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판관의 협상론 서문(1/3) - 무엇이 어른인가?

in #kr8 years ago (edited)

378db97956.png

  • 지난번 쓴 내용을 3 part로 나누어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알면 돼. 너가 원하는 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영화 「비열한 거리」의 대사다.

피카고 같은 천재라면 굳이 저런 교훈을 익히지 않아도 사는 데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사람들이 맞추어 주었을테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의 필요에 자신을 깎아가며 어른이 되기 위해 시간을 쏟는 것에 반해, 그는 스스로가 말했던대로 어린 아이로 사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한 인간이다. 세상에는 머리 따위 같은 건 쓰지 않아도 자신의 원형만으로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한 줌 인간들을 제외하면, 그 외 사람들이란 말 그대로 70억 분의 1일 뿐이다. 세상은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애처럼 징징 짠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야 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많다면, 그저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그런 볼썽 사나운 자기 연민 따위는 버리는 것이 좋다. 굳이 코즈믹 호러의 세계관을 인용하지 않는다고 쳐도, 도대체 신이나 우주가 도처에 깔린 인간의 존재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을 것이며, 관심이 있다 쳐도 모든 사람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물리 법칙 상 말도 되지 않는다.

파울 코엘료가 쓴 저 구절을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혼동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는 성 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는 코란의 문구를, 여자 의사와 관계 없이 억지로 결혼한 뒤 강간을 해도 좋다는 해석하는 부류의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평범한 인간들, 특히 불행하게도 승자독식이라는 그 명확한 원리를 안고 살아야 하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자기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막연한 선처는 기대하지 말아라.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는 피카소가 아니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고,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든, 적당한 자리에서 매일 소소한 일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든, 불공평함을 인정하지 것이 먼저다. 그걸 부정하는 것만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여자라면 옷이라도 벗는다면 잠깐이나마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겠지만, 당신이 나만큼이나 평범한 수컷으로 태어난 이상, 당신이 줄 것이 없다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외쳐도 세상은 당신을 보아주지 않는다.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에는, 희랍의 철학부터 현대의 만화책까지 시공을 넘는 보편성이 있다. 만화 <데스노트>에 등장하는 10대 소년은 어느 날 이름을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승사자들의 노트를 손에 넣는다. 그는, 그날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매일 범죄자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그들을 처형한다. 주인공은 누가 범인일 것 같냐는 이 질문에, 이 범인은 10대 소년일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는다. 어른이라면 굳이 이 노트를 쓴다면 자기 이익 때문이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 하에 이렇게 열과 성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어른의 본질이다. 의미 따위는 찾지 않고 거짓과 기만 없이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행위를 거기 달성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래서 나이가 아닌, 사회적인 의미에서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가진 것이 많고 표면 상 상당히 관대하다. 그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 하에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왔기 때문이고, 바뀌지 않을 세상이나 다른 사람 따위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과 직결되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즉 어른이라는 것은 그저 나이가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사람은 자존심 따위로 인해 자기 욕망을 솔직하게 직면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에도 통찰과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는 것도,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삶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보통은 남들이 사는대로 살다가 뒤늦게야 후회한다.

둘째, 사람은 보는 것을 믿기보다 믿는 것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일만큼 괴로운 경우가 많다. 일단 세상이라는 산에 비해 자신의 현실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으니. 그 빈곤한 현실을 보는 것보다는, 이데올로기나 어떤 믿음으로 빈 자아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원래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허무감을 견디지 못해서 본인을 진지하게 신의 모사로 생각하거나 민족 통일이나 계급 투쟁을 위해 앞에 선 혁명의 기수, 국가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구성원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거기에 맞게 니 편 내 편을 나누며 한쪽을 증오하며 편하게 살다가 일평생을 마치는 경우도 흔하다.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도 좋다. 어쨌든 세상은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이들로 인해 조금씩은 발전해왔으니까. 즉 자신의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을 가지고 산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만큼 치열하게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면 이는 치기 어린 객기일 뿐이다. 조영래 변호사가 세상을 바꾼 것은 그가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줄 것이 없음에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전태일 열사처럼 자신의 목숨이라도 분신할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이 사회에 뛰어들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왜곡한 이데올로기에 천착해 완장을 차고 죽창을 휘두르는 일 뿐이다.

칼 포퍼는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시도는 늘 지옥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세상이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나눌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과, 사회 상층부에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자들과 구별되는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 없이, 자신을 발전시켜보고자 노력하고 그 한계에 부딪혀 보지도 않고 막연히 세상을 바꾸는 데에 내 시간을 쏟았으니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 것만큼 대책 없는 자기애(自己愛)도 없다. 그래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군사 정권을 찬양하는 인사로 변절하는 것이다. 차라리 어차피 죽을 때까지 검증이 불가능한 종교나 가졌다면 애당초 배신감을 느낄 것도 없을 것을, 남들은 맨 밑바닥에서 머리 빠지게 일하고 공부할 때 어설프게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냥 그 기분을 만끽하며 현실을 부정하다가 배신감을 느낀다니 이 얼마나 웃긴 개그란 말이냐.

일단 어른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든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익히는지가 전부다.

Sort: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네요...

저렇게 적었습니다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1
BTC 60930.75
ETH 1577.59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