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용 신드롬: 기이한 독서현상 (金庸热:一种奇异的阅读现象)

in #wuxia4 years ago (edited)

#무협 #김용

김용소설논고 #1

김용 신드롬: 기이한 독서현상 (金庸热:一种奇异的阅读现象)

옌쟈탄(严家炎)

오늘날 중화권 작가 중 독자가 가장 많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할 것이다. : "김용!"

김용의 작품은 수천만 명의 팬(迷)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스터리(谜)도 낳았다.

김용 소설은 처음 신문에 실렸을 때부터 이미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었다.

36권짜리 단행본 세트가 나온 이후, 1994년까지 4000만 세트가 정식으로 발행되었다. 만약 책이 하나면 독자는 다섯 명이 넘으니, 독자는 대략 2억 명이 넘는다.

특히 주의해야할 게, 김용소설은 대만과 중국 대륙을 불문하고 해적본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이런 해적판을 세노라면 정식 출판 부수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극동경제평론(远东经济评论)>의 “문예와 사회(文艺和社会)”의 베테랑 편집자 시몬 엘리건이 대략적으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중국 대륙, 홍콩, 대만 3대 시장을 합해, 역대 김용 소설의 판매고는 합법•비합법을 아울러 약 1억 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용 소설의 실제 독자는 위의 숫자가 제시한 1억 부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다.

1991년 나는 일찍이 스탠퍼드 대학의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조사를 한번 해봤었다. 스탠퍼드대가 소장한 김용 소설은, 거의 수십 차례, 100차례 이상 대여되어왔다.

“대여일자”, “반납일자” 란에는 수많은 도장이 빽빽하게 찍혀있었다. 대다수 책은 이미 낡아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도서관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두 종류의 김용소설을 미리 사뒀는데, 너무 빌리는 사람이 많아서 결과가 동일했다고 한다.

나는 사실 젊은 남자 학생들만 김용소설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조사 해보니, 대출량 자체가 매우 크며, 수많은 여학생들 또한 즐겨 읽었다. 게다가 그들의 부모와 나이든 사람들까지 똑같이 즐겨 읽으니, 실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다!

“김용열(金庸热)”이 기이하면서도 주목할 만한 독서 현상인 데에는, 단순히 독자가 많은 것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오래 읽힌다. 문학작품의 인기란 보통 2~3년 정도면 오래간 것이다.

헌데 김용은 다르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은 50년대 신문에 연재된 것이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신문을 구했으니, 발매량이 단번에 껑충 뛰어올랐다. 그때부터 홍콩 지역에 “김용열”이 일어났다.

이후 잇달아 <신조협려(神雕侠侣)>, <천룡팔부(天龙八部)>, <소오강호(笑傲江湖)> 등이 나오면서, “김용열”은 4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쇠락할 줄 몰랐다.

1994년 10월 25일 김용이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교수” 칭호를 받은 것을 사람들이 아직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당시 두 차례 강연은 큰 성황을 이루었었다.
강연을 들으러 온 뒤 사인을 요청하는 이가 말 그대로 인산인해라, 물샐 틈도 없었다. 입장권을 발행하는 게 쓸모없을 지경이라, 당시 사회자였던 하오빈(郝斌) 부학장이 이렇게 빈정거리기도 했다.
“오늘 같은 형국에, 김용 대협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한들 무슨 소용이랴!”

내가 알기로 1998년 한 해에만 김용소설 세미나가 미국, 중국, 대만에서 각각 열렸으니, 몇몇을 올해야말로 “김용의 해(金庸年)”라 하기도 했다.

이 세미나들은 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축소판이다.

둘째, 읽히는 지역이 넓다.

송나라 때 유영(柳永)의 사(词)는 일찍이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전승하여, 당시에는 이런 말도 전해져 왔다. “우물만 있는 곳이면 모두 유영의 노래를 부른다.”

오늘날 “지구촌” 시대에, 김용의 소설은 널리 퍼져 유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독자들은 대만 해협 양안과 동아시아 지역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의 중화인 사회에도 있다.

전세계 중화인이 있는 곳 어디에나 김용 소설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991년 나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한학회의에 참여했다. 그때 택시를 탔는데, <녹정기(鹿鼎记)>의 중국어 방송을 들었었다.

