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군중의 심리 구조
<군중 심리>의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은 자기 시대를 ‘현대’라고 명명하고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르 봉이 살았던 시대는 현대라기보다 근대에 가깝다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시민 혁명의 격동기를 거쳤고, 경제적으로는 산업 혁명 이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통과하고 있던 그의 시대가 앞선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혁명적 격동기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그 때문에 그가 자신의 시대를 현대라고 명명하는 것은, 전 시대에서는 목격되지 않은 새로운 현상에 일정 정도 압도당했으며, 그 현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탐문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책의 제목이 명징하게 보여주듯, 그는 새로운 시대의 특징적 현상으로서 ‘군중’에 주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대를 ‘군중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그 근거로 그는 다음과 같은 배경 요인을 제시한다. “첫째 요인은 서양 문명의 모든 기본 요소가 뿌리박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신념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둘째 요인은, 현대의 과학적 발견과 산업적 발견이 완전히 새로운 존재 조건과 사고 조건을 창출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진단 속에서 그는 “이제 막 우리가 진입한 시대는 명실상부한 군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르 봉은 “군중 세력은 먼저 관련 사상들이 널리 유포되어 민중의 정신에 서서히 뿌리를 내린 다음, 그런 사상들의 이론적 개념들을 실현하는 데 몰두하는 개인들이 단계적으로 결합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증대됐다”고 주장한다.
군중, 또는 군중 세력에 대한 귀스타브 르 봉의 관점은 한마디로 상당히 비판적이되 어느 정도는 유보적이다. 그는 군중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군중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군중의 속성에 대한 그의 관점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것은 군중의 일반적 특성을 고찰한 제 1장에 잘 드러나 있다.
우선 르 봉은 “집단화된 모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은 단일하고 동일한 방향으로 집중되어 각자가 지닌 의식의 개성은 소멸하고 만다”는 말로 군중의 특성을 규정한 뒤, “군중은 단일체를 형성하며 ‘군중의 정신을 단일화시키는 법칙’에 종속된다”고 말하고, “일정한 감화력을 지닌 원인들의 영향”을 받을 때 군중 심리적 특성이 드러난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군중 심리가 발동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적 특징을 르 봉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군중을 형성한 개인들이 누구든 그들의 생활 양식, 직업, 성격, 지능이 유사하든 아니든 그에 상관 없이 그들이 군중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하나의 집단 정신에 소속시켜 버린다. 이런 집단 정신은 군중에 포함된 개인들이 고립된 개인들과는 매우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조장한다.”
르 봉이 말하는 집단 정신은 군중의 부정적 특성을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즉, “집단 정신에 사로 잡힌 개인들의 지적 재능은 약해지고 그 결과 그들의 개성도 약해진다. 이질성은 동질성에 압도당하고 무의식적 성질들이 우위를 차지한다.” 결론적으로 르 봉은 “군중의 진실은 어리석음이지 축적된 상식이나 타고난 지혜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군중의 우중(憂衆)적 속성을 경고한다.
