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망자>의 그 사람

in #zzan7 years ago

1954년 7월 4일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 -영화 <도망자>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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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어렸을 적 이 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던 이유는 이 날이면 부산의 하얄리야 미군 부대에서 불꽃놀이를 했기 때문이다. 동네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오색찬란하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보며 환호하는 동양인 아이들을 미군들이 어떤 표정으로 지켜봤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1954년 7월 4일은 한 남자에게 평생 동안 어깨에 짊어질 지옥이 열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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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4일 일요일 새벽 0시30분, 오하이오 베이빌리지에 살던 의사 샘 셰퍼드는 저녁을 함께 하며 즐겼던 이웃 애언스 부부를 배웅하기도 전에 소파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부인 매를린은 애언스 부부를 보내고 2층 침실로 올라갔고 7살난 아들도 침대에서 곤히 잠들었다. 소파에서 잠든 샘이 일어난 것은 2층에서 아내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 때문이었다. 떨쳐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간 샘은 아내가 있는 방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이내 둔기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폈을 때 그는 자신의 아내가 머리 등을 수십 차례나 두들겨 맞고 죽어 있음을 발견한다. 아들에게로 달려갔지만 아들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아들 방에서 나오던 샘의 눈에 누군가가 도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서라!" 셰퍼드는 달음박질쳤고 그 뒷덜미를 잡아채기는 했지만, 그래서 수염이 덥수룩한 백인 남자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되레 그에게 두들겨맞고 다시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끔찍한 현장에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수사가 시작됐다. 아내를 살해한 둔기는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고, 집안의 금품은 적잖이 없어졌다. 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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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진다. 샘이 환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며 아내와 심하게 다퉈 왔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얼굴이 으깨진 채 죽었는데 남자는 몇 대 때리고 끝났다? 세상에 그런 강도도 있느냐? 여론몰이가 시작됐다. 어떤 신문에서는 몇 주간 수백 건의 기사를 창조해 이 사건을 '심층 조명'했다. 샘 셰퍼드는 졸지에 범인으로 몰렸고 법정도 그의 유죄를 선고했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얘기 같지 않은가? 의사에, 맞아 죽은 아내, 격투 끝에 놓친 범인. 바로 해리슨 포드가 주연했던 영화 <도망자>의 시작 대목이다. 당연한 것이 이 영화 <도망자>는 샘 셰퍼드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해리슨 포드는 놀라운 침착성과 집념으로 탈출과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가 끝내 범인을 밝혀 내지만 영화와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이다. 셰퍼드는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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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급살인죄에 종신징역형. 그가 받은 죄목과 형량이다. 샘은 자신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하며 항소하지만 모조리 기각되고 1966년, 12년의 옥살이를 거치고 다시 재심을 신청하고서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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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법의학자 폴 커크의 공이 컸다. 그에 따르면 샘이 사건 직후 출동한 경찰에 발견될 때 상의를 벗고 물에 젖은 면바지를 입고있었는데 메릴린의 얼굴을 40회이상 둔기로 공격한 범인이라면 면바지와 가죽벨트에 튀어서 묻은 혈흔이 덕지덕지 묻어나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점, 벽에 튄 혈흔을 볼 때 범인은 왼손잡이이고 샘은 오른손잡이라는 것, 현장에 떨어진 상당량의 혈흔이 샘의 아내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샘은 말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그의 무죄를 주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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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감 후 그가 택한 직업 가운데 하나는 매우 의외다. '더 킬러'를 닉네임으로 한 프로레슬러였던 것이다. 로프에 몸을 던지고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메다꽂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자신과 격투를 벌였다던 상대를 상상하며 헤드록을 걸진 않았을까. 그러나 12년의 감옥 생활과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는 그의 몸을 갉아먹은 듯 했다. 그는 출감한 지 4년만에 간질환으로 세상을 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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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영화 <도망자>가 다시 한 번 샘 셰퍼드 사건을 조명하면서 샘의 아들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증거 자료 재검을 요구했다. 그 결과 참혹한 살해 현장에 난무했던 피들 가운데에서 샘도 샘의 아내의 것도 아닌 제3자의 혈흔이 발견됐다. 즉 누군가 그 방에 있었던 것이다. 바람 피운 남편이 아내를 때려 죽인 스캔들이라며 흥분했던 언론에 의해 포장된 범인 샘 셰퍼드가 아닌 누군가가 그 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 미 오하이오주 쿠야호가카운티 법원은 ‘도망자’의 모델이었던 샘 셰퍼드가 숨진 지 30년 만에 열린 무죄선고 청구공판에서 “아버지는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다”는 아들의 주장에 대해 “결백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기각했다. 밝혀진 사실들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는 뜻이었을까. 이미 환갑을 넘었을 샘 셰퍼드의 아들이 그 판결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그토록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으나 살인자의 자식이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의지 때문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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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셰퍼드가 범인인지 아닌지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범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뭐가 되는가. 치정극에 얽힌 살인으로서 입방아를 찧어댄 언론과 그들에 엉덩이를 찔려 불분명한 증거로 기소한 검사와 그들의 목소리에 화음을 내어 종신징역을 때렸던 판사는 또 뭐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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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건이 터지고 인터넷에 화제가 됐을 때 여론재판이 인민재판처럼 벌어지고 그에 대한 어떠한 항변과 변명도 분노의 쓰나미 속에 묻혀 버리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샘 셰퍼드의 7월 4일은 그렇게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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