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산티아고 길은 매우 춥고 힘들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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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29(35,859걸음)

오늘은 폰세바돈에서 몰리나세카까지 걸었다.

어제 우리가 걱정한 것처럼 오늘 아침 날씨는 거의 겨울 날씨였다.
영상 4도지만 그동안 30도를 웃도는 날씨였기 때문에 체감 온도가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춥다.
이런 생각지도 않는 상황이 닥치니 우리는 또 우왕좌왕하게 된다.
우선 우린 긴옷이 없다.
바지는 긴바지이지만 여름 바지라서 바람이 슝슝 들어온다.
웃도리는 반팔만 있다. 다행히 며칠 전에 산 우비가 긴팔이기는 하지만 재질이 비닐 성분이라서 살에 닿는 느낌이 얼음장같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 오더니 “절대로 못가. 이대로 가면 산 꼭대기 가면 더 추울텐데. 아마 동상 걸릴지도 몰라.”라며 한 걱정이다.
그래도 여기 있을 수 없으니 나서 보자고 하고 짐을 싸들고 나왔는데, 어이쿠! 이건 생각만으로 시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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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숙소 앞에서 평소처럼 사진을 찍고는 다시 철수해서 숙소 일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피신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날이 추우니 선듯 나서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아침이나 먹자고 생각하고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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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토스트에 커피를 시켜놓고 해라도 뜨길 기다려야 겠다.
잠시 후에 어제 우리랑 같은 숙소에 묵은 광주 아저씨들도 레스토랑으로 들어 오셨다.
아침은 안 드시고 담배 한대 피우시고 출발하시겠다고 한다.
보아하니 아저씨들은 따뜻한 옷과 큰 우비가 있었다.
우리하고는 다르게 준비가 철저하신 듯하다.
“그래도 우리가 생장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보다는 그렇게 춥지 않아요. 이 정도 날씨면 걷다보면 그렇게 춥지 않습니다.”라는 아저씨들의 말을 믿고 우리도 출발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산티아고를 걸었던 기간은 주로 6월과 7월이었다.
이 기간에는 사실 산티아고 길 내내 비는 거의 오지 않는다.
단, 높은 산을 넘을 때만 비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높은 산에 올라가 넓게 보이는 스페인의 땅을 멀리까지 볼 수 있지만, 비가 오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선 엄청나게 춥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그래서 매우 걷는 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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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걷다보니 추위는 어느 정도 가셨다.
여기는 1500미터가 되는 산 정상이다.
철의 탑이라고 하는 커다란 추모비가 있는데, 이게 산티아고 길에서 꽤 유명한 추모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서 사진도 많이 찍기도 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추모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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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모비 앞에도 작은 대피소가 하나 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동규씨는 산 정상에 있는 대피소에서 어제 묵을 거라고 했다.
동규씨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그의 소식은 거의 들을 수 있다.ㅋ
그 대피소는 20명 정도만 수용이 가능한 대피소이고 그저 마루 바닥에 자기가 가지고 온 침낭을 펴고 자야하는 열악한 대피소라고 했다.
우리는 우선 열악한 숙소는 피하는 편이라서 거기에서 묵을 계획은 하지도 않았지만, 동규씨는 뭐든 신기한 것은 다 경험해 보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굳이 그 숙소에서 묵겠다고 했다.

철의 탑을 지나 한참을 가다보니 그 유명한 알베르게가 나왔다.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알베르게 하나 있는 것이 다였다.
지나가는데 나무 타는 냄새가 솔솔 나는 걸 보면 아마도 난방으로 나무를 떼는 것 같다.
아마도 어젯밤에는 무지 추웠으니 아침까지 나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난방을 계속 한 듯하다.
숙소가 그저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라더니 우리가 지나갈 때 보니 다들 아침 일찍 출발했는지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우린 이런 데서는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겨우 20명 잘 수 있다니, 동규씨처럼 꼭 이런데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린 잘 양보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춥고 축축한 발걸음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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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꼭대기에 올가가는 것이라 그런지 길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찻길이 아주 잘 나 있어서 그쪽으로 걷는 사람도 꽤 있었다.
높은 산에 있는 길이니 차는 거의 다니지 않고, 가끔 지나가는 차가 있어도 오히려 차가 조심조심 걷는 사람을 피해가기 때문에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도 처음부터 그 길이 보였으면 그 길로 걸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개가 잠깐 사라졌을 때 바로 옆에 차도가 있는 것도 알았으니 험해도 걷던 길로 계속 걸었다.
어쩜 이렇게 우리가 걷는 험한 길과 나란히 차도가 나 있는지... 안개가 걷히고 보인 차도에 깜짝 놀랬다.

