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어나더라운드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KakaoTalk_20220125_165646158_02.jpg

영화를 보는 내내 술이 마시고 싶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표류해 길을 잃은 마르틴은 친구 생일파티에서 0.05%의 규칙에 대해서 듣는다. 혈중 알코놀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이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업은 따분하다고 비난 당하던 마르틴은 수업 전 화장실에서 보드카를 털어 마시며 몸소 이 가설의 실험을 감행한다. 문득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O가 생각났다.

“만약, 술이 살이 찌지 않는다면 난 하루 종일 취해 있고 싶어.”

자신의 살 뿐 아니라 SNS에 올린 우리의 사진을 보며 살이 내렸고 올랐네를 운운하며 살에 민감한 O다운 발언이었다. 술과 살이 절대적으로 비례해서 한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술을 마시고 살찐 삶을 살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취해있고 싶지는 않았다. 술을 어설프게 마셨을 때 노곤노곤해지며 까무룩 덮쳐오는 잠을 도저히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 한 두잔을 마시면 유지된다는 0.05%는 술 마시고 절대 안자는 내가 유일하게 조는 혈중알콜농도다. 자신감이 없는 주인공이 처음 술을 마시고 자신감 넘치고 유머있게 수업을 장악하는 모습에 내 인생 최초의 특강이 떠올랐다. 시간 강사로 모교에서 창조적 글쓰기 수업을 하던 친구 K는 <한 달쯤, 라다크> 책의 출간을 축하하며 내게 특별 강의를 제안했다. PPT까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스크립트도 얼추 다 준비했는데 막상 강의 시간이 다가가니 심장이 말도 못할 만큼 날뛰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빠른 심장의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져 어쩔 수 없이 우황청심환을 먹었고 미친 말처럼 날뛰던 심장은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그 때, 우황청심환 대신 술을 먹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10배는 더 재밌는 강의가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주인공을 비롯한 친구들은 다같이 반신반의 하며 실험에 뛰어들고 꽤나 유의미한 결과들이 도출된다. 하지만 더 최적의 결과를 얻고 싶은 그들은 알코올 농도를 높이기 시작하고 상황은 파국으로 흘러간다.

술을 왜 마시는가? 행복해지려고?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맛있어서?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술이 생겼을 때부터 알코올 의존과 중독의 역사는 동시에 흘렀을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늘 인간의 곁에서 위로가 되는 존재지만 너무도 해악한 존재인 것도 자명하다. 금주법이 괜히 있던 게 아니다. 애초에 0.05%를 유지하고, 8시 이후로는 마시지 않겠다는 그들의 규칙은 불가능했고 당연하다는 듯 깨진다. 술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의 것이 아니기에.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삶에서 술을 분리한다. 무조건 안 마시겠다는 게 아니라 0.05%의 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그만 뒀다는 의미이다. 친구 생일파티에서 운전해야 해서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하고 늘 불안한 허망한 눈빛이고 삶의 의미가 없던 마르틴은 이 술의 여정 끝에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는다. 그것은 일에 대한 열정이기도 하고, 무관심했던 아내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트럭을 타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시는 졸업 축제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그는 지금껏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자신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서 벗어난 그의 몸짓은 참으로 자유로웠다. 즐거운 순간에는 힘껏 자유로워지며 술을 마시되 평소에는 술 취한 기분을 학습해 술 취한 것처럼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일 것만 같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으니 이번 생은 망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099
BTC 64895.76
ETH 1877.80
USDT 1.00
SBD 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