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에피소드 - '죽으면 죽으리라' 책이 맺게 한 인연

in #zzan5 years ago (edited)

공군에서 복무를 했는데 그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다.

신병훈련소가 진주에 있었기에 입소일 전날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기 전 나를 아끼는 먼 친척되는 형님이 군에 가서 읽으라며 책 2권을 선물해주었다.

이것 저것 짐을 싸서 내려가느라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무슨 책인지 자세히 보지도 못한채 가방에 넣었다. 입대하는 것 부터 우여곡절이 있어서 남들보다 늦은 시간에 연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대가 정해지고 나니 가지고 온 소지품을 모두 반납하라고 해서 형님이 준 책도 그대로 반납되어 자대에 배치되고 나서야 무슨 책인지 알수 있었다.

  • 책 이름은 -죽으면 죽으리라
    실격된 순교자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안이숙 여사의 수기책이다.
    1976년에 발간되었다. 일제시대부터 해방, 625를 지나는 동안의 여러 사건들이 저자의 시각에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에피소드가 담긴 책이고, 제목도 죽으면 죽으리라 였기에 이 책은 뜻하지 않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자대배치를 받고서 한 중대에 배정되어 지내던 중,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대대의 모든 중대장들이 중대 내무실에 찾아오더니 교육장 집합을 걸었다.

일직사관이

오늘은 대대 차원에서 내무실 불시 일체점검을 한단다. 너네들 뭐 이상한 거 없지?

다소 긴장된 표정의 일직사관.
내무실 검사가 마친 후 사관이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영문도 모른채 사관실에 갔더니
다른 중대 중대장이 책 2권을 보이면

이병. 너 이거 무슨 책이야. 책 이름이 무슨 '죽으면 죽으리라' 야?
너 무슨 자살하는거 아니지?

순간, '아! 어디선가 뭔가 사건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위축되어 있는 이등병이었지만 책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래? 문제 없는 책이야? 확실해?

중대장은 뭔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수긍을 하고서 중대장단과 함께 중대를 떠났다.

이후 일직사관이 좀더 자세하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책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입대하기 전에 뭐 했는지도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너 교회 다니는구나. 그래. 그럼 말이야. 내가 요즘 인상깊게 읽은 책이 있는데 소개해 줄테니까 읽어보면 어떠냐? "

이등병이 무슨 권한이 있으랴.
"네 알겠습니다." 로 답해야지.

비번 후 출근하는 날 그 일직사관 중사님은 약속대로 책을 갖고 왔다.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

이거 한번 읽어보고 이야기 좀 해 보자. 일주일 뒤에 당직인데 그 때까지 좀 읽어보자.

이후 내무실 고참들은 "야.. 책 읽었어?" 라며 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성철스님은 TV에서나 신문 등에서 간략하게 접하것이 전부였기에 이 책에 담긴 이야기 또한 한 사람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직사관 순번 때 예상한대로 호출이 왔다. 신병 때 중대본부 임무 배정을 받은 상태라 자연스럽게 당직병 역할을 하면서 사관과 일대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나는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그래도 내가 요즘 읽은 책 중에 인상깊게 보아서.. 너한테도 이런 책도 읽어보면서 생각도 넓히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권해봤다.

이야기를 하면서 중사와 이등병의 계급 차이는 있었지만, 이후로는 친구처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일직을 설 때면 매번 동전을 준비해와서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진급이 안돼서 만년 중사라며 입에 습관적으로 상스러운 말이 나오긴 하지만 그 마저도 밉지 않게 느껴지던.. 사람에 대한 인정이 있던 중사.
40이 넘은 독신. 군 복무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쓰러졌단 소식에 그 밤에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가서 무릎꿇고 '우리 어머니 살려주세요. ' 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사람. 사람이 간절해지니까 그렇게 자신은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기도하게 되더라는 남모르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약 27개월을 부대에서 보내는 동안 매 일직근무때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전역을 한 이후 예비군 훈련을 동사무소에서 받다가 동원훈련 통지서가 나왔다. 군복무를 했던 자대로 소집명령이 떨어졌다. 버스 정류장 인근에는 예비군들을 부대로 태워가기 위한 부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부대 버스로 간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 일직사관이 예비근 통솔 완장을 차고서 버스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역한 지 4년만에 만난 그분이 무척 반가웠다. 자연스럽게 거수 경례를 할 정도로..

동원 훈련 중간 휴식 시간에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너 전역하고 나서 조금 지나서 상사로 진급했다. 최근에는 한 사람을 알게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내는 신앙 가진 사람이다.

결혼 이야기를 할 때는 뭔가 살짝 쑥스러워지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무튼 진급도 하고 가정도 이룬 것에 잘 되었다며 함께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입대하기 전 그 형님이 선물해 준 '죽으면 죽으리라 ' 라는 강한 제목의 책이 군에 있는 동안 한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지 않았던 한 사람의 호의가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 지금 책을 다시금 살펴보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39년 74회 일본 중의원 회의장에서 이 중의원 회의에서는 종교관련 토의가 이루어졌으며, 대의사의 개회발언에서는 '일본 제국이 현재 지구의 동반구를 지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만주는 일본의 것이 되었고, 중국 대륙도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올 것이며, 남양과 기타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민족이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고는 안 될 시기가 오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정신적인 강한 힘이 필요한데 이 정신적인 것은 오직 종교만이 해결하는 것으로 이 정신적인 면에서 힘을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종교를 택해서 일본제국의 종교로 정하고 그 외의 모든 민심을 혼란케 하는 것은 사교이므로 국가의 권세를 세우기 위해서 없애 버려야만 한다. ' 라는 연설을 이어갔다. 일제의 정복 야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정신적인 면, 영적인 면에서도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했는지를 엿볼 수 잇다.
    이후 중의원 회의 한 순서에서 저자와 함께 한 일행이 "일본 제국이 회개하지 않으면 유황불에 망할 것이다." 라는 미리 준비한 경고장을 투척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서 저자는 6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고, 8. 15 광복과 함께 석방되었다.

오늘 갑자기 군에 있을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생각난 것을 적다보니 꽤 분량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의 수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Sort:  

어디로 문의를 드려야할지 몰라서 댓글에 남겨봅니다.
순서대로 보팅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아래 Transaction ID 보팅여부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e48089b2540d70542f7d3a63f0e737220b80966f
0a5cdc74c4dca2c56b26df94b80b5a2ed66d69f9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청한 포스팅 - 8월 10일에 신청한 것 보팅이 누락되어 보팅을 진행했습니다. 댓글로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좋은 책이 좋은 만남을 가져왔군요. ^^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이 책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

한 호흡에 다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 @jsquare님과 신앙의 힘으로 진급도 하시고 결혼도 하신 그 분께 축복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옛 생각이 떠올랐어요. ㅎ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공군에서 복무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이등병때 저희 소대에서 제주도로 전근가신 부사관을
제가 제대휴가를 제주도로 가게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되니 좀 신기(?)하더라구요ㅎ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1
JST 0.031
BTC 68960.63
ETH 3748.07
USDT 1.00
SBD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