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얼이 필요해
어릴 때 살던 집의 내 방은 2층, 테라스 쪽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는 방이었다.
창문 틀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매화꽃 문양이 새겨진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창을 열면 꽤 넓은 테라스가 있었는데
햇빛이 좋은 날엔 거기에 빨래가 널려 바람에 흩날리던 기억,
붕붕카를 타고 빨래 사이를 달리던 기억...그 햇빛 냄새가 떠오른다.
커다란 통에 물을 받아 놓고 물놀이를 하던 기억,
난간에 숨어 지나가던 사람들을 향해 '야!' 소리치고는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깔깔 웃던 기억...
그리 좋은 집은 아니었다고 엄마는 말씀하시는데
나에게는 그저 마냥 행복한 집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난간에 기대어 서면 마침 곡선으로 휘어지는 2차선 도로가 보였다.
휘어진 그 끝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뭐가 나올까?
혼자서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한 번 가보고 싶다...
그 길은 설렘과 긴장을 안겨주는 장치였다.
어릴 적 강시가 나오는 영화가 유행이었다.
강시가 나온다고 해서 공포스러운 건 아니고 코믹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재미있는 영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거고 그 당시에는 진짜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었다.
일렬로 쭉 놓인 관 뚜껑이 일제히 뿅~! 열리며 강시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하고는 막 통통통 뛰어 다닌다.
앞으로 뻗은 손은 나무 토막처럼 단단해서 거기에 얻어 맞음 최소 2미터는 날라가는 게 기본이었다.
강시의 공격을 피할 방법은 숨을 참거나, 부적을 붙이는 것 두 가지!
어린 마음에도 숨을 참지 못 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영화를 본 이후 나는 때때로 숨을 참는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강시가 나타나면 꼭 끝까지 숨을 잘 참아야지!! 다짐도 했었다.
꿈에서 자주 그 도로가 나왔다.
안개가 낀 새벽? 혹은 개와 늑대의 시간인지...
암튼 휘어진 도로의 끝에서 뭔가 푸르딩딩한 불빛이 다가오는 장면으로 꿈은 시작된다.
그리고는 강시 떼가 몰려왔다.
검정 옷을 입고 머리에는 육각 모양인지 사각 모양인지 중국 전통의 모자인지 뭔지 모를 것을 쓰고
이마에는 노란 부적을 붙인 강시들이 도사의 종소리에 맞춰 단체로 통통통 뛰어 오고 있었다.
꿈은 그냥 그게 다였다.
끊임없이 강시가 몰려왔다.
다행인 건...부적을 붙였으므로 나는 숨을 참지 않고 그저
2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통통 뛰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망연히 마라보기만 하면 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내려와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엄마에게
밤에 강시가 집 앞을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고 나중에 엄마가 말씀해 주셨다.
어릴 적 호기심을 자극하던 이야기는 주로 귀신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아빠가 사다준 '오싹 오싹 공포체험'을 읽고 또 읽으며
마치 그 이야기들이 실제인냥 언니와 신나서 떠들고, 엄마한테도 수 백 번은 이야기했었다.
(엄마는 얼마나 재미없었을까..ㅎㅎ)
이야기 뿐 아니라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공포의 대상들도 있었으니..
이름도 옛스런 홍콩할매귀신, 빨간마스크...드라큘라!
홍콩할매귀신한테 손톱이랑 이를 빼앗길까봐 이를 안 보이고 '가나다라...'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길을 가다가 할머니들을 만나면 괜히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빨간마스크가 '나 예뻐?' 물었을 때 어떻게 답을 해야 입이 찢기지 않을 수 있는지...
(답을 아는 분은 최소 내 친구거나 내 동생 친구! ㅎㅎ)
드라큘라를 만날까봐 정말 진지하게 마늘을 가방에 넣어본 일도 있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공포는 그저 상상의 것, 실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땐 '무서워'라고 소리치며 달려가 안길 어른의 품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만나게 되는 일상의 공포는 그 현실감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이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고 사람보다 돈이 무섭고...
전쟁도 생화학 무기도 무섭고, 난민도 무섭다...
어떤 날엔 뉴스를 아예 안 볼 때도 많았다. 잇따라 보도되는 강력 사건들이 너무 무서웠다.
피한다고, 내가 모른다고 그런 일들이 안 벌어지는 게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강시랑 홍콩할매귀신이랑 드라큘라는 피할 방법이라도 있었는데
달려가 안기면 나를 보호해주는 든든한 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의 공포'에는 메뉴얼이 없으니 답답하고 더 공포스럽다.
참..어른이 된다는 건 여러 모로 두려운 일이다.
보호받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보호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이다.
이제 나는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보호해야 하고, 잘 키워내야 하는데...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다.
메뉴얼이 필요하다.
아니면...제 멋에 겨워 살아볼까나?!
<에필로그>
빨간마스크의 질문에 답하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빨간 마스크(이하 빨)와 어린이(이하 어)의 대화를 예로 들어봅니다.
빨 : 나 예뻐?
어 :(공포감에 쩔어) 어...
빨 : 나처럼 만들어 줄게...쫘아악!
빨 : 나 예뻐?
어 : (오들오들...)아니..
빨 : 뭐라고? 이 메주같은 게! 쫘아악!
빨 : 나 예뻐?
어 : 어, 그치만 너처럼 되고 싶지 않아(파워 당당)
빨 : (개뻘쭘...) 아...그래...힝!
끝!
그래서 빨간마스크 답은 뭐죵?
빨간마스크답은 바로 당신이요.
당신이 빨간마스크 잖소?
