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의 사악함에 대하여

in #zzan5 years ago

관종의 사악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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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찾아달라는 호소나 미아찾기 캠페인이라기보다 그 부모가 처한 상황과 파탄 지경에 이른 가족의 아픔을 다룬 짧은 연작 다큐였다고나 할까요.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졸지에 천하에 다시 없는 죄인이 되어 한 집에 사는 시부모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아들이 앵벌이를 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경찰의 말에 자살까지 생각합니다. "애가 몸이 약해서 그 판에서 살아남았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죠.

촬영하면서 아이 부모는 웃다가도 울었습니다. 얼굴 깊숙히 드리워진 그늘이 너무 안돼 보여서 내가 설레발이라도 칠라치면 설핏 웃음을 짓다가 제 말꼬리에서 아들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고는 그예 아들 이야기를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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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작으로 방송을 내보내던 중 아이 아버지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확실해 보이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겁니다. 뭐 물어볼 틈도 없이 7시 30분까지 미아삼거리 역에서 만나자!고는 전화 끊습니다. 저 역시 조연출이 뭐 물어볼 틈도 없이 카메라 챙겨 들고 빨랑 나와! 소리치고는 미아삼거리로 내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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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미아삼거리 대한제일증권 빌딩 옆 제일 교회... 정신지체아들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6살 정도 된 아이.가 있다. 이름을 물어 봤더니 00이라고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든 저와 조연출이 도저히 그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뛰어다닙니다. 찍은 테잎을 보니까 저와 조연출의 헉헉대는 소리 때문에 오디오를 쓸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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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아버지를 미치게 한 것은 "지금 옆에 있는데 바꿔 드릴까요?"라고까지 했답니다. 그리곤 잠시 뒤에 아이가 안받겠다네요..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아버지는 미아삼거리 대한제일증권 빌딩을 30분 동안 찾아 헤맸습니다. 저희도 덩달아 엉덩이에 불침 맞은 듯 뛰어다니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 대한제일증권이란 증권사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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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에 걸어 "대한투자증권"이나 "제일증권"이 미아리에 있는가를 알아 봤지만 그것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라는 대답... 하지만 아버지는 그 제보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10분 동안 길게 통화하며서 아이의 특징과 입고 있는 옷 색깔까지 이야기해 주었고 이름이 00이니?라고 누군가에게 묻는 소리까지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가르쳐 주었다고 하고요.... 한 번 전화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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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불러 줬다는 핸드폰 번호는 '이 번호는 사용되지 않는 번호'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은 살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핸드폰은 경찰, 전화국과의 협조를 통해 어떠한 발신제한 없이 모든 발신자 연락처가 뜨게 되어 있었거든요. (지금은 모르겠는데 그때는 이게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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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른 다음 통화를 시작합니다.
"임00씨죠?"
"누구세요?"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다 들립디다.)
"아들 잃어버린 아빱니다. 아까 제보 주셨죠?"
"이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거의 고함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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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장난전화였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전화해서는 소설 쓰고 연극하고 굿하고 장구치는 장난전화였습니다. 핸드폰 너머로 여자의 횡설수설이 들려옵니다. 동생이 전화한 것 같다고 했다가 1분 뒤에는 언니라고 했다가 말을 더듬으면서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를 계속 지껄입니다.

"하나만 물어 봅시다. 00이를 진짜 본 거요?" 아버지가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 아까 PD 두 명 숨이 턱에 닿도록 하며 미아삼거리의 밤길을 내달리던 아버지의 다리는 벌써 풀려서 휘청거리고, 희망으로 빛나던 눈빛은 이제 푸른 분노로 변합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장난이냐 아니냐를 묻던 아버지는 수화기를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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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버지는 무척 예의바르게, 곱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런 전화 하시면 안됩니다.." 열통이 터져 욕이라도 하고 끊으시지 그랬냐고 하자 아버지는 힘없이 말하더군요. “혹시나 그래도..... 그 여자가 00이를 데리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분통이 터지다 못해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잠시 후 봐 뒀던 여자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 미아 찾기 방송하는 방송팀인데요.... 아버님 전화는 경찰하고 저희하고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아? 예.. 예..."
"아까 통화하신 내용 다 들었습니다."
"예? 예.. 예.."
"아까 하신 말씀 다 거짓말입니까?"
"예? 아니.... 동생이.. 언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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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갈같은 여자, 제대로 말도 못하고 횡설수설입니다. 결국은 장난이었다고 실토를 했지요. 이럴 땐 PD의 직업 윤리고 뭐고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전화상으로 이 나쁜 사람한테 상처를 줄 것인가밖에 대가리에 떠오르는게 없죠.. 그냥 스트레이트로 퍼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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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검열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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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끊으려는데 이 여자가 또 묘한 소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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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아이 찾게 해달라고 기도할께요."

전철안 스텐레스 기둥을 두 손으로 그러쥔 아버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미아삼거리에서 당산역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나직하고 또 나직하게 내뱉는 소리...... "사람들이 무서워요.... 사람들이 무서워요. 하나 하나가 다 우리 애 데려간 사람들로 보이고.... 그 여자같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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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관종’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관심받고 싶어하고, 나아가 누군가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끌고 싶어하며, 자기가 누군가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모습을 즐기는 면도 있습니다. 이 관종끼가 자신의 노력과 성과로 드러나게 되면 아무 문제가 없겠고 되레 성취의 동기로 칭찬받을 것이나 과장과 허위, 기만으로 이 관종끼를 발휘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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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질이 나쁜 이들은 슬픔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심경을 이용하는 관종들이죠. 사건이 터지면 온갖 허위 제보가 쏟아집니다. 어떤 이들은 정교한 거짓말로 안그래도 정신없는 사람들 혼을 빼놓지요.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위 여자가 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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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 개인적으로 가장 분노했던 것은 부모들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상에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우리 어디 살아 있어요.”라고 소식을 띄우거나 심지어 아이들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가 배 안에서 문자 보낸 것처럼 가장했던 ‘관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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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추적에 죄다 들통난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흰소리를 늘어놨었죠. 아무리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한 거짓말이라 해도, 그 거짓말이 누군가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는다면 그 ‘공감’은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일이 아니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폭로했는데 그 폭로에 진실성이 없다면 그 ‘정의’란 어느 불의보다도 더 사악한 죄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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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의 행적을 보면서 저는 이미 그녀에게 한 점 신뢰를 느낄 여지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녀의 ‘진실’은 아무것도 구체적인 게 없고 장자연의 한을 위해 ‘용감하게’ 드러낸 사실 역시 전혀 없습니다. 섣부른 예단이 아니라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그녀가 정당하다면 캐나다로 갈 이유가 없고, 돌아오지 못할 까닭이 없고, 캐나다에서라도 그녀가 알고 있는 진실을 죄다 폭로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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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장자연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돈까지 끌어가서 지금도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악질적인 형태의 ‘관종’입니다. 이런 관종들을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고 두호하거나 “그럼 장자연의 진실을 밝히지 말자는 거냐?고 반문하는 것은 관종이라는 독초들에게 볕과 양분을 부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나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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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어 방바닥을 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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