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리뷰 | 삐죽 뾰족 악바리 인생 <달려라 하니>

in #undefined5 years ago

이 글은...
8개월쯤 전에 스팀잇에 올린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


입도 주먹도 몸도 작은 아이 하니,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여자아이 하니.
이 하니가 제 인생 애니메이션이 될 거라고는 꼬꼬마 시절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없다는 것도 같았고,
입도 주먹도 몸도 작은 아이라는 것도 같았기에,
어쩌면 제가 하니라도 된 듯이 살아온 것도 같습니다.
악바리처럼.

음... 물론...
하니가 부자였다는 건 다릅니다. ㅎㅎㅎㅎㅎ

하니는 중학교 입학날부터 말썽을 피웁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선도부장을 때려눕혔지요.
게다가 교실에서도 말썽입니다.
이 골치아픈 아이를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자 천사처럼 나타난 선생님이 바로 홍두깨 선생.
키가 작아도 너무 작은 하니와 잡상인 처럼 생긴 동네 아저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괄량이라고 불려지는 소녀,
빛나는 눈동자와 굳게 다문 입,
작은 몸으로 무서운 스피드를 내는 소녀,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해 보이는,
입도 주먹도 몸도 작은 소녀,
그 이름은 하니.

너무 오래 된 애니메이션이라 도입부를 대략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어려서(대략 5살? 6살?)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하니는
아빠도 중동에서 일하셔서 집에 혼자삽니다.
집은,,, 마당도 있는 좋은 집인데요,
아빠의 새 여자가 나타나서는... 혼자 살기엔 집에 넓다며 집을 팝니다.
하니는 아줌마와는 절대 안 살겠다며 옥탑방을 얻어 나가는데요,
그렇게 졸지에 처량한 고아 신세가 됩니다.
키가 작아 육상엔 불리한 조건임에도 빠른 하니의 재능을 발견한 홍두깨 선생.
그가 하니를 100미터 선수로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하니는 분노해야만 빨리 달릴 수 있던 아이었습니다.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빼앗은 나애리,
그리고 엄마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새엄마 유지애가 분노의 대상인 하니.
이 둘은 하니에게 분노를 주고 하니는 죽을힘을 다해 달립니다.

분노해야만 빨리 달리는 하니처럼 저도 분노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분노는 일중독으로 변했고
첫직장이었던 식당에서도 저는 일중독으로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이렇게 한 시간 먼저 출근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더 빨리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점심 먹은 후의 오침 두 시간에도 자지 않고 일을 하고 책을 봤습니다.
잠을 두 시간 줄이면 남들보다 두 시간 더 빨리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일중독이 분노의 표출이었다는 것을 그땐 몰랐습니다.
분노로 달린 하니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했듯,
분노로 일하면 일류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줄이고 내 여가시간을 줄여 일하고 또 일하고 일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일한 저는 20여명의 조리사 중에서 주방장과 부주방장 다음으로 칼질을 잘하게 됐는데요,
겨우 1년도 안 되어 거둔 성과였습니다.
게다가 내 일 다 끝내 놓고 다른 요리사들 일을 도와주려 다녔더니...
제가 일했던 식당에선 못하는 게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겨우 20살 꼬마가 악으로 일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제 일중독 증상은 군대 전역 후 캐드를 배우고 설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근 수당이 없어도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고, 휴일에도 출근했습니다.
너무 악착같이 살면 안 좋다는 걸 식당에서 일할 때 배웠음에도 저는 바꾸진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그런 제 행동들이 분노였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가난한 할머니와 살며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분노,
악착같이 배워서 실력이 좋았음에도 끝도 없이 학력차별을 받아야 했던 분노.
이런 분노들이 저를 채찍질하고 달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직 달려야 한다는 분노,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분노.

정말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속에 분노를 품고 있었기에 잘 될 수가 없었습니다.
삐죽뾰족 악바리 인생엔 상처만 남게 되더군요.
칼질 실력이 20여명의 조리사 중에 2등이 됐지만...
가스폭발이라는 사고를 당하며 양손이 마비가 됐고,
잠도 안 자고 야근에 철야를 밥먹듯 했지만,,,
다니던 회사가 망하며 임금도 제대로 못 받았고, 제 인생 최대 암흑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악착같이 살아도,,, 악바리처럼 살아도... 성공하진 못하더군요.
잘되진 못하더군요.
속에 분노를 품고서는요.

스팀잇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생각에 가치를 준다며? 그런데 왜 고래의 생각에만 가치를 주지?'라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제게 해로움만 줬습니다.
악착같이 쓰고 읽고 댓글을 달며 활동했습니다.
악바리같이 쓰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실패했습니다.
제 글은 평가받지 못했고 저는 실패자가 됐습니다.
속에 분노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요.

분노를 버리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를 버리고 활동하니까 새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제 글이 읽히더군요.
분노를 버리니까.

하나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나애리가 싫어서, 새엄마가 싫어서 달렸습니다.
분노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1등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결국 하니를 다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분노를 버려서야 하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나애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새엄마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 하니.
하니는 분노가 아닌 사랑으로 달려서야 진짜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하니는 세계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동양인에게 절대 불리한 100미터에서 그냥 우승도 아니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합니다.
하지만 예선 때 넘어지며 삔 발목이 결국 불행을 가져오고 맙니다.
코치인 홍두깨 선생은 하니를 결승전에 내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하니가 꼭 뛰게 해달라고 했는데요,
이때 하니는 다음은 없다며 이번만이 기회라며 반드시 달려야 한다고 애원합니다.
결국 다친 발목으로 달린 하니는 우승을 하지만,
다친 발목은 하니의 선수 인생에 발목을 잡고 맙니다.