그렇다면 르 봉은 군중의 이러한 우중적 속성의 근거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그는 우선 ‘익명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즉 “개인이 군중에 포함되면 단지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 수가 많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다는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군중의 속성을 규정 짓는 또 다른 원인으로 르 봉이 꼽는 것들은 이른바 ‘감염력’과 ‘피암시성’이다. 르 봉의 말을 빌어 종합컨대, “군중은 의식의 개성이 소멸하는 경향, 무의식의 개성이 우위를 점하는 경향, 감정이 생각이 암시에 걸리고 감염됨으로써 동일한 방향으로 집중되는 경향, 암시된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경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한 이같은 군중의 심리적 속성은, 군중에 속한 개인으로 하여금 무의식성, 폭력성, 잔인성을 띄게 만든다는 것이, 르 봉의 진단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라면 군중에 대한 르 봉의 진단은 매우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이런 한편 그는 군중이 지닌 또 다른 잠재력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르 봉은 “군중이 때로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은 의심할 나위없지만 때로는 영웅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하나의 신조나 사상의 승리를 위하여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립된 개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군중”이라는 말로, 그같은 유보적 판단을 드러내고 있다. 군중의 긍정적 속성에 대한 그의 견해는, 군중의 감정과 도적을 논한 2장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는데, “군중은 무의식적 동기의 지배를 너무 강하게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물려받은 오래된 세속적 유습들의 영향력에도 너무 강하게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극도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군중은 살인과 방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헌신, 희생, 이타행 같은 아주 고귀한 행위도 할 수 있고 실제로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고귀한 행위를 할 때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장들에서 르 봉이 군중의 행동적, 도덕적 특성을 논했다면, 제 3장에서 르 봉은 군중의 지적 특성을 본격적으로 논한다. 군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상은 ‘감정화된 사상’이라고 말한 르 봉은 “군중의 추론 능력이 지닌 특성은 표면적으로만 서로 유관하게 보이는 상이한 사실들을 연결시키고 특수한 사례들도 즉각 일반화시켜 버린다”고 덧붙인다. 한마디로 군중에게는 이성적인 추론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이에 따라 군중의 상상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르 봉의 주장이다. “추론 능력을 결여한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군중의 비유적 상상력은 아주 강력하고 대단히 활동적이며 아주 쉽게 감동을 받기도 한다”고 전제한 르봉은 “이미지로써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군중은 오직 이미지에만 감동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군중의 마음을 완전하고 확실하게 사로 잡으려면 반드시 경악할 이미지를 생산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미지에 휘둘리는 군중의 속성을 간파한 르 봉의 관점은, 미디어를 활용한 이미지 정치가 대세로 굳은 현대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력적인 통찰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르 봉은 앞서 언급한 군중의 속성이 종교적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면서 그 특징을 편협성과 광신성으로 규정한다. 즉, “우월하게 보이는 자에 대한 숭배, 신뢰하는 인간의 권능에 대한 경외감, 그런 자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 그런 자가 내세운 교리나 신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무능력, 그런 교리나 신조를 전파하려는 욕망, 그것들을 수용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군중이 가진 속성 가운데 주요한 특질로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군중은 당장 자신들을 열광시키는 정치적 신조나 승전한 지도자를 무의식적으로 신비한 권력과 결부시켜 버린다”는 르 봉의 진단은, 이후 파시즘과 나치즘에 이 책이 왜 영향을 미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군중의 여론과 신념
<군중심리>의 1부에서 르 봉이 군중의 심리적 특성을 고찰했다면, 2부에서는 군중의 심리가 여론화되는 과정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이같은 접근을 통해 르 봉은 군중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군중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제언도 잊지 않고 있다. 우선 르 봉은 군중의 여론과 신념을 결정하는 간접 요인들을 민족, 전통, 시간, 제도, 교육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 뒤, 군중의 정신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요인들을 나열하고 있다.
