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짧은 글] 자연 속에서 살다

in #zzan4 years ago

창을 열자 바람이 살짝 실내로 불어 들어온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꿈꾸었던 많은 어떤 이미지와도 같이. 나는 서울의 어느 변두리에서, 네모 박스 안에 살며 야생동물, 벌레, 산과 들, 꽃과 나무, 풀, 이슬, 별이란 단어를 책에서만 보며 자랐다. 성인이 되고, 여행을 떠났다. 막연하게 초록이 보고 싶어 도시를 벗어나는 버스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달려갔으며,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의 지평선을 보고, 설산도 보고, 사막을 보고, 인도양도 보았다. 이국인의 신비로운 빛깔의 눈동자를 보고, 다른 질감의 피부 조직을 보고 다양한 삶에 대해 신기해했다. 나는 이제야, 강가에 서서 아까 흐른 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 찰나 역시 계속 다른 찰나로 교체된다는 것을 배운다. 곧 과거가 될 지금 또한 나의 과거의 소망이었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와 눈과 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있고, 소박한 작은 네모난 창이 있는 집안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간다. 창밖엔 언제나 생경한, 내 것일 수 없는, 그래서 항상 신비로운 자연이 있다. 초록이 있고. 그것들은 숨을 쉬고 있다.

노석미, 《매우 초록》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2836.52
ETH 2558.21
USDT 1.00
SBD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