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세상으로] 아이들도 안다, 평화가 무엇인지

in #vop6 years ago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참관기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종목을 꼽으라면 당연 ‘피구’를 들 수 있다. 피구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그리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흥미 있어 하는 운동경기이다. 학기 말 정규 교과 진도가 다 나가면 학생들과 가장 많이 하는 것도 피구이고 그런 만큼 전략과 전술을 가미한 피구 경기 종류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실내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운동장 또는 야외에서도 할 수 있지만 공이 라인을 넘어가 굴러가면 다시 가져오는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경기에 몰입도가 낮아져 흥미를 잃곤 한다. 또한 날씨 영향도 만만치 않아 무덥거나 추우면 학생들은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실내는 그렇지 않다. 날씨 영향은 절대 받지 않는다. 그들만의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놀 수 있다. 공이 라인을 넘어가도 든든한 벽에 튕겨 다시 나에게로 오거나 그 공을 잡기 위해서 슬라이딩을 하면서 본 경기 못지않은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즐겁게 피구 경기를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항상 학생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경기에 대한 결과이다. 남여 피구든, 어떤 피구든 경기 결과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목숨(?)을 건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과정은 상관없이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 안에서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울고 재미없다며 구석진 곳으로 가는 아이들,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다는 듯 수수방관하며 자기들끼리 깔깔 거리며 노는 아이들이 생긴다. 처음 경기를 시작할 때의 집중과 우리가 같은 반이라는 생각은 체육관 밖으로 던져 버리고 순간의 감정대로 행동한다. 그 결과 누가 이기고 졌던 간데 찝찝한 기분만 남기고 경기를 마치게 된다.

이번 8월 11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판문점선언이행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 경기장에 들어선 나는 땡볕 더위에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달랑 나에게 주어진 것은 미지근한 물 한 통과 얼음물 한 통. 가뜩이나 물을 많이 먹는 나는 아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그리고 ‘어서 이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얄팍한 생각을 했다.

얄팍한 생각이었다는 것은 경기가 끝난 후 알게 됐다. 박진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는 경기는 아니었지만 그 과정이 내가 우리 학생들이 피구 경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대표팀과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총) 건설노동자팀, 민주노총 대표팀과 조선직총 경공업노동자팀의 경기에서 그 누구하나도 승패를 생각하지 않았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이라는 아늑한 우리끼리의 공간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서로 간의 악수와 웃음, 그리고 이어지는 포옹이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를 한껏 감싸 차분한 온기로 바꾸는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그저 나와 너 그리고 하나된 우리가 있을 뿐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리가 우리를 즐거워하며 껴안았다.

그랬던 것이었을까? 학생들이 느끼는 아늑한 공간인 실내체육관에서 웃고 떠들며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주고 있을 때, 승패를 가르는 경기를 진행하고 너와 너는 서로의 경쟁자라며 중앙에서 버젓이 호루라기를 불고 있던 나는 누구였을까. 학생들이 나에게 짓궂은 과정을 보여준 것은 ‘우리만의 공간에서 우리가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승패를 내야 하는 건가요?’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선생인 내 입장에서는 너와 너지만 학생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와 너, 나와 나, 그리고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2학기 개학, 평화롭게 짝을 바꾸는 아이들

짧은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다. 개학하고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짝을 바꾸고 싶단다. 4교시에 짝을 바꾸었다. 나는 “오늘이 우리 반 1학기 학급회장, 부회장들 마지막 임기니까 1학기 마지막 평화회의를 통해서 짝을 바꾸어 보세요.” 라고 말했다. 서로 친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로만 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자기들끼리 대표 6명을 선정하고 그 대표들이 같이 모둠을 하고 싶은 친구를 한 명씩 선정한다. 그리고 대표와 첫 번째로 선정된 친구가 서로 상의를 하고 두 번째 친구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모둠들과 겹치는 친구들이 있으면 다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서로 협의를 한다. 그리고 선정된 친구에게도 의사를 묻고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정말 평화적으로 6개의 모둠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모둠원들도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친한 무리들이 아니라 모두가 섞여서 구성되었다.

아이들도 안다. 평화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인지를.

이제 2학기 시작이다. 우리의 아늑한 공간에서 서로를 보듬고 나갈 아이들이 기대된다. 선생인 나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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