게다가 한 번은, 70년대 초 남베트남 의원들이 싸우면서 욕할 때 상대방에 대해 “너는 음모를 꾸미는 좌냉선(左冷禅)이야!”라고 하는 것도 보았다. 이에 상대방도 욕하며 대답하기를 “너야말로 위선적이고 악랄한 악불군(岳不群)이지!”라고 했다. 이는 <소오강호> 안의 인물들이 당시 남베트남에게까지 다 알려져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학생에 따르면 김용소설은 이미 한국에 번역되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게다가 근래에는 일본 최대 출판사인 도쿠마 쇼텐 서점(德间书店)에 김용 판권이 팔려, 김용 전집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 중 <서검은구록(书剑恩仇录)> 일본어 번역 4권짜리는 이미 출판되었고, 나머지는 지금 번역 중이다.

1998년 11월에만 해도, 베트남의 두 출판사(문학출판사와 사회과학출판사)가 김용의 소설을 번역하겠다면 서로 다투었다.

영어 번역은 상당히 곤란할만 하지만, 몇몇 사람이 시험 삼아 해봤는지, 일찍이 <설산비호(雪山飞狐)>가 나와 있었다. 최근에 <녹정기(鹿鼎记)>의 영문 초역도 출판되었다. 이들을 보면 오늘날 “김용열”은 어쩌면 중화인 세계(华人世界)를 초월한지도 모른다.

셋째, 독자의 문화적 범위가 매우 넓다.

김용소설은 수많은 시민, 청년학생 그리고 약간 문화적인 농민이 애독함은 물론, 문화 수준이 높은 전문직 종사가, 정부관원, 대학교수, 과학원사까지 애독한다.

중국의 수학석학 고(故) 화뤄겅(华罗庚)교수,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그라함상 수상자 양전닝(杨振宁)과 리정도(李政道) 그리고 저명한 수학자 천싱션(陈省身),

내가 잘 아는 중국과학원 원사 황쿤(黄崑), 간즈자오(甘子钊), 왕쉔(王选) 등이 모두 “김용매니아(金庸迷)”다.

헌데 이상의 독자들이 여가 삼아 소비한다면, 중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연구하는 교수와 전문가들은 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높은 문학 감식안과 전문적 지식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 또한 똑같이 김용소설을 재미삼아 읽곤 했다.

내가 알기로,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천스샹(陈世骧), 샤지안(夏济安), 샤즈칭(夏志清), 쉬잉스(余英时), 리오우판(李欧梵), 류사오밍(刘绍铭),
그리고 중국의 저명한 학자인 청치엔판(程千帆), 펑치용(冯其庸), 장페이헝(章培恒), 류차이푸(刘再复), 첸리쥔(钱理群), 천핑위안(陈平原) 등 또한 김용소설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홍콩의 교수인 린이량(林以亮)이 말하길:

“샤이안(夏济安)은 생전에 무협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무협소설을 창작했을 가능성도 많다. 그는 사실 해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후 대만에서 어떤 이가 샤이안에게 김용의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을 보여주었다. 그는 단번에 린이량에게 편지를 썼다.

“실로 천자가 이미 나타났으니, 나는 부여국으로 떠날 수 밖에(真命天子已经出现,我只好到扶余国去了).
(2) 샤지안(夏济安)은 실로 김용에게 오체투지할만큼 감탄했다고 볼 수 있다.

내 기억에1994년 말, 나는 여성작가 종푸(宗璞)를 마주쳤다. 그녀는 문득 나를 붙잡고 물어왔다. “당신들은 김용을 만나면서, 왜 나는 안 불렀나요?”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김용의 책들을 읽었어요. <소오강호>니, <천룡팔부>니. 그가 쓴 건 정말 대단했어요. 우리 작가들은 못 써낼 것이었죠.”

중국작가협회의 부주석인 펑무(冯牧)는 생전에 고전명작 <삼국연의(三国演义)>나 <수호전(水浒传)>을 대하듯이, 김용소설의 평가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었다.

