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을 전시한 박람회

in #zzan5 years ago

1907년 6월 21일 조선인을 전시한 박람회

만국 박람회라는 행사가 있다. 18세기 말 이후 프랑스에서 기술 진보를 장려하기 위해 국내 산업전시회를 개최했는데 1851년 영국에서 “수정궁 만국 산업박람회”가 열려 각국의 기술과 상품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린 것이 그 시조다. 19세기 말, “더 이상 과학의 진보는 없다.”고 기고만장하고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자긍심에 넘치던 유럽인들은 종종 ‘만국 박람회’를 열어 국력을 과시하고 동시에 돈벌이를 했다. 에펠탑이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워진 것은 유명한 얘기거니와 강대국은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약소국들은 그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만국박람회에 참석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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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도 박람회에 나름 열심히 참가했다. 에펠탑이 세워진 바로 그 해의 파리 만국 박람회에 이미 조선 왕조도 그 특산품을 출품한 것이 시초였다. 이때 파리까지 건너간 메이드 인 조선 제품은 갓, 모시, 가마, 돗자리 등이었다. 이때는 특산품을 제출한 데에 그쳤지만 1893년의 시카고 박람회에는 8칸짜리 기와집 ‘조선관’을 짓고 그 안에 특산물을 진열했다. 또 이때 선교사 알렌은 10명의 판소리 명창을 데리고 가서 공연하기도 하는데 이때 미국에서도 신제품이었던 축음기로 녹음을 하고 고종에게 그 레코드판을 진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1900년 파리 박람회에도 ‘한국관’이 서서 외국인들을 맞았으니 박람회 참석 열의는 대단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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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일본도 그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박람회를 수차 개최했다. 그런데 1907년 도쿄 박람회가 열리던 중 6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는 묘한 기사가 하나 실린다. “오호 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종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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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연인고 하니 왁자지껄하게 열린 박람회장에 한 조선인 유학생이 들어섰는데 웬 일본인들이 "제1관 안에 조선 동물 2개가 있는데 대단히 우습더라"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대체 무슨 조선 동물이 왔기에 우습다는 것인가 하고 눈여겨보니 한 작은 건물이 있고 대인 10전 소인 5전의 입장료를 받더란다. 들어가보니 그 안에 있던 ‘동물’은 다름아닌 조선인 남자와 여자였다. 갓 쓴 남자와 장옷 둘러친 여자. 둘 다 대구 출신이었는데 남자는 별 말이 없었지만 여자는 사연을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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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여자가 동경에서 박람회가 열리는데 가서 시중만 잘 들면 한달 월급 몇십 원을 주겠다고 하여 일본어를 잘 하는 박서방이라는 남자와 동경에 오게 되었습니다. 자기들과 다니면 유람도 잘하고 이득도 적지 않을 것이라 하더미나 천만 뜻밖에 이런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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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유학생들의 눈 뒤집힌다. 주인을 찾아가 삿대질을 하며 항의한다. “귀국 사람이 말하기를 한국은 동문동종(同文同種)이라 하면서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꺼리지 않으니 이는 우리 한국민족을 모멸함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되어서 인류를 능욕하는 것이오. 우리는 한인이 되어 한인의 모욕을 눈감을 수 없고 또한 세계 인류가 되어 같은 인류가 다른 인류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을 보고 참고 넘어갈 수 없어 불가불 그 죄를 고하고자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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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인들은 오불관언이었다. 결국 유명 친일파 중의 하나로 당시 내부 참사 직에 있던 민원식이 마침 일본에 와 있던 중 사비를 들여 그 한국인 ‘동물’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게 함으로써 ‘조선인 동물전’은 끝난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우리가 일본에게 무슨 빚이 있기로 같은 황인종으로 금전을 받아 관람케 하는가. 목이 메어 말이 막히고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고 분노를 토했다고 대한매일신보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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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존경하는 블로거 초록불님 (orumi.egloos.com)에 따르면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일본은 1903년 오사카 박람회에서 ‘학술인류관’이라 하여 전시관이 등장했다. '일본과 가깝지만 다른 인종을 모아, 그들의 풍속, 기구, 생활상 등을 그 자리에서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홋카이도 아이누 5명, 타이완 생번 4명, 류큐 2명, 조선 2명, 지나 3명, 인도 3명, 인도의 기린 인종 7명, 자바 3명, 방글라데시 1명, 터키 1명, 아프리카 1명으로 모두 32명의 남녀가 각각 자기 나라의 주거를 본뜬 일정한 구역 안에서 지내게 했던 것이다. 여기에 인근 국가 중국, 류쿠, 조선인들은 당연히 이에 항의하는데 중국인의 경우 그 이유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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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류큐는 이미 망한 나라로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이며,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의 보호국으로 일찍이 중국의 번속국이었다. 자바와 아이누, 타이완의 생번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인종으로 사슴과 돼지[축록]라고 불러도 된다. 중국인은 열등하기는 하지만 이 여섯 인종과 똑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사카모토 히로코, <중국 민족주의의 신화>, 양일모, 조경란 역, 지식의풍경) 심지어 일본의 영토가 된 류쿠, 즉 오키나와에서도 "류큐를 생번이나 아이누와 동일하게 취급한 것"을 불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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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대한매일신보 기사가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을 불쌍히 여겼더니....”운운 하며 개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 하나. 사람을 구경꺼리로 삼은 제국주의 놀음이야 당연히 규탄해 마지않아야 할 것이지만 피차 그 제국주의 놀음판의 졸이 된 처지에 “우리는 조선인과는 비교할 수 없다!”거나 “왜 우리가 아이누하고 같냐?”거나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 처지가 됐다.” 하는 우스운 비교를 통해 그 프라이드(?)를 보존하려는 못난 생각들을 하나같이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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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도 뜯기고 걷어차이면서도 “그래도 나는 쟤들과는 다르단 말이야.”라고 결기를 내세우는 모습은 참으로 찌질하기도 하거니와 오늘날에도 그 모습은 여일하게 보임이 참으로 서글프다. 요즘 나도 했고 듣기도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으니까. “이런 0000000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여기가 무슨 아프리카냐?” 왜 아프리카 사람들을 욕 먹이는가. 우리의 부끄러움을 왜 남에게 빗대면서 뭐도 아닌 자존심을 챙겨야 하는가. 이런 “조선인과 인도인은 우리랑은 달라!”고 헛소리하는 멍청한 중국인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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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내용이지만 다시봐도 울분을 참기 힘드네요ㅠㅠ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일본이 하는 짓이나
우리 나라도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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