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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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8 (월)

■ 시편 89:38-52

[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구할 때에 ]

우리의 대적은 물리력이나 권세의 힘으로 삼키려는 외부적인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받은 인생이 처참한 상황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큰 대적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마치 언약을 철회하시고 다윗과 그의 나라를 버리신 것과 같은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 탄식을 쏟아닙니다. 시인은 그러한 상황을 보며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그의 모든 율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요새를 무너뜨리셨으므로 길로 지나가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의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라고 탄식합니다(38-42).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던 다윗의 왕관은 땅에 떨어져 욕되게 되었고, 요새는 무너졌으며, 강탈당하지 않으리라던 나라는 울타리가 파괴되어 탈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른손으로 다윗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셨으나, 오히려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셨고, 하나님의 백성보다 대적을 더욱 기뻐하셔서 그들이 마음놓고 이스라엘을 유린하도록 버려두셨다고 울부짖습니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거두신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 인해 진노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이처럼 탄식하고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아닙니다.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율례를 깨드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고 말씀하신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30-34). 즉, 언약에 근거하여 진노를 그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한 것입니다. 처참한 상황을 당할때에 내 자신의 죄악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덕적인 기준의 악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깨뜨리고 자기중심으로 행하였던 모든 것들이 악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죄악이 셀 수 없어도 하나님께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의 의로 인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대적을 향해 있는 날 선 검을 무디게 합니다. 그리고 대적에게 향해 있던 칼끝을 내게 돌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시자 이스라엘의 영광은 사라지고 수치가 온 땅을 덮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세워갈 수 있으리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일시에 무너지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며 존경받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았던 인생이 아프고 괴롭고 불쌍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며 슬퍼하기 전에 그러한 모든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믿음은 곧 하나님만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탄식과 울부짖음은 이스라엘이 죄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그 죄악을 묵인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음을 깨달은 것이며, 오직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확신한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확신한 간절한 애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본질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버림이 아니라 더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한 회초리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처참한 상황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신하고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라고 간구합니다(46).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신 것이 곧 이스라엘의 고통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라보실 때에 비로소 구원의 은혜가 있을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신뢰하며 굳센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간절히 바라보는 자에게 베풀어집니다. 오늘 나의 수치와 괴로움, 나의 젊은 날의 아픔을 회복시켜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지금의 상황만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내게 단지 신화 속의 존재나 과거 이스라엘의 신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실상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구할 때에 친히 나와 함께 하셔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시인은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라고 고백합니다(47-48). 이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허약하게 창조하셨음을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인생이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형상대로 지으신 인생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죄악 중에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제 시인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근거로 죽음의 현실 속에서 구원을 받을 길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물질과 높은 권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러한 풍요와 쾌락을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며 자신의 길을 택하여 갔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이스라엘조차 이러한 연약함으로 스스로 넘어졌다는 것은 인생 중에 기댈 자가 아무도 없으며, 스스로 설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인은 오로지 하나님의 성실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에 호소할 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스스로 참혹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으며 완전한 무기력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비방한 것은 곧 기름부음 받은 자를 비방한 것이며,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호소합니다(51). 하나님은 자기백성의 수치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시며 백성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대적의 손을 강하게 하여 채찍으로 사용하셨지만, 그러한 대적의 손을 반드시 꺾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모든 세상 가운데에 선포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강팍한 인생의 변명일 뿐이며,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자의 무지함일 뿐입니다.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분이라는 확신을 가진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찾고 계시고 그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나의 기도>
지금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어두워져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지 못한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나의 마음과 행함에 의로움이 없다 하여도 신실하신 약속 안에서 호소하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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