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눈물 : 자동차 산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in #tooza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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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GM의 군산공장 철수 이슈는 최근 국내 경제 관련 이슈 중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GM 본사가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소위 '먹튀' 했다는 주장부터 정당한 경영 활동의 일환이라는 주장까지 수많은 논리가 뒤엉켜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국 이 문제는 전 세계의 자동차 산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의 한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왜 바뀌고 있는 것인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Fixed-Cost Industry


미시경제학에서는 개별 기업의 단기 공급곡선상의 한계비용(Marginal Cost), 평균총비용(Average Total Cost) 및 평균변동비용(Average Variable Cost)을 활용하여 각 기업의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과 조업중단점(Shut-Down Point)을 추정한다. 이에 따르면 개별 기업은 산출물의 가격이 평균총비용 아래로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하며, 평균가변비용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조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런데 조업중단점의 경우 각 산업별 변동비의 비중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만약 특정 산업의 고정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면, 평균총비용곡선과 평균가변비용곡선 사이의 Gap이 그렇지 않은 산업보다 더 멀 것이다. 즉 고정비가 높은 산업의 경우 조업을 일찍 중단하더라도 고정비는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정비가 낮은 산업에 비해 손실을 감수하면서 조업을 해야 하는 가격 범위가 더 넓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대표적으로 고정비가 아주 높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증권의 2015년도 자료에 의하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우 매출액 대비 고정비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이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자체가 상당히 비탄력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해외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산업은 연간 수백만 대에서 많게는 1천만 대까지 생산해 낼 수 있는 대규모 생산 시설이 필요하고, 또한 이 때문에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이 생산 시설들은 설치된 이후 자본화되지만 수 년 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각되면서 고정비용을 계속 지출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보통 대규모 완성차 업체는 프로모션 등으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최대한 신차 판매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을 사용한다.

개별기업의 단기공급곡선
2017 Global Automobile 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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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최대한 많은 생산량을 통한 '점유율 확보'가 우선인 자동차 업계의 특성상, 조업일수와 잔업/특근 등이 상당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생산 현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해지는 결과물을 자연스레 가져오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기아차 노동조합이 상당히 강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국의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mobile Workers)는 노동조합이 상당히 쇠락한 21세기 미국에서도 아직 40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고(심지어 2009년 이후 점차 조합원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최근 이슈가 된 GM 역시 매년 이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경영 방침에서 '점유율'에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GM의 움직임은 많은 의미가 있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단순히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는 초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이며, 이는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Getting Older but Newer


현재 자동차 업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장기 신차 수요의 지속적인 감소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내연기관의 발달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가전제품이 지나치게(?) 잔고장이 없다 보니 오히려 판매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다. hingomaster의 경우 집에서 하나의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30년 간 사용했었다.) 특히 자동차 천국 미국의 경우, 자동차들의 평균 수명은 1995년 8.5년에서 2016년 11.6년으로 30% 넘게 증가했다. 또한 차량의 보유 기간도 점차 증가하여 신차의 경우 6.5년, 중고차의 경우 5년까지 증가했다. 유럽 역시 2012년 재정 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평균 수명이 10.5년까지 급증했다. 신흥국의 차량 수요가 뒤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좋겠지만, 많은 신흥국들이 아직도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가 자동차 수요 증가를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세단 일변도였던 과거 자동차 시장은 이제 분화되어 다양한 차종이 상호 경쟁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0년 77%를 차지했던 세단 판매율이 2015년이 되자 5년 만에 60%까지 하락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름아닌 SUV다. 게다가 특히 미국의 경우 SUV 및 크로스오버 차량은 소비자 조사 결과 다른 차종에 비해 충성도가 높다. 유럽은 이미 해치백과 왜건 중심의 시장이 만들어져 있다. 즉 GM이 세단의 라인업을 줄이고 중형 세단을 생산하는 군산공장을 철수하기로 한 것은 시장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점유율을 포기하고 수익성을 선택한 것이다.

US Average Automobile Age
Average Age of Household Vehicle in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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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Bureau of Transportation StatisticsSource : Bureau of Transportation Statistics

또한 자동차 업계의 미래 수익 구조 변화 역시 하나의 포인트다. PwC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완성차 업계의 이익 중 신차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를 하회하여 4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외의 이익은 Aftermarket에서의 순정부품 판매 및 이와 관련된 보험료 수입, 주요 내연기관 핵심부품의 수직계열화 등으로 인한 이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향후 2030년 경이 되면 이러한 비용 구조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차량 공유 서비스일 것으로 PwC는 예측하고 있다.