굿잡.
ㅎㅎ 카비님이 살려주셨어...ㅎㅎ
세 가지 중 제이미님이 원하는 걸 선택하시면 된답니다^-^
전 입이 찢기고 싶지 않아서 3번요!!
근데 막상 만나면 지릴 듯요ㅎㅎ
이거 답 이제 알았네요. ㅋㅋ
개발자님...
그냥 제이미님 말씀처럼 머리 끄댕이가 제일인 것 같아요ㅎㅎ
화장이 진하셔도 머리끄댕이가 ㅋㅋ 이거 옛날 성형중독 괴담 같은 느낌이군요.
아 저는 다 결과가 같을거라 생각하고 봤네요.ㅋㅋ
답 안 하고 머리 끄댕이 잡는게 더 확실할 것 같아요. ㅋㅋㅋ
ㅎㅎ 어릴 땐 친구들끼리 엄청 진지하게 저런 얘기하면서 달리기를 연습해야 한다고 도망가려면 막 이러고...
참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갑자기 처량..
아 전 무슨 웹툰에서 본거 같아요. 외국애들은 괴담 그런거 딱히 없었던듯ㅎㅎ 아 학교에서 좀 으스스한 소문 있는 애들은 있었지만요.
으스스한 소문..있는 애들
;;;걔들이 더 공포였겠어요
사람이 더 무서워서..^-^;;;
머리 끄댕이가 젤 낫겠어요 정말!!
저는 못 하겠지만..누군가(제이미님 같은 친구가) 해주었으면...ㅎㅎ
앞으로 인공지능이 메뉴얼을 알려주지 않을까요?
아이와 노인 돌보미 봇이
조만간 대세가 될 듯한데요.
그때는 둥이들도 다 컸을라나?^^
노인돌보미 봇은 정말 괜찮겠어요!!
아이들이 커도 매순간 메뉴얼이 있다면 참고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일단 저는 광화님께서 해주시는 말씀들에 의지하는 걸로 하려고요^-^
홍콩 할매 귀신, 빨간 마스크 이런 이야기는 들어 보지를 못했네요.
제가 무딘건지 세대가 안 맞는건지...
제가 클 때 본 가장 무서운 것은 전설의 고향에서 나온 구미호죠. ^^
불 끄고 흑백 티비에서 본 구미호는 정말로 지금 생각해도 오싹합니다.
구미호!!
전설의 고향!!
어릴 때 본 기억이 있어요
진짜 무서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할머니 뒤에 숨어서 봤었는데요..
오들오들;;;^-^
강시는 좀비영화의 시초죠. ㅎㅎ
강시영화는 절대 공포영화는 아이었던 것 같네요.
가끔 귀여운 강시도 나오곤했죠.
요즘은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습니다.
사람은 무섭지만 테일님은 안 무섭;;; ㅎㅎ
오늘 날씨 너무 더운데 출장가시는 거 아니죠?
테일님 출장이 너무 잦으신 것 같아요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 딱 계세요!!!
ㅎㅎㅎ 저는 절대로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키만 컷지 생긴 것 부터 안무섭게 생겼네요.
느낌에 따뜻한 분일 것 같았어요!!^-^
그림이 완벽하군요 ㅎㅎ
미파. 이건 진짜 잘그렸어. 감각있어.
그쵸?!
미완이라 더 의미있어요
천재들은 때때로 이런 미완의 작품을 남기는 법이죠!ㅎㅎ
앗!!
미파님의 작품인 걸 명시하지 않았네요ㅠ;;
괜찮습니다.
자유에요 저그림은 디디엘엘님의 것입니다.ㅎㅎ!
그림에서 미파님의 느낌이 나던데 역시 미파님의 그림이군요ㅋㅋ
예전에 명화 신청해서 받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때 그려주신 거예요^-^
빨 : 나 예뻐?
파 : 첫눈에 반했어 나랑 사귀자
빨 : 내스타일 아니야!!!! 쫘아악!!
이게 뭐야요!!
ㅋㅋㅋㅋㅋ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ㅎㅎ
안될안 ㅠㅠ
진짜 강시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아들은 눈만뜨면 강시 영화 를 봐서 같이
보던 생각이 나요.중국 영화 를 좋아해서
그쪽 영화 를 매일 봤어요..
진짜 지금은 사람이 무서운것 같아요..
중국 영화가 참 인기 많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헐리웃 영화가 많아졌었어요
주윤발 나온 거랑 장국영 나오는 영화도 다 재미있던 것 같은데 강시영화 말고는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아!! 성룡도요!!
전 강시를 공포로 접하지 않아서 매력적이라 느끼는 것 같아요ㅎㅎ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서 힘들다는 게 맘 아프네요...무조건 화이팅이에요
고마워요 솔피님~
무조건 화이팅 솔피님도요!
메뉴얼 10수달. 저한테 사실랑가요?
도! 도담아 잘있나? 카비 아저씨야.
담! 담비야... 담비는 저집에 없잖아... 담... 담... 담이을 못넘겠네.. 다음 기회에..
와.... 2행시 실화임?
누구신지... 모르는 아이디라...
흡...흐흐;;;
어릴 때 손 앞으로 나란히 하고 콩콩 뛰던거
생각나네요^^;; 이불 뒤집어 쓰고 무섭다며
눈은 부릅뜨며 보구요~!!
ㅎㅎ 화면에서 눈은 뗄 수 없고 무섭긴 하고...
이불 뒤집어쓰거나 어른들 등 뒤에 숨어서 봤었어요ㅎㅎ
추억돋고 좋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