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쑹훙빙의 『화폐전쟁』, 무엇이 문제인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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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씨리즈가 분명 좋은 책들이긴 한데, 두 가지 측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쑹훙빙은 『화폐전쟁』 제1권 1장 시작 부분에서 로스차일드 패밀리가 어느 날 갑자기 무매개적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다섯 명의) 아들을 유럽 각지로 파견해서 유럽 금융계를 순식간에 접수한다는 식으로, 다소 안데르센 동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중세 이래 유대 금융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꿰뚫고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는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쑹훙빙 식의 서술은 이미 오래 전에 영미권에서 출판된 ‘로스차일드 만능론’ 서적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세계 금융 지배를 하나의 ‘가문’의 업적으로 치환해 버림으로써 초국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존재해왔던 유대 무역상/금융업자들의 상호 연관의 역사적 지속성을 조명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골드스미스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줌으로써 은행업의 출현에 관해 잠깐 언급하고는 있으나, 그러한 은행업의 시원과 18세기 말엽 로스차일드 금융가문의 부상 사이에 놓여 있는 너무나도 긴 역사적 공백을 모두 삭제해 버림으로써 글로벌 금융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통시적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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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일가는 고작해야 170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활동했던 이들인데, 유럽사를 보면 그보다 훨씬 이전인 중세 시대부터 유대인들은 특권을 지닌 회계/금융 브레인 집단으로 국왕의 주변에 머물며 여러 신분적 특혜를 부여받고 징세와 국가재정 및 특히 금융(고리대금업)에 종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왕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유대인 무역/금융 네트워크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출현 훨씬 이전에 이미 초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해외 각국에 산재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혈연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단일한 정체성과 유대감을 지녔기 때문에 ‘신용’이 절대적 조건이었던 금융 분야에서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유럽은 물론 오스만 투르크 제국까지를 아우르면서 당시의 국가들이 지역적 고립성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이들은 대단히 코스모스폴리탄적이고 모던한 사고방식과 상행위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합스부르크 스페인 제국에서 홀랜드 및 저지대 지방과 신성로마제국과 잉글랜드 모두를 아우르는 범유럽적 유대 고리대금 금융네트워크는 ㅡ 주로 왕실과 귀족을 고객으로 삼으면서 ㅡ 당시 중세의 군주제 왕정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국제적 연계와 정보 유통 및 스파이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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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훙빙의 책 제목이 ‘화폐 전쟁’인만큼 금융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잉글랜드 은행 설립(1694년) 이후 유럽 금융의 중심지가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이동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하는 금융지배가 노골화 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금융의 역사는 ‘화폐 전쟁’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이며 이를 생략하고 건너뛰게 되면 ‘화폐를 통해 주권국가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국가를 상대로 사적 대부업자들이 교묘하게 부채를 지우며 이자 지불로 국가재정 중 상당 부분을 갉아먹으며 그것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끊없이 가중시키는 귀결에 이른다. 이러한 땅짚고 헤엄치기 돈벌이 방식은 결국 ‘보이지 않는 수탈’을 제도적으로 고착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국가는 부식되며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채를 지우고 천년만년 이자를 거두어가는 ‘안정적 금융 약탈 방식’ 분석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그렇지 않고 평면적으로 ‘평등한 화폐들’의 전쟁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본질을 흐려 사적 금융집단의 몬도가네식 국가 자산 약탈을 ‘의도치 않게’ 쉴드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축 통화가 다른 통화로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탈적 기축 통화의 폐지와 실물경제 기반의 화폐시스템 도입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지금처럼 온갖 파생상품이 난무하는‘카지노 자본주의’를 면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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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쑹훙빙은 ‘채무화폐’인 달러의 남발을 멈출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 . . 즉 빚이 생겨야 비로소 돈이 창출되는 지금의 엽기적인 화폐 창출 시스템은 반드시 무너지고 말 운명을 가진 바벨탑과 같은 것이어서, 무너지면서 가치가 폭락한 ‘미달러 휴지 조각’을 소유한 숱한 경제 주체들이 실물자산 가치를 송두리째 강탈당하고 파산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미달러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해당됨) 현행 금융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거품을 만들고 거품이 빠지면 실물경제가 초토화되는 ‘악순환’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국제금융카르텔 도당들은 금융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적 완화를 통한 구제금융으로 금융 위기 이전보다 더 짭짤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죽어나가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임금노예들뿐이다. 그래서 향후에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2010년 유럽 금융위기 사태가 반드시 ‘귀환’하게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금융구조 자체가 내부 폭발 기폭장치가 장착되어 있어 이를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금융위기가 와도 메가은행들과 국제금융 카르텔 도당은 오히려 더 부유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금융위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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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훙빙은 “본질적으로 보면 부분 지급준비금 제도에 채무화폐 체계를 더한 것이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원흉이다.”(1권 363쪽) 따라서 이러한 화폐의 증가 발행은 유동성의 범람을 초래하며 ‘돈’은 넘쳐나는데 투자할 기회는 점점 줄어주는 ‘왜곡’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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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착취의 고리대금업으로서의 금융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단순히 ‘등가적인’ 화폐들이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식으로 써놓았기 때문에, 실물경제를 파탄내고 국가와 개인을 채무 노예 ㅡ 빚조차 갚을 수 없는 극단적 비정규직 채무 노예 ㅡ 로 만드는 현행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언급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아주 조금 있기는 하다. 1권 413-417쪽에 걸쳐 약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별로 느낌이 오지 않는 서술이다. 특히 그의 책에서 결핍을 느끼는 것은 채무화폐가 실물경제의 선순환을 방해하는 경제학적 ‘구조’가 전혀 논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의 책은 어설픈 ‘음모론’류의 잡서라는 공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가령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2011년 유럽으로 전이되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남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했는지에 관한 분석이 없다. 유로존(Eurozone)의 지속 불가능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조에 대한 분석 같은 것도 담고 있지 않다. 유럽의 통합보다는 양극화를 촉진하는 유로화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대신 그의 책에는 미달러는 ‘채무화폐’니까 나쁜 거다라는 ‘선언적 주장’이 있을 뿐이다. 그의 책을 읽노라면 맥락없는 에피소드 짜집기 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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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필자는 쑹훙빙의 『화폐전쟁』이 대중에게 금융과 화폐 지배에 관한 초보적 관심을 ‘획기적으로’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인정한다. 깊지는 않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며 흥미를 유발하는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없이 충실히 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그는 ‘개척자’다. 사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누가 그런 어려운 책을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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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훙빙의 책을 읽고 나서 심화 학습을 해야겠다고 ‘강하게’ 결의한 사람들이 보면 좋은 글이 있다. 두 권(영문)의 책과 논문 하나(우리말)를 투척해 본다. 열공하고 싶은 친구들이 ‘만약’ 있다면 과감히 PDF 날리겠다!(이메일 필요 없고 ‘텔레그램’으로 전송하면 된다.)
ㅡ 스테판 미트포드 굿선(Stephen Mitford Goodson). 『중앙은행의 역사와 인류의 부채 노예화 A History of Central Banking and the Enslavement of Mankind』. Black House Publishing Ltd. 2014 (총 170쪽)
ㅡ 브라이언 오브리언(Brian O’Brien). 『연준의 폭정 THE TYRANNY OF THE FEDERAL RESERVE』.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5 (총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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