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을 다녀와서

in #travel7 years ago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하와이는 너무 좋은 곳이었다. 푸른 바다가 있었고, 푸른 잔디가 있었다. 공기는 되게 맑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만큼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는 이 하와이에서의 여행을 하와이라는 장소적 성격보다는 가족여행이라는 관계적 성격에서 바라보게 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지배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매우 똑똑하신 분이다. 은행원 생활을 꽤 오랫동안 해오셔서 숫자에 밝으시고, 또 평소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셔서 여행에 관련한 일련의 지식에도 매우 능통하시다. 렌트나 숙소 예약도 능숙하시다.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신 분이다.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가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가기 일주일전 본인은 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하실 정도였다. 안정을 가장 중요시하는 분이시다. 잘 모르는 상황에 처하면 상당히 긴장하셨다가 상황이 해결되면 긴장이 풀려 잠에 드신다.

동생은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오버해서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일이어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절대 하지 않고, 또 남이 자신을 움직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쉬고 싶으면 쉬어야 하고 계속 쉬고 싶으면 계속 쉬어야 한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동생과는 비슷한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니 위 세 사람을 잘 섞으면 그게 나다. 묘사하고 싶어도 위에 세 사람처럼 객관적으로 나를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저 세 사람을 섞은 어떤 사람이 나다.

SNS에는 행복한 사진만 올렸지만, 역시 우리 네 사람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 삐걱거리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도착해서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고 싶어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혹시 위험한 곳에 잘못 들어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시고, 그래도 일단은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어머니를 보며, 동생은 자기는 가기 싫다고 휴양지 온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세 사람을 보면서 끙끙거렸다.

정신을 놓아버릴 때도 있었다. 일단 그나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동생아니면 나인데, 동생은 부끄럽다고 무조건 내게 영어를 부탁했다. 정신을 놓게 되는 건 대충 이런 상황이다.

공항터미널에서 렌트카 주차장까지 한번에 가는 셔틀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아버지가 미션을 주신다. 나는 지나가는 공항직원을 붙잡고 물어본다. 그런 셔틀이 있긴한데 바로 코앞이라 여기는 정류장이 없고 걸어가는게 낫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가족들에게 코앞이어서 걸어가야 한다고 전달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니 그치만 셔틀을 타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라고 하신다.

별거 아닌 에피소드 같은데, 이런 식의 경험이 쌓이다보니 '정 의심되시면 아버지가 직접 물어보세요 그럼 흑흑'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들로서의 도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열번 중 두번 정도는 나도 힘겨웠다.

아버지가 살포시 의심하시면 어머니는 불안해하시는게 보였다. 어머니 눈은 '우리 제대로 가고 있니?'라고 묻고 있었다. 옆에 동생은 직접 사람에게 가서 물어볼 용기는 없는 지 표지판이나 안내문만 보고 있었다. 확 짜증이 솟구치기도 했다. 으악.

나는 이 여행을 가기 전에 다짐한 것이 있다. '무조건 가족들 의견, 특히 아버지 의견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내 의견을 고집하면 아버지와 마찰이 생길 수도 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가는 가족여행을 내 주관대로 움직여 마찰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다짐을 견고하게 해준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인가. 아버지가 내게 단체여행비자(ETS) 신청을 해보라고 하셨다. 다 영어로 되어있으니 너가 해보거라 이런 말씀이셨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과외를 두개나 하고 있으며, 학교에 출근도 하고 있으며, 교회 청년부 일로 바쁘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다. 사실 귀찮은 마음이 제일 컸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가셨다. 같은 부탁을 하셨다. 동생도 거절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부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영어가 짧아서 그래 좀 해주라'

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울컥한다. 아버지는 똑똑한 분이시다. 은행원 생활을 하셔서 숫자에 밝으시고,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신 분이라 숙소나 렌트카 예약 같은 일들도 능수능란 하시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많은 지원을 받으시지 못했다. 20살 때는 회사를 다니시며 야학을 다니셨다. 지금도 아버지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으면 나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만큼 아버지는 내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본인의 부족함을 드러내시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똑똑하다고 주장했기에 마찰이 잦았다. 서로 각자가 가진 지식이 맞다고 주장했기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본인의 부족함을 드러내시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나는 그날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아버지에게 무조건 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무조건 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마지막날 밤, 작은 콘서트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그 레스토랑까지 가는 것도 이리저리 서로 말이 많고 힘들었다. 차를 가져가네 가져가지마네, 주차장과 연결된 로비가 있네 없네 등등. 그 시간들이 다 지나고 작은 콘서트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가수의 목소리가 부드러웠고 춤을 추는 여성의 몸선이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가족들이 참 사랑스러워보였다. 이 모든 경험을 제공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결국은 서로의 뜻을 알아주고, 힘들지만 서로에게 자신을 맞춰준 가족 구성원 모두를 나는 사랑한다.

난 가족을 사랑했지만 지배할 수는 없었다. 사랑하니 지배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가족여행은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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