식당에서 일하며 칼질도 주방장과 부주방장 다음으로 잘했고,
식당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만들 줄 알았던 저는 겨우 21살의 나이에 성공의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주방장은 평생에 이렇게 일을 빨리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저를 적극적으로 키워주셨고,
주방 형들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저를 경계하면서도 부러워 했습니다.
칼질을 너무 많이 해서 팔엔 늘 파스를 붙이고 다녔고,
칼에 베인 상처, 뜨거운 물에 데인 상처가 사라질 날이 없는 손으로 일했습니다.
급여는 고속으로 올랐고(지금으로 치면 21살짜리가 대략 과장급 급여는 받았음)
겨우 21살에 최연소 냉면부 책임자라는 자리에 오르는 등 말 그대로 성공은 코앞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을 너무 줄였던 탓일까요, 너무 자만했던 이유일까요.
냉면가마가 터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신체 25% 2~3도 화상을 입고 입원합니다.
화상이야 일하면서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영광의 상처가 하나 생겼다는 것 쯤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사고 후 손가락이 마비가 되고 저는 장애인이 된다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오직 달리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게 없던 하니에게 이젠 달릴 수 없다는 날벼락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발목 부상에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하니는 육상선수로는 영영 생명이 끝난 것이지요.

손이 마비됐으니 장애인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태어난 것부터 살아온 날과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이 저주스럽게 느껴진 날입니다.
신에게 욕을 했습니다.
니가 뭔데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가진 거라곤 몸뚱이 뿐인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칼질인 내가 뭐가 못마땅하냐고 따지며 울었습니다.
마비된 손으론 칼질은 커녕 젓가락질도 못했고, 글씨도 쓸 수 없었으며,
단추도 잠그지 못했 옷도 혼자 입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 21살짜리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마비되어 장애인이 된다는 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니를 다시 달리게 만든 사람은 새엄마 유지애입니다.
친절하기만 했던 새엄마는 하니에게 자기를 이기면 떠나주겠으니 이겨보고 싶으면 달리라고 동기부여를 줍니다.
하니가 절망에 빠져 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하니가 다시 달릴 수만 있다면 떠나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니는 그런 새엄마에게 자극을 받아 다시 달립니다.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하니가 다시 달립니다.

저는 하니만큼 악바리는 아니었습니다.
마비된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쉽니다.
집에서 내내 놀다가 저녁이면 친구를 만나 술을 퍼마셨습니다.
친구들이 말려도 말을 듣지 않고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셨습니다.
비를 다 맞으며 하늘을 보고는
'내 손 가져가니 속 시원하냐? 이젠 다리도 가져가봐라, 아니 죽여 그냥 죽여.'라고 고래소래 소리지르면
친구들이 뜯어말리곤 했습니다. 저는 분노만 있고 악바리 근성은 없었더군요.
평생 육상선수는 못할 거라는 의사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린 하니와 달리, 저는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신을 저주하고 세상을 저주하고 삶을 저주하고 태어난 것을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제게도 만약 악바리 근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마비된 손으로 칼을 잡아보겠다고 악을 쓰고 칼질 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을까요?
뭐 지난 일이니 잘 모르겠습니다.

달려라 하니 마지막 장면은 마라톤입니다.
발목 부상으로 단거리 선수 생명은 끝났지만 재활에 성공해서 장거리 선수로는 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겨우 중1이라는 나이, 겨우 열세살이라는 나이에 도전한 마라톤에서 하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완주에 성공합니다.

제게 있어 완주란 아마도 소설가 도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편소설을 써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완결은 매우 힘든 도전이더군요.
처음엔 막 뭔가 될 것 같아 쓰기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어디 올려도 댓글 하나 없으니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결국 완결은 물건너 가게 되더군요.
제가 여기 스팀잇에 연재한 소설 <또또통>도 그랬습니다.
도입부만 재밌었는지 몰라도, 몇 회 지나니 댓글이 뚝 끊기더군요.
하지만 두어달 쉬고 다시 시작한 연재는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하니가 수많은 관중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완주한 것처럼
저도 수많은 독자님들의 응원으로 연재중인 소설을 완주까진 아니더라도 잘 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목을 '삐죽 뾰족 악바리 인생'이라고 적었는데요,
하니의 삶이 그리고 제 삶이 온통 삐죽하고 뾰족한 악바리 인생 같아 보여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쉽게 분노해서 선도부장 패고 짱꿍 패던 하니가 그 분노를 잘 조절하여
100미터 우승을 한 것은 악바리처럼 살았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저는 하니보다는 못난 사람입니다.
하니보다 더 삐죽하고 하니보다 더 뾰족한 사람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분노하고 참지 못하고 덤벼드는 모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니처럼 그 분노들을 좋게 사용하진 못했습니다.
음... 홍두깨 선생님 같은 분이 옆에 있었다면 달랐을까요.
하니의 재능을 알아보고 분노를 재능으로 바꿔준 하니의 멘토 홍두깨 선생님.
저는 그런 멘토를 만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습니다. 제가 홍두깨 선생님이 되면 될 일이니까요.
안아주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품어줄 멘토. 그런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 그리고 아들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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