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in #zzan3 years ago

1888년 6월 23일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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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사람의 이름을 딴 학교나 거리가 많다. 워싱턴이니 링컨 등 익히 알만한 위인들의 이름이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이 그 이름을 빌려 준 사람은 조금 낯설 것이다. 프레드릭 더글러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흑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흑과 백의 혼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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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였던 어머니와 그 주인 사이의 아이였고 당연히 날 때부터 노예였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어머니와 떨어졌다. 노예에게 가족의 정이란 사치였고 비능률의 이유였기에. 여덟살에 다른 집에 팔려간 프레드릭은 어느 맘씨 좋은 여주인에게서 글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며 글 배우는 것을 막았다. 노예가 글을 배우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불법에 앞서서 탐탁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놈이 글을 배워 뭣하느냐는 인식은 동서고금을 망라해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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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총명한 노예는 글을 익혔고 책을 통해, 그리고 신문을 읽으며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문맹에서 벗어난 것이 축복 아닌 저주로 여겨졌다고 했다. 너무나 많은 사실들, 잊고 살기엔 너무나 참담한 현실들과 그 속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뼈아프고 진저리쳐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노예는 이미 노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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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에는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에 잠기고 주인 말에 삐딱한 노예들을 골라 순화(順化)시키는 훈련소가 있었다. 마치 애견훈련소에서 배변훈련을 시키듯 이 노예 훈련소는 채찍과 몽둥이로 인간에게는 필요하나 노예에게는 불필요한 자아의식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글러스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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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외모도 잘 생겨 훗날 “아프리카의 왕자같았다.”는 찬사와 더불어 백인 여성들의 구애를 받았던 더글러스는 자신을 채찍으로 다스리려는 노예 훈련자에게 달려들어 그를 때려눕힌 것이다. 이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그는 탈출에 성공하고 자유민이었던 흑인 애나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본격적인 노예 폐지 운동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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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뛰어난 연설가였다. 노예제 폐지 집회에서 그가 토해 내는 사자후는 청중을 흥분시켰고 집회의 단골 연사가 된다. 1845년 그는 자서전을 집필하는데 당장 베스트셀러가 됐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번역 출판될 만큼 히트를 친다. 그런데 과거 박노해 시인이 “노동자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받았듯 더글러스도 비슷한 의심의 대상이 된다. “노예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증명하기 위해 또 연설대에 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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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까지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에 명연설가였지만 그래도 그의 신분은 도망 노예였고 언제 추노꾼들에게 잡혀 노예의 구렁텅이에 빠질지 몰랐다. 그러던 중 그는 영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다. 자유인이 된 그는 더욱 더 활발하게 노예 폐지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는 노예 제도 자체도 그렇지만 노예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에게 “좀 투박하게 말해야 노예 출신이라는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위선적인 백인들도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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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7월 4일은 아메리카 노예에게 무엇인가? 내가 대답하겠다. 그 날은 일년 중 다른 모든 날들 보다도 노예들을 항상 희생시켜 온 그 불의와 잔혹이 더욱 크게 가해지는 날이다. 노예들에게 당신들의 기념일은 가짜였다. 당신들의 기도와 찬송과 설교와 감사는, 당신들의 모든 종교적인 가두 행진과 모든 엄숙한 행사와 함께 우리들에게는 단순히 허위 좋은 가장이며, 기만이며, 속임이며, 불경이며, 위선이다. 당신들은 몹쓸 짓을 한 이 나라의 창피스러운 죄악들을 얄팍한 허울로 덮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미국인들 이상으로 더 충격적인 죄악을 행하는 나라가 없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마시는 차(Tea)에 대한 3페니의 세금을 거부하여 영국군의 대포 포탄 앞에 가슴을 내밀었는데, 당신들의 나라의 흑인 노동자들이 어렵게 벌어서 손에 쥔 1페니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1파딩 한 닢을 뺏으려고 흑인 노동자들의 손목을 비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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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링컨을 지지하고 흑인들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나서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 결과 창설된 것이 메사츄세츠 54연대와 55연대. 영화 <영광의 깃발>에 나오는 그 부대다. 더글러스의 아들 둘도 푸른 군복을 입고 북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회색 군복의 남군과 싸웠다. 그리고 둘 다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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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암살된 후 세워진 링컨 기념관 안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링컨의 좌상(坐像) 앞에서 더글러스는 링컨을 기리는 연설을 한다. 그 기념물은 상당 부분 흑인들의 성금으로 조성된 것이었던 바, 그는 링컨을 찬양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피부색 검은 인류들에 대한 다짐으로 연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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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우리 인종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습니다. 우리 친구였고 해방자였던 사람 을 기념함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우리 뒤를 이을 자손들에게 최고의 명예를 바친 겁니다. 우리는 불멸의 영원한 이름과 명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중상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켰습니다. 이제 유색 인종은 영혼이 없고,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도 모른다고 누가 말할 때, 고마움을 모른다고 비난을 할 때, 인간애의 한계를 넘는 공격을 가해 올 때, 우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해서 오늘 건립한 이 기념물을 조용히 가리 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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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때까지 흑인이 거치지 못한 관직에도 오르고 연방 보안관도 역임하지만 1888년 6월 23일 그야말로 역사적인 지위에 그 자신의 이름을 건다. 그것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자리였다. 켄터키 주에서 나온 단 1표가 그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고 그 후로도 오랫 동안 목격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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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뒤 그 1표는 수천만 표가 되었고 더글러스와 같은 혼혈, 케냐 출신 아버지의 성을 가진 버락 오바마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더글러스의 1표가 없었다면 오바마 역시 없었을 것이고 오바마가 얻은 수천만 표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글러스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서 그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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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여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밭을 일구지도 않고 수확물을 바라는 농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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