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writing] '한 줄의 관'

in #kr7 years ago (edited)

심리학한쪽.jpeg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면 이런 문단이 있다.

헤어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와 살아 있는 한 줄의 관으로 이어져있다 -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관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작게 맥박이 뛰고, 따뜻한 혈액 같은 것이 둘의 영혼 사이를 미미하게 오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생체적인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관이 끊어질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끊어져야 한다며, 둘 사이를 연결하는 그 가냘픈 라이프라인을 되도록 빨리 생명이 결여된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 관이 생명을 잃고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지면 날카로운 칼로 잘리는 아픔도 그만큼 견디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유즈(주인공의 전 부인)에 대해 되도록 빨리, 되도록 많은 것을 잊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내 짐을 챙기러 갈 때 전화를 건 것이 다였다. 집에 두고 온 화구 일습이 필요했으니까. 그것이 헤어진 뒤 유즈와 나누었던 유일한 대화였고, 그 대화는 매우 짧았다.


요즘 기사단장 죽이기를 한 참 보고 있는데, 내용 중 일부분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헤어진 전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을 읽고서 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사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인상 깊었다.

스토리와 상관없이 이 한 문단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와
보이지 않은 관계의 영역을 그림 그리듯이 표현하고, 그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작가가 묘사한 것 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혈관 같은 한 줄의 관 혹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관을 따라서 타인을 떠올리기도 하고, 보이지 않지만 함께 있음을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은 관계의 따라서 굵어지기도 얇아지기도 한다.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할 수록 관은 굵어지고 상대방과 관계도 살아있는 맥박처럼 힘차게 뛸 것이다. 반대로, 서로가 뜸해지거나 서로 어긋난 감정은 관을 얇게 만들고 결국 끊어지게 될 것이다.

여러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관’은 유효한 것 같다. 때로는 집단안에서 서로의 오해라든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인해 서로의 ‘관’들은 뒤엉켜버린다. 그렇게, 복잡하게 뒤엉킨 끈들은 팽팽해져서 결국 끊어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한 줄의 관’은 어떤 상태일까? 여전히 굵을까? 살아있는 맥락처럼 잘 뛰고 있을까? 아님 희미해져서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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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Thanks for sharing... Love it.

I really like flowers.
because the fragrance flowers that make the heart happy ..
very good post ...

사실 지금은 책을 그리 가까이 하고 있지 않지만 어린시절 책을 좀 읽긴 했지요.. 젊은시절 무라카미 하루끼의 노루웨이의 숲 이라는 책을 일고 정말 쇼킹했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그 시절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는 듯 합니다. 이제 이해할 나이가 되니 책에 손이 쉽게 안가네요. ㅎㅎ
다시한번 책과 가까이 해야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르웨이 숲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 작품도 재밌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그 소설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저 또한 전공책 이외의 것들은 손이 잘 안 갑니다. 그나마 스팀잇 덕분에 조금씩이라도 구준히 읽게 되네요. ㅎㅎ 성민님 감사합니다 !

네 ㅎㅎ 감사합니다. 저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책이죠 ㅋㅋ 감사합니다.
dmy님 멋진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올려주신 내용 정말 좋네요. 관계에서의 보이지 않는 연결 영혼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교류 그것을 “관”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너무 맘에 드네요. 묘사는 말 할 것도 없고요.
아래 @dmy님의 생각들로 저 역시 사람들과의 “한줄의 관”의 상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dmy님~~행복한 월요일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저 대목을 읽으면서 그 비유와 묘사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지도 정확하게 전달 되는 듯 했고요 ㅎㅎ
해피님 좋게 지봐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해피님도 즐겁고 행복한 월요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게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그 당시엔 왤케 어렵던지 시간이 지나고 이제서야 알것두 같고~~ 친구 오빠에게서 선물받은 책이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다시 한번 읽어보고프네요.

저도 상실의 시대 처음봤을때는 어려웠습니다. 흥미롭게 스토리를 따라 가긴 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의미까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네요.
지금 본다면 조금 더 잘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하루키 단편들도 재밌습니다. 추천드려요 ㅎㅎ
덧글 감사합니다 :)

표현은 항상 어렵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소설에서 쓰이는 표현들이 이해가 참 쉬워서 '이런 표현은 나도 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는데요 ㅎㅎㅎ 막상 내가 쓰려고 하면 정말 원초적인 수준에만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ㅜㅜ 소설 쓰시는 분들 대단합니다....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지면 끊어져도 안 아플 거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내 관들은 꽤 많이 잘린 거 같거든요. 아프지 않게..

네 저도 그 부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가지 이유들로 끊어진 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관들도 좀 있는 것 같고요.
브리님 잘 봐주시고, 브리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추석 연휴 쉴때 좀 읽어봐야겠어요^^

주노쌤!! ㅎㅎ 네 책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가깝게 계시다면 제가 얼마든지 빌려드릴텐데 ㅜㅜ
제가 지인들과 책 빌려보고, 빌려주는 것을 좋아해서 ㅎㅎㅎ
추석연휴때 여유롭게 책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ㅎㅎ

저 한 부분만 읽고도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ㅎㅎ 역시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짪은 문장만으로도 한 구절
만으로도 몰입시켜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가 맺고 있는
맺고 있었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dmy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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