광주 아저씨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는데, 확실히 피레네 산맥을 넘은 경력이 있으셔서인지 가파른 산길인데도 아주 잘 걸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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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서 잠잘 때 입는 반바지를 위에 끼어 입었다.
웃기는 패션이지만 추워 죽겠는 걸 어쩌겠어.
산티아고에서는 이래도 괜찮아~^^

빨리 걸으면 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우리는 꽤 신나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생장부터 시작했어도 우린 피레네 산맥을 잘 넘어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산맥 넘는게 힘들다는 말만 듣고 그걸 빼고 팜플로냐부터 걸었다는 후회를 이때부터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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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출발해 산꼭대기에 있는 대피소를 자나고 첫 마을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머리 위로는 구름을 잔뜩 이고, 발아래로는 산과 길을 깔고, 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우리가 걷는 내내도 날씨는 계속 변화무쌍하게 변하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우리 발아래서 우리랑 같이 걷기도 하고, 층층히 있는 구름 사이로 해가 잠깐 얼굴을 내밀면 겹겹히 펼쳐진 산들이 내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다시 바람과 비가 몰아치면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걸어야 했다.
산이 높으면 날씨가 엄청 변덕스럽다더니 제대로 경험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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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광주 아저씨들은 비가 그치고 해가 잠깐 나오면 어디고 서서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태우신다.
저 앞에 코너에서 담배 태우고 계시는 것이 우리 카메라에 잡혔다.ㅋ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비는 정말로 반갑지 않는 날씨인가 보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산티아고 길은 매우 춥고 힘들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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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저는 코박봇 입니다.
보클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반바지 패션 너무 귀여우신데요.. 그맘저도 잘압니다..
오래전 인도에서 겨울에 돈아낀다고 싸구려 기차타고다닐때 잘때 너무추워서 속옷이고뭐고 배낭에있는거 다 뒤집어쓰고 겨우잠들었던때가 생각나네요.ㅎㅎ

경험해 보셨군요.
인도의 기차여행, 게다가 겨울....
엄청 고생하셨을 거 같아요.
인도는 왠만한 내공 가지고는 갈 수 없는 여행지란 생각이 아직도 있어서요...

gghite님에 긍정적인 마음과 도사님에 우직함이면 인도는 껌이에요... 훗날 가시게되면 두분은 인도에 빠지시게 될거에요^^

여행기를 보면서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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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그날 그날 기록한 여행기라 더 그런 느낌이 들거에요.
지금도 저 산을 생각하면 볼따구가 차가워지는 거 같아요.^^

정말 고행길이네요..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앞일이 술술 풀릴것 같은 느낌입니다.

고행까지는 아니고요.ㅋ 조금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런 경험이 생활로 돌아왔을 때 좀더 강해진 나를 보게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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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추위에 고생 많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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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날은 참 많이 추웠습니다.
남편은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데도 저날은 좀 힘들어하더라구요.

아찔해 보이는게...

정말 힘든 여정이었겠어요.

1500미터 산정상, 비바람 속에 던져진 느낌... 약간 탐험가같고 좋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영상에서 바람이 느껴지네요;; 고생하셨겠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일것 같습니다 ^^
순례길을 완주할 자신은 없지만 사진속의 산길은 정말 걷고 싶어요 ㅎㅎ
요즘 스페인 하숙집인지? 에 순례자분들 나오시는데 재밌더라구요 ^^

저도 스페인 하숙 보고 있습니다.ㅋ
우리가 걸을 때 그 프로를 했으면 대박이었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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