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네가 크면 정말 우주에 갈 수 있게 돼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내 조카는 요즘 태권도 수련에 푹 빠져있다. 이제 막 파란띠를 달았는데 품새 시범을 보이는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처음에는 귀엽다고 킥킥거리다가도 나중에는 숨을 멈추고 보게 된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검은띠까지 따겠다"고 한다. 조카가 그런 말은 한 것은 처음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다짐의 말은 동시에 나에게 전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 포기하지 말라는 말. 날카롭게 반짝이는 그 마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부드럽고 다정한 꼬임에 무뎌지거나 흐려지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

"요즘 갖고 싶은 능력이 있어?"
"백 덤블링."
"그럼 백 덤블링을 할 줄 아는 너에게 말을 걸어. 그리고 고모 따라 해 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매일매일 자기 전에 세 번씩 말해. 여기 심장이 두근두근해지면 잘되고 있는 거야."

나도 지난 한 달 내내 몇 가지 주문을 입에 달고 다녔다. "쫄지마"랑 "하나씩 천천히". 동대문과 을지로를 들락날락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실과 바늘, 종이와 잉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세계다. 책을 만들며 종이와 잉크에는 조금 익숙해졌지만, 실과 바늘은 낯설다 못해 무서웠다. 그 세계에도 출판 세계 못지않게 마법의 주문 같은 기상천외한 용어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그 세계의 창조자들에 대한 괴담은 어찌나 많은지 대단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입장해야 했다. 그리고 나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운도 좋았다. '능력치 만렙의 친절한 일잘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가 미완성의 밑그림을 들이밀어도 그 세계의 창조자들은 '노하우'라는 위대한 지식을 활용해 그 위에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을 쌓아 올렸다. 제조업은 진짜 위대하다. 시작하는 내게 그들이 전해준 진심 어린 조언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단자가 되려는 내 조카와 거상이 되려는 나의 마음은 비슷하다. 차곡차곡 쌓는 마음으로 매일의 수련에 임한다. 라벨을 만들고, 제품 촬영하고, 스티커니 카탈로그니 자잘한 요소들과 패키지를 만들고,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한다. 춘자의 복덩이 우툰은 디자인을, 젠젠의 <어쩌다, 크루즈> 표지 그림을 그렸던 산책 작가는 본업인 사진을 맡아주었다. 아직도 산 넘어 산이다. 내 조카가 어느덧 파란띠를 허리춤에 차고 근엄하게 태극 품새를 선보이는 것처럼, 나도 내년에는 동대문과 을지로의 창조자들과 어깨를 걸고 함께 걸을 수 있겠지.

내가 이 모든 산을 하나씩 넘는 동안 초모는 '원산지 증명서'를 위해 두 달간 고군분투했고, 마침내 며칠 전 '신청'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모의 연락을 받고 당장 어디 옥상에 올라가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초모는 라다크의 차갑고 마른 땅에 헤딩하느라 날마다 고생이었지만, 매일 배우는 것이 있어 기쁘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무역학개론'을 수강하는 무역학과 신입생의 마음으로 신청서에 쓰인 용어들을 하나씩 공부해야 했다. 이쯤 되면 라다크에서 원산지 증명서 발급 대행사를 차려도 되는 수준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스카라의 자베드는 역시 키맨이었다. 그는 끝까지 초모를 도왔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초모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신청'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이고, 발급 여부는 며칠 기다려봐야 안다. 초모와 내가 맨땅에 헤딩하며 얻어낸 소중한 문서 한 장을 손에 넣게 되면 액자까지 해서 벽에 걸어두고 싶다.

며칠 전 다시 만난 조카는 아직 백 덤블링이 되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대신 옆돌기를 몇 번이나 선보였다. 아직 어설픈 동작이었지만,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되겠다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최근 요가를 시작했다. 45분은 동작을 45분은 호흡과 명상을 한다. 호흡이 동작보다 어렵다. 정뇌호흡이라는 걸 하는데 숨을 가득 채우고 내뱉는 복식호흡을 좀 더 강하고 빠르게 하면 된다. 이걸 천 번은 해야 한다. 이 호흡을 처음 오백 번 이상 했던 날은 두 팔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한 현상이라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계속 숨을 쉬었다. 중간에 호흡을 멈추면 다시 0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계속 숨을 쉬는 것. 그럼 그 끝에 정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눈앞이 밝아진다.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요가 생활 곧 한 달 차. 나의 2023년 목표 중 하나는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조카가 백 덤블링에 성공하고, 내가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면 함께 축하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조카가 요즘 콜드플레이와 비티에스가 함께 부른 마이 유니버스를 무척 좋아해서 함께 뮤직비디오를 봤다.
"이 노래가 좋아?"
"응. 이 노래는 바다 같아.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아."
"정말 그러네."
"이 안에 나 들어가게 해줄 수 있어?"
"합성을 해달라고? 고모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우주에 가고 싶은데 우주에 갈 수는 없으니 그렇게라도 대리만족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이 너무 뭉클했다.
"네가 크면 정말 우주에 갈 수 있게 돼."
다음 날엔 하루를 꼬박 투자해 다소 기상천외한 합성 영상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내 조카는 예상대로 엄청나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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