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나의 편

in #kr8 years ago (edited)

선과 악의 이분법은 참으로 명쾌하다. 악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선은 지켜낸다. 나쁜 놈과 착한 놈, 악의 무리와 정의의 사도간 대결이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악당들을 착하고 정의로운 전사들이 지켜낸다. 육박전 끝에 결국 선이 이긴다. 악당을 멋지게 쳐부수는 용사들은 아이들의 영웅이다. 아동용 만화에서 두드러진다. 아이들은 만화의 주인공을 보며 영웅들의 활약에 환호한다.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들은 괴물을 보낸다. 세상을 혼란에 빠트려 야금야금 갉아먹을 생각 같은데, 좀 이상하다. 잔뜩 한꺼번에 보내면 될 것을 매번 조무래기 달랑 한 놈만 보낸다. 나타나는 족족 주인공 일당에게 박살난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는 후일을 기약하며 퇴장한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하하하하 웃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사라진다.

주인공들은 승승장구하지만, 악당들은 항상 실패한다. 작은 계획도 성공하는 법이 없다. 매회 이어질수록 이들은 개박살 나고 망신 당한다. 보는 마음에 서서히 악당을 동정하는 마음이 생긴다. 응원팀이 10-1로 이기고 있으면 슬슬 상대팀이 불쌍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응원팀이 바뀌어 악당들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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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은 영웅보다 친근하고 매력 있었다.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을 가진 이들이었고 패배했음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신사들이었다. 페어플레이 정신도 있었다. 난 이들의 포스에 반했다.

반면 주인공 무리는 어땠는가. 점점 변해갔다. 유연함과 임기응변 따윈 없어졌다. 이들의 싸움은 성전이 되었고, 자신들의 행동은 절대 옳은 것이 되었다. 그들이 틀렸을 수 있음에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이런 의문이 가능하다.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심판하는가? 적법한 공권력을 가졌는가? 하다못해 슈퍼히어로 자격증이라도 땄는가? 정의라는 허울을 쓴 일개 자경단원 아닌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선과 악은 달라진다. 기준과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정당하다 믿고 남을 비난하는 자들은 점점 괴물이 된다. 악당보다 악해진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우리는 여론재판 혹은 인민재판으로 다른 이를 비난하며 심지어 심판한다. 무슨 자격이 있는지 모른다.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도 심증만으로 사람을 죽인다. 김보름과 노선영 중 잘못한 사람은? 정봉주는 성추행범인가?

살인 면허는 물론 판사 자격도 갖지 못한 우리다. 차고에 지구를 지킬 변신합체로봇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론을 만들어낼 방구석 키보드가 있다. 싸늘한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악인을 만들어 낙인 찍고 심판한다. 익명 뒤에 숨어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돌을 던진다. 편안하게 나쁜 놈을 응징한다. 누구나 어릴 적 꿈꾸던 영웅이 되는 세상이다. 참으로 멋진 세상이다.

이미 괴물이 된 우리는 비난 당하는 그들보다 훨씬 악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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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있는 키보드
그게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겟죠.

맞습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무기가 될수도 있죠.. 조심해야겠습니다. ^^

이미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죠.... 대다수 연예인들이 댓글은 아예 안본다고 하던...... 저도 굉장히 많이 신중해졌다고ㅜ생각이 되는데 사람이다 보니 그 제어가 쉽진 않네요

넵. 이해당사자도 아니면서 공인도 아닌 사람들을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려고 하죠. 때론 심판하려 들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자제하려 노력중입니다. ㅎㅎ

평가하고 재단하기 좋아하는 게 사람 심리같습니다.
더욱이 모든 것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회인 만큼 그 속에서 자라온 자신도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판단 속의 주인공은 절대적 선인 자신이죠 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내로남불이죠. 멋대로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면서, 자기가 그런 상황일땐 극도의 불쾌감을 느낍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좀 돌아봐야할텐데요..ㅎㅎ 방문과 공감 감사드려요~

어쩌면 매일매일 바뀌는 이 사회 구조에서는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없는 건지도요!

구분이 사실상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해요 ㅎㅎ
정의감에 불타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같은 파렴치한이 돼 버리죠.

엇! 제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입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단순히 악플은 죄악이지만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응징일 수 있군요. :D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겠죠. 댓글 감사드립니다. ^^

우리 사람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생활의 발견>에 나온 대사입니다. 재밌는 건 그런 괴물들에 의해서 홍상수 감독은 제대로 한번 물어 뜯겼죠. 물론 지금도 그의 기사만 나오면 괴물들에 의해 물어 뜯기고 있지만 그래서 전 그의 용기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선과 악, 사람과 괴물, 이원적인 세상에서 우리 개돼지들에게 던져진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사람이 되는건 정말 힘든데.. 괴물이 되는건 순식간 같아요. 홍상수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비난하며 돌 던지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를 심판할 자격은 없겠죠. ㅎㅎ우리 개돼지라니.. 섬뜩하면서 멋진 표현입니다. 다시 한번 좋은 댓글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공감이 됩니다. 비난에 앞서 먼저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나도 그 악당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맞습니다. 악을 비판하며 서서히 그 악보다 검게 물들어가는 일들.. 너무 흔히 보이네요.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겠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익명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오늘도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생각하면...

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어나면 늘어났지..
이러한 행보가 줄어들거라고도 생각되지 않네요...

잘 보고 갑니다.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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