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 팔리오 축제 #1] 시간이 멈춘 마을에 들어서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 @songvely November. 20. 2018. |




「   P A L I O   F E S T I V A L  」


| Siena, Italy |



팔리오 축제날, 시에나 대성당




여행을 다니다보면 다양한 축제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이탈리아, 시에나의 팔리오 축제다.




시에나는 피렌체의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기차로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피렌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지만 중세의 시가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 하다.







시에나로 향하는 길. 창 밖으로 성 한 채가 보였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모양의 작은 벽돌 성. 옛날엔 당당한 깃발이 성 꼭대기에 펄럭였겠지.




당시 혼자 여행중이던 나는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시에나에 가는 길이었다. 생각해보니 베로나에서도 오페라 페스티벌 기간이었기에 아레나에서 아이다(AIDA)를 봤었다.

햇님군을 만나며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을 알았고, 너무나 익숙해져버렸지만, 혼자 떠났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묘미도 분명히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그 날도 기차 안에서 베니스에 산다는 이탈리아인을 만나 어설픈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베로나를 가기 전, 베니스를 다녀온 길이었기에 다행히도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친구도 나처럼 시에나의 팔리오 축제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탈리아의 기차 안에서 만나 약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된 걸 보면 만남이란 참 신기하다.




시에나에 도착하며 이 친구와는 헤어지고 난 일단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새로운 여자 동행을 만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와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봤자 한국어, 짧은 영어와 만화로 배운 일본어 정도지만) 핸드폰도 없이 지도를 들고 여행하던 시절, 결국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나이도 모른 채, 이름 하나만을 의지하며 그 날 저녁을 함께 돌아다녔다.







시에나의 버스 안.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이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였다. 여행 중 멋진 풍경들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진실은 손떨림, 노이즈, 역광, 빨간 눈... 눈에 담았던 좋은 풍경들을 사진으로도 남겨보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버스표를 들고서. 사진 속 20대의 나를 보고 내가 아닌 줄 알았다…







그 날 저녁 함께했던, 그리고 같은 방을 썼던 친구. 무척이나 밝고, 건강하고, 활기찼다.







우리는 시에나 역사 지구의 어디쯤에선가 내려서 거리를 걸었다. 당시 내 여행의 좋은 점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자유롭다는 것이었으나, 안 좋은 점이라면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발길 닿는대로 갈 때가 많아서 무언가 좋은 걸 보아도 그게 무엇인지를 모를 때가 많았던 것이다. 저 건물도 시청쯤 되어보이는 건물이었는데 확실치가 않다. 그럴싸한 건물에 창문마다 내걸린 깃발, 가운데 광장에 들어선 동상까지. 뭔가 시청의 느낌이다.(이래놓고 아닐 지도..)











시에나의 건물들 사이를 잇는 다리와 통로들. 이것이 중세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얼마 전 알쓸신잡에서 시에나가 나왔다는데 기회가 된다면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겸 한 번 봐야겠다.







으스스하기까지 한 시에나의 오래된 벽과 건물들. 12-15세기에 고딕 양식의 도시로 발전한 시에나는 수세기 동안 그 건축물들을 보존해왔다. 특히 나중에 팔리오 경주 이야기와 함께 등장할 캄포 광장은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예술 작품이다.




내가 도착했던 날은 팔리오 경주가 열리기 바로 전 날이었다.

팔리오 경주는 콘트라다라고 불리는 각각의 작은 마을의 대표 기수들이 여는 대회이다. 특이한 점은 기수들이 안장이 없는 말을 탄다는 것인데 특별한 규칙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 결승선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말이 속한 콘트라다가 우승이기 때문에 캄포 광장을 세 바퀴 도는 경주동안 몇 몇 선수들은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규칙도, 안장도 없는 참 원시적인 경주 방법인데, 사람들은 그 맛에 더 흥분하고 빠져드나보다. 매년 수만명이 팔리오 경기 날을 기해 시에나를 찾고, 나도 그러했다.







사람들은 가게와 집 바깥에 자신이 속한 콘트라다의 깃발을 내걸고 함께 모여 축제전야를 즐기고 있었다. 사진은 살짝 찍었지만 실제로 이방인이 저 속에 낄수는 없었는데, 흰 천 같은 것으로 경계선을 쳐 두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팠던 나와 그녀는 우리들만의 식사 장소를 찾기 위해 시에나 골목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찾아낸 핏자리아 하나.








나는 저 곳에서 피자를 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벽에 사진은 케밥이 유명한 걸로...








우리는 각 피자 1판씩을 들고 나와 호기롭게 벤치에 앉았다. 사실 나는 피자 한 판을 먹을 자신은 없었으나 조각 피자를 사기에 애매한 상황이라 그녀처럼 한 판을 산 것이었다. 남으면 내일 조식이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 자리에서 피자 한 판을 남김 없이 먹어치우던 그녀. 활짝 웃던 시원시원한 입 속으로 마르게리따 8조각이 휘리릭 빠져들어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음날 경기 관람을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매번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자다가 그 날은 왠일로 2인 1실의 숙소를 잡았었다. 여행 중 가끔씩 스스로에게 주던 선물이랄까. 독방은 아니었지만 적게는 4명, 많게는 20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에서도 묵어가며 여행을 이어갔기에 한 방에 나 이외의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녀의 코고는 소리는 여러 명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지만..)




다음 날, 보기보다 부지런했던 그녀는 나보다도 일찍 숙소를 나섰고, 나는 수도원같은 작은 방에서 고요하게 시에나의 아침을 맞았다. 전 날 먹다 남긴 피자를 먹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들판, 오렌지빛의 햇살이야말로 풍성한 조식같았다.

덜 마른 머리를 풀어헤치고, 너절해진 반바지와 늘어난 흰 티를 입고, 구멍난 2만원짜리 가방을 맨 나는 팔리오 축제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에나 팔리오 축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







[시에나 팔리오 축제 #1] 시간이 멈춘 마을에 들어서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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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송블리님의 혼자만의 여행기 처음 본 것 같습니다.~(맞나요??) 엄청 많이 쓰셨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다보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편이 너무 기대되네요~~ ^^ (빨리 보고싶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혼자 다녀온 여행기는 생각해보니 처음인 것 같기도 합니다. 기억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여행기 올리도록 할게요!!

역시 이태리네요 유럽쵝오

오... 혼자 다녀오신건가요?
저도 혼행을 즐기기는 하지만
아시아를 못벗어나본 비루한 여행경력이라...
여행의 맛은 도미토리인게 맞기는 한데
도난도 걱정되고 그래서 선뜻 엄두가 안나던데
멋지십니다!!

취업하기 직전에 길게 여행을 다녀오자 싶어 혼자 떠났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고, 혼자 산책하다가 한국 돌아오는 비행기도 놓칠만큼 빈틈이 많은 여행이었죠.^^;;;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ㅎㅎㅎㅎ
저는 아직도 좀 용감합니다...-ㅅ-ㅋㅋㅋㅋㅋ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니는것도 뭔가 로망이 있고 좋네요ㅎㅎㅎ

혼자 여행하며 저런 즐거움도 크지만 사실 외롭고 무서울 때가 더 많긴 했습니다.^^;; 지금은 같이 가는 여행이 좋아요!!!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꾸준한 활동을 북이오(@bukio)가 응원합니다.

오옹~ 팔리오 축제 기대되네요~

저도 여행 너무 너무 떠나고 싶네요~

알쓸신잡에서는 밝은 분위기로 봤는데 어두워지니 제법 으스스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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