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김용을 거절하다(拒绝金庸) -옌리샨(鄢烈山)

in #wuxia4 years ago

김용을 거절하다(拒绝金庸)
옌리샨(鄢烈山)

나의 이지와 학문교양은 김용(그리고 양우생과 고룡의 무리를) 완고히 꾸짖으니, 이에 줄곧 한 점 의혹도 부끄러움도 없다.

신무협소설을 좋아하는 문우 몇몇이 내게 김용과 양우생을 열심히 추천했었다.

나는 일찍이 “무식함은 군자의 수치(一无不知,君子所耻)”라는 마음에 <녹정기>와 <사조영웅전>을 빌렸지만, 결국에는 아들의 심부름이나 한 번 해주는 꼴이었다.

나는 완고히 인식하니, 무협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거꾸로 달린 괴물이라, 어떤 문학천재가 대단한 필치로 영웅과 성인을 생생하게 그려내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할지니, 또 어색한 것이다. 내가 줄곧 존경하건 베이징 대학이 김용을 숭배하다니!

“이제 막 베이징 명예교수직을 받은 김용이 처음으로 교상에 올랐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학생 수백 명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무실 앞에 왔다. 몇몇 선생은 건물만 바라보며 탄식하기도 했다.” (1994년 10월 28일 <중국청년보(中国青年报)>)

이에 따르면, 베이징대학 중문과 교수 옌쟈탄(严家炎) 선생은 김용의 무협소설이 “조용한 문학혁명을 가져왔다”며 크게 칭송했다. 이 영광은 비할 바 없이 대단한 것이다.

이 “문학혁명”의 근본을 이루는 이 중 하나인, 베이징대학의 교수 후스(胡适)는 일찍이 무협소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침을 뱉으며 “하류(下流)”라 했을 뿐이다. (리아오(李敖)의 <“산마오(三毛)식 위선”과 “김용(金庸)식 위선”>에서 발췌)

헌데 지금은 “하류”를 “상류(上流)”라 하니, 소위 “30년은 황하 동쪽에 살고, 30년은 황하 서쪽에 사는(三十年河东,三十年河西)” 꼴이다.

루쉰 선생은 일찍이 “베이징의 교격(校格)”을 칭송하며, 베이징대의 “그 진보의 정신은 시종일관되어, 해이함이 없다.”하였다. (<화개집(华盖集)> 중 <나의 북대(我观北大)>)

무협소설을 숭배하는 것이, 어찌하여 베이징대가 충고를 잘 듣고(从善如流), 참된 지식을 추구하며(追求真知), 오직 진리를 따르는 것(真理马首)의 새로운 표현이겠는가?

김용 선생에게 감사한다. 그는 나의 혼란과 곤란함을 깔끔하게 풀어줬다.

임용식에서, 그에게 학교 측이 무협소설에 관한 강연을 부탁하자, 그는 “이 명예로운 고등학부에서 무협소설을 강연하는 것은 다소 점잖지 않은 듯하다”라며, 결국 그의 무협이야기를 곁들여 중국역사에 대해 강연했다.

베이징대의 명예교수로 초빙된 김용 선생은 그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베이징 대학을 흠모했는데, 오늘에서야 마침내 베이징대의 일원이 되었다. 실로 즐겁다.”

기왕 베이징대가 그에게 명예교수의 명예를 주고자 한다면, 이 명예는 도둑질이나 사기여서는 안 되고, 권력과 영화를 위해 써서도 안 될 일이다.

김용선생은 그 “유쾌함에 싸여” 결코 우쭐대지 않았으니. 실로 통속적인 무협소설을 쓴 것을 무슨 “문학학명”이라 여기겠는가!

고로, 나는 베이징대학이 이끄는 게 학술의 신조류인지, 아니면 점잖지 못한 것인지 상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스스로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할 뿐이다.

무협소설은 죄악이 아니며, 무엇이든 각자 선호하는 바가 있다. 때문에 누구든 보고 싶다면 볼 일이지만, 나는 그것들을 거절한다!

번역자: 읽다보시면 <김용을 거절한다>가 도대체 뭐길래 옌쟈탄이 그렇게 열 받았나 싶으실 수도 있을 거 같아, 한 번 번역해 놓았습니다. 루쉰과 후스는 베이징대의 초기 멤버(1930대)인데, 이들까지 불러와 욕을 했으니. 실로 할아버지까지 들먹인 셈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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