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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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29 (토)

■ 민수기 22:1-20

[ 더 큰 권세와 부귀로 유혹하다 ]

이스라엘 자손이 길을 떠나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1). 십볼의 아들 발락은 이스라엘이 시혼이 통치하는 아모리족속의 남왕국을 멸망시켰던 것과 그들의 수가 매우 많은 것으로 인해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2-3). 이는 이스라엘이 아모리족속의 남왕국을 멸망시킨 것과 같이 모압도 그러한 일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라고 합니다(4). 아모리 왕 시혼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행하신 일은 그가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모압의 왕 발락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대신 복술가인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를 돈으로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군사적인 대응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발락이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였다면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에게 롯 자손이 모압의 경계를 침범하지 말것을 명령하셨습니다(신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고자 복술가인 발람을 통해 저주하도록 한 것은, 이백만 명 이상이 되는 이스라엘의 숫자와 군사력은 무서워하면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아모리 남왕국을 멸망시킨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군사력만을 무서워한 것입니다. 발락은 브돌에 거주하고 있는 복술가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어서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라"고 전합니다(5-6). 하나님께서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고 복술가인 발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였는지는 발람에게 전한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온 지면을 덮을 많큼 많다는 것과 강한 군사력을 가졌다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복술가가 저주하면 자신이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어떤 저주에도 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23:23). 어리석은 자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고 말씀에 복종합니다.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이르로 모압 왕 발락의 말을 전합니다(7). 발락이 걱정하는 것도 이스라엘로 인한 물질적인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고(4), 그러한 자신의 근심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일을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조금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이나 물질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술가인 발람은 발락의 사신들에게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고 말하고, 그의 말에 따라 사신들은 발람에게서 유숙합니다(8).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12). 발람이 하나님께 묻겠다고 한 것은 이미 그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주신 약속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발락의 사신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서도 안되며, 그것을 하나님께 물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묻겠다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다기 보다는 사신이 가져온 복채에 이미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9). 하나님께서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발람으로서 마땅히 거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묻는다는 핑계로 왜 발락의 사신들을 집에 유숙하게 한 것에 대한 책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신들과 함께 가지 말며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한 것은 이미 돈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린 발람의 마음을 아신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2:3). 이는 축복과 저주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락이 발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한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얻은 우리는 사람들의 어떠한 저주에도 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미 복 주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발락의 사신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들을 돌려 보냅니다(13).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은 고관들"을 발람에게 보내어 다시 요청하는 한편, 발람에게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17). 복채만으로 되지 않자 이제 더 큰 권세와 더 큰 부귀와 영화를 제시하며 발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발락은 발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돈과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발락의 사신들의 말에 발람은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합니다(18). 발람의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에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복술가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가식적인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가 사신들을 따라 나귀를 타고 갈 때에, 길 앞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본 나귀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가자 세 번이나 채찍으로 때리며 빨리 갈 것을 재촉한 것에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23-27). 이는 발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물질과 권세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발람이 발락의 사신들에게 다시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한 것은, 그의 마음에 물질과 권세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더 물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복 받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께 재차 물은 것은 신실한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돈과 권세에 유혹받은 육적인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발람에게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20). 더 이상 발람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신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발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같으나 이미 마음으로는 물질적인 탐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났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악의를 아시고, 일시적으로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알면서도 기도해보겠다고 말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즉시 결단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더 큰 권세와 부귀를 약속하는 세상의 유혹 앞에서 믿음의 결단만을 할 수 있도록 심령을 지켜주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어디있는지를 알면서도 기도해보겠다는 가식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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