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 죽음의 문턱에서 #1

in #zzan4 years ago

어느 겨울날 밤이었다. 아이가 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외투를 입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전날 눈이 내렸고 쌓인 눈들이 녹다가 다시 얼어 길에는 빙판이 쫙 깔려 있었다. 길은 미끄럽지만 마음이 급했다. 슬리퍼를 신은 내 발은 집으로 향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뒤로 미끄러지며 뒷머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였다. 몇시간만인가... 아니 며칠만인가... 갑작스런 눈부심이 느껴지며, 나는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누운 채로 눈을 뜬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장 대신 커다란 나뭇가지와 거기에 무성하게 핀 나뭇잎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르디 푸른 하늘... 그리고 어디선가 강하게 빛나는 햇빛... 겨울인 줄 알았는데, 내 몸이 느끼는 날씨는 마치 5월의 봄 같았다. 이 곳은 어디인가... 난 집에 있어야 하는데... 아니지. 머리를 다쳤으면, 병원에 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난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 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어느 높은 언덕이었다. 땅에는 푸른 잔디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내 뒤에는 100년도 넘은 듯한, 내 팔로는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줄기가 몹시 두꺼운 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키는... 10 미터는 넘는 듯 했고 나뭇가지들은 길게 뻗어 있어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선을 언덕의 내리막으로 향해본다. 최근 몇년동안 봤던 하늘 중에 가장 선명하고 푸른 하늘이었다. 구름 한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리막의 끝자락에는 커다란 강...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하나가 보였다.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설마... 미끄러진 충격으로 내가 죽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 곳은... 이승이 아닌 저승인가? 그러면 가족들과 인사도 못한 나는... 신이 있다면 나는 신을 한없이 원망할 것이다. 왜 신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 것일까? 무너지고 있는 나의 멘탈.... 그러나 한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잔디 그리고 나뭇잎들... 이 곳의 나와 내 주변은 마치 정반대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언덕을 내려가 저 강의 다리를 건너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드라마에서 나왔던 것처럼 이승의 모든 기억을 잊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신을 잃은 나를 누군가 이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인가?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나의 발목을 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내가 예전에 키웠던 고양이 짱짱이가 있었다. 5년전엔가... 아이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해서 찾았던 분양소에서 입양했던 고양이었다. 너무 귀엽고 예뻐서 우리 세 식구가 서로 안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곤 했던... 그런 즐거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짱짱이는 입양한지 2년만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짱짱이가 내 옆에 있다니... 사람이 죽으면 예전에 키웠던 애완동물이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짱짱이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인가? 그렇다면 이 곳은 저승이 맞는 거다. 짱짱이가 옆에 있으니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은 차분하고 가벼워졌다. 낯선 곳에서 가족을 만났으니...

짱짱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야옹'하고 울었다. 나는 너무너무 반가워서 짱짱이를 들고 품에 안았다. 골골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것일까... 잠시 안았다가 내려 주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심결에 양손을 바지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런데... 오른 주머니 안에 고양이 간식 '츄르'가 있었다. 가끔 집 근처에서 보이는 길냥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기 위해 수시로 츄르를 가지고 다니곤 했었다. 이것도 같이 따라올 줄이야... 나는 츄르 하나를 꺼내보았다. 짱짱이도 이걸 좋아했었지. 빨리 달라며 또 '야옹' 울었다. 츄르의 끝부분을 떼어 짱짱이의 입으로 향해 조금씩 짜내기 시작했다.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먹고 있었다. 오래 되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순간이었다. 짱짱이를 다시 보니 그 때가 참 행복했다는 걸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짱짱이와 같이 저 강을 건너면 되는 건가? 짱짱이는 지금까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간식을 주기 위해 쪼그려 있던 나의 손 앞에서 짱짱이는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 정도 핥더니... 짱짱이는 다시 내 눈을 마주치고 크게 '야옹'하고 울었다. 이제 가자는 것인가?

짱짱이는 갑자기 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짱짱이의 뒤를 따라 달려 가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겨울밤처럼 또 다시 뒤로 미끄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그리고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짱짱아... 너는 왜...


시간이 한참 지난 거 같다. 정신은 살짝 깨었으나... 눈은 아직 안 떠진다.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뭔가 강한 약냄새... 병원이다. 그 날 밤 머리를 다쳤던 내가 병원으로 온 듯... 치료를 받다가 정신이 깬 듯 하다. 눈이 스르르 떨리며 떠지려 한다. 천장의 강한 불빛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눈이 떠지려 했으나... 나는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가는 것인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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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부터인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고,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글로 끄집어내 보았습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이달의 작가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끝을 맺을지는 모르지만,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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