작가 리투어(李陀) 또한 그가 가진 특유의 언어로 말했다. “중국인이 김용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신경에 무슨 병이 있는 거지!” 이는 실로 아속공상(雅俗共赏)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와 문학자가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이다.
(아속공상: 고상한 사람이나 속된 사람이나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넷째, 정치사상의 영역을 초월한다. 김용매니아(金庸迷)에는 각종 정치성향을 가진 인물이 있다. 사상이 급진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있다. 좌파일수도, 중도파일 수도, 우파일 수도 있다.

심지어 해협 양안을 두고 매우 대립적인 정치사상을 둔 사람들인 국민당과 공산당 양당의 사람들마저도, 평소에는 전혀 대화가 안 되는데도 김용소설만큼은 모두 함께 즐겨 읽는다.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邓小平)은 대륙에서 최초로 김용의 작품을 접한 독자 중 한 명일 수 있다. 부인 주어린(卓琳) 여사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70년대 후반 장시성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사람을 시켜 경외에서 김용 소설 한 세트를 사오게 했다.

1981년 7월 18일 오전 덩샤오핑이 김용을 만났을 때 첫마디가 이것이었다.
"당신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대만 언론계 인사들에 따르면, 해협 반대편의 지도자 전 중앙주석 장징궈(蒋经国) 또한 생전에 김용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의 침상에 자주 김용 소설 세트가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정치 대립을 완전히 뛰어넘은 독서현상이다. 과연 연구해볼 가치가 없겠는가?

독자들의 독서 상황이 매우 주목할만하다는 점 외에도, 김용소설은 자체가 여러 이해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일례로, 김용소설은 홍콩상업화 환경에서 나왔지만, 구식 무협소설의 그런 저급한 재미나 저속한 맛은 없었다.

또한 김용 스스로는 무공을 전혀 모른다는데, 무림인물의 싸움은 실로 사람을 끌도록 썼다.

김용소설은 명백히 무협소설이나, 문화적인 냄새가 짙게 베여있어, 그야말로 문화소설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무협소설은 대개 신기하거나 드라마틱한 걸로 사람을 끄는데, 김용소설은 그와 동시에 생활이나 인생에 상당히 가까우며, 생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협소설은 장르상 의심할 바 없이 통속문학에 속하지만, 누군가 김용소설을 단순히 통속소설에 넣으려 든다면, 수많은 독자들 강력히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김용소설은 해석하기 쉽지 않은 수많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

20세기는 원래 과학이 번창하던 세기다. 중국 신문학은 :5.4 운동“ 이후 80년 동안 발전해 왔으며, 일찍부터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마침 이 세기의 후반에, 김용이 전통형식으로 써낸 무협소설이 등장하여, 그리도 장기간 일대를 풍미하니, 이 자체가 사람에게 감흥을 주는 더 큰 미스터리이다.

이상 여러 현상에는, 하나마다 발굴을 기다리는 풍부한 내용들이 잠재되어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 깨우치게 할 만하며, 사람이 사고하고 연구하도록 계도한다. 과학적으로 게시된 현상 뒤에는 수많은 인과가 있다.

김용소설의 매력을 깊이탐구하고, 미스터리를 풀며, 김용소설을 중국문학발전의 배경 아래 놓고 고찰한 뒤, 문학사적 지위를 정립하는 일은, 실로 김용연구자들의 공통된 과제요 임무이다.

주석

(1) 장치(张琦)의 《서방에서의 김용(金庸在西方)》에서 따왔다. <문예보(文艺报)> 1997년 1월 28일에 실려있다.

(2) 린이량(林以亮)이 말한 이 이야기는, 류리(陆离)의 <김용 방문기(金庸访问记)>에서 볼 수 있다. 1969년 8월 22의 일이다. 해당 방문기는 <제자백가가 본 김용(诸子百家看金庸)> 5편에 수록되어 있다. 홍콩 명창(明窗)출판사, 1997년 10월판 31~31p 참조.

(3) 류짜이푸(刘再复)가 쓴 <내 주변의 김용 팬들(我身边的金庸迷们)>에서 따왔다. 홍콩 <명보월간(明报月刊)> 1994년 12월 호에 실려있다.

번역자: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번역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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