위의 기사들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는 우버 등 차량공유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특히 도요타의 경우 자사의 생산 차량을 Uber에 대여해 준 뒤, Uber의 수익 일부를 임대료로 받는 신규 리스 계약 방식을 개발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경우 이렇게 발생한 매출은 신차 판매로 잡히지 않는 별도의 매출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도 한때 카풀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었던 적이 있었다. (현재 이 업체는 카카오에 인수된 상태이다. 플랫폼 기업이 자동차 산업과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우, 생산량과 출하량이 점유율을 결정짓던 시대를 지나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들과의 합종연횡이 완성차 업체들의 점유율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쟁의행위를 통해 여전히 생산량에는 영향을 끼칠 수 있겠으나, 이것이 더 이상 Critical 한 영향력을 갖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Value for Automobile Company in 2015
...And 2030(Exp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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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PwCSource : PwC

또한 자동차가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부분이 점차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함께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Value Chain 의 확대도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로 차량 전장화 사업을 선택하면서 약 9조 원의 거금을 들여 Harman 을 인수한 것은 이러한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함인 것이다.

So, What Now?


결론적으로, GM의 군산공장 폐쇄는 GM의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 및 구조조정에 따라서 필수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GM이 9천억 원을 투자해 놓고 2조원을 넘게 챙겨 갔다고 이야기 하지만, GM이 20년 가까이 해당 지역에서 수천 명 규모로 고용을 유지하면서 지출한 비용만 해도 GM은 2조원어치의 값은 충분히 했다고 본다. 또한 GM 본사가 한국GM에서 이전가격 문제를 포함해 이러저러한 석연치 않은 일을 벌인 것도 사실이긴 하나 한국GM 역시 연결회계상 GM 본사의 이익에 상당히 스크래치를 낸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 산업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정비 규모가 상당한 산업이다. 때문에 여태까지는 생산량과 대규모 가격 프로모션을 위주로 한 점유율 확대 전략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현대/기아차가 201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늘린 것이 상당히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 찾아오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나도 느리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게 되어 있다. GM의 철수는 이러한 '미래' 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편적인 장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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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재미 없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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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무슨 말씀을요. 넘 재미있게 봤습니다. 기성언론이 알려주지 않거나 알려주지 못 하는 내용이네요. 현상의 이면이나 깊은 뿌리를 알지 못 하고 피상만을 들으면서 갖게되는 공허함이 싫어 기성언론의 뉴스를 안 본지 오래되었습니다. 모처럼 보여진 현상의 깊은 뿌리를 만나니 반갑기가 그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재미있었다...

다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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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아닙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도 토요타 또한 카 쉐어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hingomaster님 안녕하세요. 깜지 입니다. @joeuhw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읽는 내내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필로 꾹~💕

감사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ㅠㅠ 저희 아버지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셔서 더 와닫는 글인거 같습니다.

산업 구조의 변화가 말씀하신 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늘 저도 걱정입니다 ㅠㅠ

물론 GM 본사의 양아치짓이 없다곤 못하죠(......)

옳은 말씀입니다. 특히 부품과 완성차 거래에 있어 이전가격 문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긴 해야 한다고 봅니다.

@hingomaster 님 혹시 올리시는 글들 출처와 함께 SNEK에 공유해도 될까요~!!

저만 보기 아깝습니다:) @홍보해

넵, 혹시 익스포팅 하시고 싶으신 포스팅 있으면 댓글 달아주셔요 ㅎㅎ 이번 글도 공유하셔도 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글을 잼있게 봤습니다. 저도 해당 이슈에 대한 간략한 생각을 적었었는데, 상세한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네요. pwc가 실사를 할 것인데 GM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참 궁금하구요. 보팅 팔로우 하고 갑니다 ^^

GM이 세계적으로도 회계를 아주 잘 하는 회사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크게 꼬투리 잡을 것은 없지 싶은데 그래도 지켜봐야죠 ㅎㅎ 감사합니다 ㅎ

대단한 노력이 들어간 분석 글 잘 읽었습니다. 신규 전기차 제조사의 진출도 큰 변수가 되겠네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향후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지 않을지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군요. 인사이트가 넘치는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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