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조각] 헌팅도 열정이다.
휴가가 가고 싶었다. 그냥 회사가 싫어졌다. 그저 책임을 나에게 온전히 떠넘기는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회사가 싫어졌다. 특별한 계획없이 동기와 부산으로 향했다.
대선에 회 한접시 때리고 얼큰한 기분으로 바닷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는데, 사냥 중(?)인 어린 두 명의 친구가 보인다. 술기운인지 알 수 없는 용기로 주저없이 가서 마음에 드는 여성들에게 접근한다. 단번에 수락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는지, 한국 특유의 세 번은 물어봐줘야 하는 문화 때문인지, 그녀들은 몇 번 튕겼지만, 몇 마디가 오가더니 결국에는 같이 자리를 옮긴다. 어린 친구들 애쓰는구나 웃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열정을 높게 사고 싶었다.
언젠가 가족들과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다가 형이 장난감이 갖고 싶어 길바닥에 드러누운 일화를 꺼냈다. 어머니는 버릇이 잘못들까봐 떼쓰는 형을 그냥 두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는데, 형은 끝까지 발버둥을 쳤다. 동네 창피했던 어머니는 결국 장난감을 사주고야 말았다. 물론 지금에서야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나에겐 남들 다 있을 법한 그런 일도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나는 그저 불평 안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내 마음속에서 원하는 무엇인가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아님 말고’식이었던것 같다. 애쓴다고 할 정도의 노력보다는 주어진 일을 하다가 안된다 싶으면 변명거리를 찾아내 굳이 이거 아니여도 괜찮다고 합리화를 해왔던 것 같다. 이런 내가 회사는 싫으니까 다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몰두해보자고 생각할 자격이 있는건가 부끄러워졌다.
그녀들을 위해 정말로 애쓰는 그 친구들과, 멀리서 방관자적으로만 바라보는 나를 비교해보며 회사가 싫다고 ‘떼쓰지’ 말고 주어진 위치에서 일단은 ‘애써보기나 하자’고 생각해본다.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