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아빠가 본 <82년생 김지영>

in #wife5 years ago

팟빵에 올라간 방송용 대본입니다.

주부아빠 준열입니다. 오늘은 10월 25일입니다. 첫 방송을 올린 후 두 번째 방송을 올리네요.

살다보니 방송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잘 하는 육아와 살림이 아닌데, 마음과 시간이 많이 가기도 하고, 다른 활동들도 조금씩 하지만, 어떨 때는 제가 주부라는 사실을 가끔 잊기도 하고 만나는 분들이 제가 주부라는 사실을 간혹 잊으시는 것 같아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납니다. 저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어떤 걸 진짜 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주변에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 가끔 들려올 때면 인생이 무상하게만 느껴지다가도 주어진 일상이 포근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마음의 문제일까요? 주부아빠로 살며 이어진 인연이 있지만 왠지 사회와 단절된 구조의 한계일까요?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이 되었고, 주부로 살지만 주부 엄마들이 정말 어떤지, 제 입장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첫째는 생후 3개월 이후에 제가 키웠거든요. 첫째는 지금 11살입니다. 아내를 옆지기라고 표현할께요. 옆지기는 중고차를 사서 유축기를 차에 가지고 다녔어요. 천기저귀를 매일 빨았고,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죠. 이웃들이 다들 천기저귀에 이유식 직접 만들어 먹이고 뭔가 육아 고민이 크다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 키우게 되었어요.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많지 않았어요. 아빠는 아빠인가보다 하면서 시간이 지났고, 옆지기는 둘째를 양평에서 낳아서 육아휴직을 했고 둘째 보리를 키웠습니다. 보리는 아토피가 심해 좋은 공기, 물, 환경인데 왜 아플까 고민을 했었어요. 용문사 바로 아래 동네였죠. 개발이 되지 않을 그런 동네였습니다. 보리는 많이 아팠고 옆지기는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저는 양평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었고, 옆지기가 느끼는 만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아파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제가 등원, 하원을 하고 있어요. 다시 주부아빠가 된 지 3년째가 되어 갑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주부로 산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어요. 성 역할을 떠나 엄마든 아빠든 주부가 되면 느끼게 되고 겪게 되는 어떤 일들이 생깁니다. 마음 내적으로도, 사회 외적으로도 어떤 변화가 생겨요. 주부 우울증은 엄마만 겪는 게 아니거든요. 아빠도 주부가 되면 똑같이 겪습니다. 소설책은 홍천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니는 조카에서 선물을 줬네요.

반복되는 일상이 있습니다. 왠지 고립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그마나 다행인게 이웃에 저와 같이 육아를 하는 아빠들이 저를 포함해서 4명이나 되었어요. 육아하는 엄마들도 맣았어요. 마을에 마을찻집, 마을도서관이 있고 마을 밥상이 있어서 정말 수월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사회라는 게 일, 직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자아존중감도 떨어지고 사회와 떨어진 듯한, 그러니깐 일을 하지 않으니깐 느껴지는 어떤 상대적 소외감 같은 게 불쑥 솟아오릅니다. 화폐로 전환되지 않는 육아와 살림 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게 전혀 가치 없게 느껴지는거죠. 천지저귀를 빨다가 혹은 설겆이를 하다가 혹은 아이를 등에 업고 재우다가 문득문득 내가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물론 제가 주부아빠다 보니 생명 감수성이 한참 떨어져도 떨어집니다. 사회적 관계가 없다고 느껴지거나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가 느끼지 못할 때 찾아오는 어떤 허탈함이 있어요. 엄마든, 아빠든 다 똑같습니다.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요.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에 남성은 몇 분 보이지 않았어요. 대부분은 여성분들이었죠. 느낌은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을 위한 위로 같았어요. 소설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소설을, 영화가 보고 싶은 분은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소설과는 내용이 살짝 달랐어요. 영화는 헤피 엔딩으로 끝나네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옆지기, 광주에서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 여수에서 결혼해서 사는 누나, 지금 전업으로 주부를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눈물 흠치며 꿋꿋이 살아내고 있는 우리 엄마들이 생각나고 제대로 주부 노릇 못하는 저를 보면서 한참 울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엄마로, 여자로, 주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위로를 주었습니다. 결국 손수건을 꺼내들고 울었네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도 훌쩍거렸어요. 어떤 대목에서는 눈물만 닦았네요.

