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선물/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edited)

뜻밖에 선물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m.blog.naver.com/q5949a/221376200295
뜻밖에 선물

밥풀 같은 눈이 내려선 거리에
연한 어둠이 짙게 깔려 갈 무렵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앞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는 아주머니
그리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까만 물감을 풀어놓은
어둠 사이로 하얀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마을버스는 도착을 했고
언몸 녹이려 서둘러 버스에
먼저 오른 사람들이 내민 지폐에
기사님은 고장이 났다며
애꿎은 요금통만 두드리면서

"잔돈이 와 안 내려오고 그카노
니도 추버서 꽁꽁 숨은기가“라며
화풀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잔돈은
조금만 바구니에 넣어달라며
“오늘따라 뭔 지폐들만
짜다리 들고들 오시노 ” 라며
거스럼 돈을 내주기에 바빠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로 하나둘 앉은 뒤에도
그대로 서있는 아이는
가방에서 뭔가를 이리저리 찾고 있었습니다

“와이 카노 학생아,
퍼떡 요금 주고 가 안 안꼬”라는
짜증을 달게 받으며
하나둘 챙긴 잔돈으로 요금을 건네고선
기사아저씨 바로 뒷자리로 가 앉았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시린 바람과 가난을 목도리로 두르고
손톱 끝에 동전 같은
손자를 데리고 버스에 오른 뒤
천 원짜리 하나랑 동전 두 개를
바구니에 담습니다

문을 닫으며
"아이 거는 안 줍미꺼 “라는 말에
고개를 숙인 채
표정이 없는 백지장처럼
서있기만 합니다

“어르신요
거카지 말고 서있으면 위험하이
퍼떡 돈주고 자리에 가 앉저이소“
라는 소리에 맞쳐
기사님 뒤에 앉아있는 그 아이가 일어서더니
카드를 내밀어 대신 차비를 내주었습니다

어둠이 누워 잠들어 버린 골목을
구비구비 돌면서
운전을 하는 기사아저씨에게
" 다음에 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일어서는 아이에게
기사아저씨는 궁금했다며 말을 건넵니다

“카드 되는데 와 잔돈 줬노 “

“잔돈이 필요하실 같아
백 원짜리 동전을 드리려고예 “라며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유리창에 비친 가을처럼 환하게 웃으며
마을버스 앞으로
걸어가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때

“기사 아저씨 퍼떡 안 가고 뭐합미꺼”라며
바람 앉은 나뭇가지처럼
분산 거리는 손님들 틈에서도
아이가 골목으로 사라져 갈 때까지
걸어가는 길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아이가 사라져 간 자리에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10-13-08-09-23-441_dec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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