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희망퇴직 이야기 - 2014년 5월 27~31일

in #kr-dev6 years ago

4년전 이맘 때,
희망퇴직을 권고받고
퇴사를 결정했던 시기였습니다.
2014년 5월은
희망퇴직의 충격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며
구직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적었던 회고록을
일부 수정하고
스팀잇에 맞게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 개발자의 희망퇴직 이야기 #1 - 2014년 4월 [Steemit] [busy]
  • 개발자의 희망퇴직 이야기 #2 - 2014년 5월 1~26일 [Steemit] [busy]

2014년 5월 28일

이 날에는 지방 사업장에 들르기로 했다.
그 곳에서 근무하는 동기 형님을 뵙기로 했다.
그 곳에 있는 러닝 센터.
입사전 12주 과정이 진행되었던 그 곳.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오후 1시반쯤에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탔다.
점심을 먹어서인지 나른하고 졸리다.
(희망) 퇴직이 코 앞인데도 졸린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어떤 사람들은 밤에 잠도 못 자고 있을텐데...'

잠 자는 것만큼은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것 같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곳에 도착해서 형님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입사전 교육 초기에 같은 조로 만났던 형님이었다.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했다면,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때로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야속하기만 하다.

"니가 갈만한 다른 회사 있는지 내가 알아봐줄께."

그 형의 말이 빈 말인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제 남은 건 교육 센터 방문.
이 곳에서 3개월 가까이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었다.
낮에는 수업 받고,
밤에는 기숙사에서 숙제 하며 시험준비...
수십 명의 동기들과 동고동락하던 시절이었다.
즐겁기도 했고 부대끼기도 했지만,
3개월 동안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다.
입사 후에도 우리는 가끔 서로 만나
술잔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기들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도 떠난다.
러닝 센터를 둘러보며
나는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즐거웠던 그 때가 생각났다.
잠깐이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 5시가 되어 나는 그 곳을 떠났다.
이제는 다시 오지 못 할 곳...

서울로 돌아오는 퇴근 버스에 올라탔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
늘상 접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마지막이다.
잘 있어라.
이제 나는 오지 않을테니...

버스가 강남에 도착했다.
이 곳에 가끔 오는 게 설레었지만,
그 날은 즐겁지 않았다.
바로 집으로 향했다.


2014년 5월 29일.

기대했던 면접의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이었다.
이번 달에 퇴직하고 다음 달에 입사한다는
내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서류 통과한 게 없으니 당분간 면접은 볼 수 없다.

오늘 결과를 계기로 잠시 쉬겠다던 나의 생각을 굳혔다.
공부는 잠시 미루고 이력서, 자기소개서 잘 쓰는 것에만 집중할 예정이다.

개발자에서 FAE로 진로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FAE로 지원은 하지 않을 것 같다.


2014년 5월 29일.

원래는 30일이 퇴직일이지만,
오늘까지 출근하기로 했다.
그런데...
늦잠 자서 지각이다.
마지막 날에 쪽팔리게... ㅠㅠ

오전에 팀장, 파트장, 파트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직속상사들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다.
조직 생활해보면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갈 뿐...

사무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나를 아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시간이 부족해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라도 만나게 되면,
그 동안 도와줘서 감사했다는 인사는 드려야지.

점심은 입사 동기들과 함께 먹었다.
그들과 가끔 모이곤 하던 감자탕 집.
이번에도 장소를 그리로 정했다.
늘 모이던 대로 같이 밥먹고 웃고 떠들고...
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앉아 있었다.
작별 인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왜냐면 우린 또 만날 거니까...

오후에 노트북을 반납했다.
담당자는 확인서를 써주고 나서
바로 하드디스크를 포맷시킨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이렇게 쉽게 없어지니 허무하구나.'

이것으로 퇴직원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인사 부서에 가서 퇴직원 제출하기.
담당자에게 그것을 건네 주었다.
이제는 ID 카드를 반납해야 한단다.
보안 게이트를 거칠 때에는
보안 요원들에게 '퇴직자'라고
말하면 된다나...
이것으로 퇴직 절차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저녁에는 점심에 만나지 못했던 다른 동기들과 소주 한잔 했다.
이들은 그 동안 내가 잘못한 게 많다면서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 이해한다.
내가 잘 했다면 희망퇴직 같은 건 없었겠지.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재취업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새 직장에 가서는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4년 5월 30일

어제가 마지막 출근하는 날이었지만,
퇴직일은 오늘이다.
아침에 집을 나섰지만,
회사로 가지는 않았다.
대신 종로로 가서 내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다.
서점에 가서 책 구경 좀 하고,
청계천에 돌아다녔다.
이 날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음 주는...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2014년 5월 31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늘은 토요일.
여느 주말과 똑같았다.
마누라는 새벽에 출근했고,
나는 낮에 애 보고...
평소와 똑같이 정신없는 주말을 보냈다.
다음 주부터 평일은 어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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