김지영씨는 가끔 자신의 선배가 되거나 사돈이 되거나 할머니가 됩니다. 김지영씨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대변하는 인물들로 빙의되죠. 빙의되는 사람들만 김지영씨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시어머니는 김지영씨 남편 편이고, 자기 아들이니까요, 김지영씨 아빠는 셋째인 아들만 생각합니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영화에서 그려지는 김지영씨 옆지기는 아내를 정말 아낍니다. 영화가 아름답게 끝나는 이유이기도 해요.

남편은 육아와 살림, 살림을 가사라고 하죠, 을 하는 주부가 다른 사람으로 빙의된다고, 다른 사람 일인 것마냥 고민을 직장 동료들과 나눕니다. 김지영씨 남편은 자기 아내가 그렇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죠. 이 이야기를 듣는 직장 동료는 '미쳤다'는 말을 하며 벼의별 소리를 지껄입니다. 원래 하는 일인양, 어떤 사회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는 주부의 일은 그냥 일개 에피소드처럼, 심지어는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감받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김지영씨 남편의 직장동료의 입을 빌려 감독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빠들을 위해 재봉일을 해야 했던 김지영씨의 어머니, 그러나 오빠들보다 똑똑했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픈 시간들을 담담히 극복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가게도 운영하시죠. 김지영씨의 언니는 비혼 여성이고 당당하게 불합리한 것에 맞써 싸우는 열혈 여성입니다. 제 옆지기하고 비슷해 보였어요. 김지영씨의 남동생은 언제나 아빠의 편애를 받고 자랐지만 큰누나가 항상 균형을 잡아줬더군요. 그나마 좋은 남성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큰 누나였습니다.

육아는 노동일까요? 가사는 노동일까요? 내조는 노동일까요? 명절에 밥상을 차리는 것은 노동일까요? 그냥 질문으로 남겨 둡니다.

스포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생략할께요. 엄마가 된다는 건, 아빠보다도 엄마에게 엄청난 변화입니다. 엄마 몸으로 아이를 10개월 품고 있고 자기 몸으로 낳으니까요. 아이를 품고 낳아 키우는 재미야 두말 할 나위가 없죠. 그 이후에 감당해야 할 몫은 엄마에게 오롯이 떨어집니다. 아이를 보고 키우고 돌보는 것 자체에 어떤 기쁨이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을 잃을 수도 있어요. 어떤 고립감, 사회로부터 뒤떨어지는 듯한 불안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 모두 제가 겪고 있는 것들입니다.

김지영씨는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어 말하는 영상을 보고서 결국 정신과를 찾게 됩니다. 정신과 의사를 마주하기까지 다들 어려워하지만 그 순간부터가 치료의 시작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겪는 불안증, 분열적 질병들, 말로 다 할 수 없죠.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안전하다 느끼는 도시에서조차 불안감을 느끼고, 알면 알수록 안전한 곳이 없는 것 같은, 말 그대로 불안이 항상 달라붙어 있습니다. 영화 속 김지영씨의 선택은 자신의 상태에 불안하기보다 아이와 자신, 가족을 생각하며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것을 표출합니다. 표현이란 단어보다 표출이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숨죽여 지내온 그간 여성의, 엄마의 삶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가꾸고 공부했던 것을 이어 자신의 생각과 삶을 글로 표현해가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달라져 있는 김지영씨를 아주 밝게 앵글로 잡습니다.

김지영씨가 자라온 과거의 세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마을이 있어 아이들을 풀어놓고 키울 수 있었죠. 아이들에게는 마을 이웃이 다 '아는 관계'였습니다.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이 현대 사회 문제 발생의 본질이 관계의 부재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어요. 도시의 차가움을 관계의 따뜻함으로 녹여낼 수 있어야 보다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 말고 김지영씨에게 육아와 살림에 대한 일상적으로 나눌 벗이 있었다면 김지영씨에게 어떤 작은 변화가 있었을까, 그런 아쉬운 대목이 보였어요. 육아 공동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함께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개별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달라도 엄마가 되면 감당해야 하는 가정의, 사회의 몫은 여전한 게 아닐까 싶어요. 사회의 진보를 뭘로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생명을 볼보는 행위를 통해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약한 어린이, 그 어린 이를 돌보는 사람의 생활 수준,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 그 어르신을 돌보는 분의 노동에 대한 보상, 이런 것들로 그 척도를 확인할 수 없을까요. 경력 단절이라는 표현이 주는 무서운 배제와 차별의 용어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낳아 기르는 무척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모든 노동과 일의 토대가 되는 가정 경제를 가꾸어가는 진정한 경제인입니다.

우리 시대의 엄마, 여성, 주부에게 헌사하는 위로를 담은 시 같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저는 78년생 김준열, 주부아빠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2497?e=2323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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