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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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4 (목)

■ 민수기 35:22-34

[ 죄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

고의적 살인에 대한 판단기준은 '살인에 대한 의도성'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악의'라고 기록합니다(22). 돌을 던지거나 사람을 밀쳤을지라도 악의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니거나 사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한 행위일 경우에는 사람이 죽었을지라도 고의적 살인으로 인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도피성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22-25).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러한 비고의적 살인의 예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도피성에 피할 수 있는 부지중의 살인 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19:4-6). 즉, 원한도 없고 해할 의사도 없이 사람을 죽였을 때, 비록 결과적으로는 고의적인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더라도 살인을 할 만한 동기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도피성으로 피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과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겉만 보고 의도를 오해하여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라고 하며 공의로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시72:4). 나로인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작게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내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이웃의 마음을 먼저 배려하고 살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무리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 의도성과 악의를 먼저 가리기도 전에 악인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중은 고의적인 살인 여부를 잘 판단하여 실수로 살인을 했다면,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그를 건져서 도피성으로 돌려 보내야 합니다(25). 도피성은 안전한 피난처인 동시에 감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지중에 살인을 한 자라도 그 행위의 의도성이 없다 할지라도 도피성으로 피함으로 살인의 죄 자체가 사함을 얻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인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할 경우 그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만 거주해야 했고,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을 나와 보복하는 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로인해 피 흘린 죄"에 대하여는 물을 수 없었습니다(25-27). 이는 아무리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하더라도 그 죄값에 대한 보응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곳에서만 거주해야 한다는 것은 죄의 댓가는 반드시 죽음을 통한 대속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살인자의 죄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서만이 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한 자의 죄는 도피성으로 피함과 동시에 즉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보류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은혜와 긍휼 안에서만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살인한 자가 도피성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이미 죽은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 안에서만이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 삶의 지경이 제한되고 속박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대속의 은혜를 벗어나면 "이미 죽은 자"와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세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을 나갔다가 피의 보복을 하는 자에게 죽으면 그 책임이 본인에게 돌아가듯,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자의 영원한 죽음과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한 세대와 함께 모세가 죽고 다음 세대와 함께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세움 받았듯이,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을 나올 수 없다는 것은 그와 함께 죄가 죽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도피성에 대한 규례를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에 대한 기준으로 삼도록하십니다(29).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라도 함부로 그 생명을 거둘 수는 없었습니다. 분명한 살인의 증거와 증인이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며, 두 사람 이상이 살인한 자에 대해서 증언하지 못하면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30). 이는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일을 방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살인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이도록 하였으며,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속전을 받고 도피성을 나가 자신의 거주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31-32). 생명은 돈으로 보상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돈이 있는 자가 생명을 훼손한 후에 돈으로 해결하고 그 죄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라도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머무는 것은 살인의 죄에 대한 책임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하시기까지 근신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와 규례를 피해가려는 것은 그 자체로 죄가 됩니다. 돈의 영향을 받고 법을 굽게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서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돈과 권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판단할 때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 위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고의적인 살인을 이처럼 엄격하게 다루고, 무고한 살인을 방지하고 함부로 보복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살인이 약속의 땅이고 생명의 땅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땅을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죽음은 부정한 것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살인한 자의 죄를 묻지 않는 것은 지속적으로 땅, 곧 하나님께서 백성 중에 거하시는 곳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 삶의 모든 불의와 불법과 원망과 악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켜 더럽히는 행위로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일입니다. 피는 피로서 속함을 얻고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죄의 행위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 주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무고한 자가, 억울한 자가 내 주변에 없도록 늘 이웃과 형제에 대해 배려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펼쳐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죄에 대하여 엄격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내 삶의 모든 불의와 불법을 몰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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