사진으로 남지 않는다.
멕시코 장기여행 중..
어느날 우연히 Oaxaca에서 분위기 좋은 바를 찾았다.
음악이 너무 좋아 술만 마실 수 없었다. 음료수 같은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나는 혼자 일어나서 슬슬~ 리듬을 탔다.(하나도 안취했다.)
EJ언니와 함께였고 언니는 날 부끄러워하면서도 외면하지 않았고 자긴 알코올의 힘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언니는 맥주 3병을 마신 후에야 나와 함께 춤을 췄다.
그리고 왜인지 조명은 점점 어두어져가고 DJ님이 오신 후 완연히 클럽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미친 사람들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한국클럽에 비해서 아주 널직한 공간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어느 새 사람들이 가득찼고 잠시 쉬기 위해 1층에 내려갔는데 예쁜 여자가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섹시했다.
"Do you wannner dance with me?"
"Sure-"
홀린 듯 그녀와 느린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살짝 미소진 얼굴과 몸짓이 너무 섹시했다.
난 역시 여자도 좋아하는건가...(?)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춤을 췄다.
그 후 술을 사주겠다며 일행들을 소개시켜줬고 멕시코 광란의 밤이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분위기속에 온갖 얘기들을 했고 많이 웃었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음악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모르겠다.
새벽 2시쯤 문을 닫아버리는 클럽이 아쉬워 다 같이 엠프 빵빵한 집에 가서 2차까지 놀았다.
확실히 클럽은 뭔가 고삐를 풀어버리고 스스로에게 걸고 있는 제약을 풀게 만드는 마법의 공간이다.
쿠바는 살사의 나라다.
살사의 ㅅ..도 모르는 나는 살사에 크게 관심도 없어다. (보는 건 좋다.)
멕시코에서 잠깐 살사 강좌를 들었는데 그들의 엉덩이와 나의 엉덩이에 무언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직감했고 뻣뻣한 로봇처럼 잔뜩 긴장해 리드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물론 그럼에도 재미는 있었지만서도
거기서 난 A를 만났는데 A를 만난다는 건 2-3일에 한 번은 꼭 춤을 추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도때도 없이 싸우고 서로를 모욕하곤 했지만 죽이 아주 잘 맞는게 있었다.
둘다 정신줄 놓고 춤추는 걸 좋아했다. 형식도 없고 남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그런 춤 말이다.
쿠바에는 살사클럽 외에도 팝, espanol pop 등의 음악을 틀어주는 클럽 등이 있었다.
아니 그냥 거기는 흥의 천국이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끝내주는 골반으로 섹시댄스를 췄고 조명 무대 이런거 필요 없이 음악 하나만 틀어주면 순식간에 대규모의 인원이 모여서 축제 분위기로 춤을 췄다.
아주 뻔뻔하고 얄미운 녀석이었지만 춤을 출때 만큼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살사, 바차타 기본 스텝을 가르쳐준 후, 엄청나게 빠른 스텝으로 나를 돌리고 던지곤 (?)했다.
우리는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으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내가 국적불명의 움직임의 춤을 추면 녀석은 삽살이 같은 풍성한 머리를 흔들며 아주 순수한 영혼으로 눈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춤을 췄다. 그래서 녀석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녀석에게 동화되어 뻥뚫린 광장에서 쿠바 사람들과 함께 평소마냥 춤을 추었고
세상 오지랖넓은 A는 그새 다른 한국인에게 접근해 같이 춤을 추자고 한다.
당황한 예쁜 여자분은 멀뚱히 서서 어색하게 거절을 하자
"왜? 재밌어!! 내 친구도 한국인이야. ㅋㅋㅋ"
"억... 외국인인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자기소개를 해줬다. 그래 한국인이라면 이런 광장에서 국적불명의 댄스를 추기가 쉽지 않지..ㅋㅋㅋ.
주말에 '트렌드코리아2018'을 읽었는데 '케렌시아'라는 개념이 나온다.
투우장의 소가 경기에 나가기 전 숨을 고르는 장소로 그 안에서는 안정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윤대현' 교수님이 '어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이것만 하면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활동이 취미'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 때 나의 케렌시아는 클럽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끔씩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youtube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전신거울앞에서 바보처럼 춤을 춘다.
클럽에 안간 지 3년이 넘었지만(앞으로도 갈 일 없을 듯) 아주 가끔은 클럽에 가고 싶다.
아니 언젠간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술에 하나도 안취했는데도 유명인의 공연이 없이도 만취한 사람처럼 함께 춤을 추고 웃고 싶다.
P.S. 이상 발라드와 슬픈 가사와 조용한 노래를 좋아하는 여자사람이었습니다.
<<막간 음악소개>>
그 때 A가 엄청 좋아했던 REDFOO-New Thang 이 노래만 나오면 우린 미쳐 날뛰었다.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내 인기차트에 있던 어딜가나 나오던 Enrique Iglesia-Bailando!
매년 생일이 클럽가는 날이라니. 매년 그 날이 기다려지겠어요.ㅎㅎ
맞아요! ㅋㅋ 그랬죠.
지금은 생일날 회사에 출근하고 있습니당 ㅋㅋㅋㅋ
아직 클럽에 가본 적이 없는... ^^
아마 저도 전 남친아니었으면 가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주변에도 가본 적도 갈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한 때 클럽만 주구장창 다니며 생일은 무조건 클럽가야지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제목보고 우연히 들어오게됐는데 재밌는 글이네요^^
책도 좋아하시고 ㅎㅎㅎ 팔로우하고 앞으로 자주놀러올게요^^
댓글 달아주시고 글도 재밌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게 변화는것 같아요. 가끔은 어릴때 더 치기(?)어리게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못하고 산 게 아닐까란 생각듀 하지만 지금도 좋습니다! 저도 자주 놀러갈게요!
ㅎㅎㅎ그나마 저는 노는거에서 독서로 취미가 바뀌게되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덕분에 스팀잇이란것도 이렇게 알 게 됐고요
가셔서 한국인의 긍지를 보여주고 오신건가요? ㅎㅎ
ㅋㅋㅋ 스트레스가 많았구나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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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이 참 재밌네요!
슥슥 잘 읽혀요 ㅋㅋ
억! 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_~
엔리께 이글레시아스의 바일란도는 사람 악 바락바락쓰게 하는 뭔가가 있어요 ㅋㅋㅋ
전 그닥 미친듯 춤추는 스탈이 아닌데 한 번도 그래본 적도 없는데도 ㅋㅋ 바일란도는 진짜 힘있는 노래야 ㅋㅋㅋㅋ
저도 저 트렌드 저 책 읽었는데 말이죠! 전 제 케렌시아가 뭔진 잘 모르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