우선 르 봉은 이미지와 단어, 격언 등이 군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단어들과 격언들이 군중 앞에서 장엄하게 발설되면, 그 즉시 군중은 하나 같은 표정으로 확연히 드러나도록 그것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면서 그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르 봉은 군중을 효과적으로 통솔하고자 하는 정치적 지도자들을 위해 더욱 세심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데, “정치적 격변이나 신념의 변화가 발생한 결과 어떤 단어들이 환기하는 이미지들에 대해 군중이 깊은 반감이나 혐오감을 품을 때 진정한 정치가의 최우선 과제는 군중이 물려 받았으면서 차후에 바뀔 수도 있는 정신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사건사실들 자체에는 일절 손대지 말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단어들만 바꾸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장에서 르 봉은 노골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사회주의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최근에 태어나 지금도 활발히 작용하는 환상들을 구성한 오류라는 데 있다”고 비판하고, “군중은 결코 진실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험하지 않을 증거들을 외면하지만, 자신들을 유혹하는 오류들이라면 무조건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덧붙인다. 말하자면, 르 봉은 당대에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을 ‘환상과 착각에 의해 만들어진 오류’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사회주의에 비판적이었던 르 봉이 군중을 우중적 속성을 갖는 무리로 규정함과 동시에 지도자들에게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했다는 것은, 다분히 엘리트 의식에 경도돼 있는 그의 사상적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것은 르 봉이 살았던 시대와 르 봉의 계층적 한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르 봉은 군중을 설득하기 위해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까지 세세하게 훈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선 그는, “군중은 자신들을 감화시킬 방법을 아는 강력한 의지력을 지닌 사람의 말은 언제든지 기꺼이 경청한다”고 전제하고, 그 이유를 “군중을 형성한 인간들은 모든 의지력을 상실하고 자신들이 상실한 자질을 보유한 개인에게 본능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도자들이 이러한 군중의 속성을 알고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 수단으로써, 르 봉은 확언과 반복, 감염력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확언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동일한 용어로써 반복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효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확언된 것은 반복됨으로써 끝내 증명된 진실로 인지되어 군중의 정신에 각인될 수 있다.” 르 봉의 이같은 관점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군중을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불순한 세력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농후하다고 볼 수 있으나, 현대 광고 전략 등에 활용될만큼 강력한 통찰력의 소산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르 봉은 또한 군중 앞에 서는 지도자의 자질로서 ‘위엄’을 강조한다. “확언, 반복, 감염으로 유포된 사상들은 위엄으로 알려진 신비한 힘을 때맞춰 획득하면 심대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 대목을 통해, 우리는 괴벨스를 기용해 대중 선전 선동에 힘썼던 히틀러의 나치즘과 북한의 지도자 우상화의 근거를 짐작할 수 있다.
*군중 분류법과 군중의 종류
책의 마지막인 3부에서 르 봉은 군중에 대한 분류를 시도한다. 우선, 그는 군중을 이질적 군중과 동질적 군중으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 민족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민족정신이 강화될수록 군중의 열등한 특성은 약화된다”고 봤던 것이다. 르 봉은 “견실하게 정립된 집단 정신을 획득한 민족일수록 군중의 무분별한 위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야만 상태를 탈피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르 봉의 이같은 관점은 자칫, 당대 제국주의에 대한 정당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이 민족적 우월성에 근거해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한 나치에게도 활용된 알리바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어쨌든 르 봉은 군중에 대한 분류를 더욱 세밀화해 범죄적 군중과 배심원 군중, 유권자 군중, 의회 군중으로 나눠 고찰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유권자 군중에 대한 르 봉의 관점이다. 그는 특히 보통 선거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근거로 제시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문명이란 우등한 소수의 지식인들이 창조하는 것이므로, 이들이 문명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하위단계들은 지식 수준이 낮은 일반 대중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문명의 위대성은 오직 인원수의 위세만 과시하는 열등자들의 투표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엘리트 의식에 입각해 군중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바라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사회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모든 인간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만인은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무지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말로 민주 정치의 발전에 대한 허무주의적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보통 선거에 대한 그의 비판적 관점을 감안컨대, 의회를 향한 그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그는 “의회 군중은 극도로 흥분하면 통상적인 이질적 군중들과 같은 상태를 보이면서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슬쩍 유보적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의회 군중의 모든 특성은 다행히도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의회는 어떤 순간에만 군중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르 봉은 군중의 부정적 속성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요소로 민족성을 재차 강조한다. “이전까지 민족들은 여전히 군중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이 단계부터 군중의 유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저변에 단단한 기반이, 즉 민족성이라는 특성이 형성되어 국민의 가변 영역을 좁은 범위로 국한하고 우연의 작용력을 제압한다.” 그 반대로 르 봉은 “고립된 개인들의 단순한 무리로 전락한 민족은 원시상태로 즉, 군중의 원시상태로 복귀하고 만다”고 덧붙인다.
그의 이같은 시각은, 앞서 언급한대로 민족성의 우와 열을 가르려는 그의 관점의 단면을 엿보게 만든다. 군중의 속성에 대한 그의 탁월한 식견과 통찰에도 불구하고 민족에 대한 그의 관점이 제국주의적 침략과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됐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적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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