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주 영성학교 훈련내용

in #steemchurch6 years ago

2018년 8월 1주 충주영성학교 훈련 및 코칭후기

기도훈련의 길잡이

목사님과 코치분들의 코칭내용입니다

동기부여

종교에 관심이 없는 유럽에서는 일생에 두 번, 결혼할 때와 죽을 때만 교회를 갑니다. 종교 세를 걷어서 목회자에게 월급을 주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이나 캐나다에 있던 개신교도들도 이제는 많이 줄어들어서 노인들 외에는 교회에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교회가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일명 연합교회라 합니다. 신자들이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줄게~ 말은 하지만 실제 기도하는 교인들은 없다고 합니다. 이제 기독교 인구가 천만에 육박했던 한국 교회도 이제는 비어가고 있고, 시골교회에는 노인들만 나옵니다.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었고, 목사는 ‘먹사’라고 불리며, 교회는 경멸과 질시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지 않아서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불신자조차도 성도들을 칭송하였고, 베드로가 설교를 하면 몇천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모여들었을까요? 친교가 필요해서? 말씀이 필요해서였을까요?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받아서 지켜온 자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강력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던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나타났던, 전지전능하신 기적의 하나님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을 목격했고, 위선에 찌들어 있던 그들의 심령이 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성학교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에게 임했던 성령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내주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고 우리도 동일하게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기적을 말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신 책이고, 교회는 그 기적의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 안에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의 종이 된다는 고백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로만 때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가 죽어서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날마다, 하는 일마다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니라면 성령이 안 계시거나, 성경이 거짓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관념이 기적을 통해 그 사람의 삶에 실제로 드러나게 될 때, 진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훈련을 시작한 지 3년 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성령을 모시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영적인 잠에 빠짐.

주님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마지막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기름을 예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 오므로 열 처녀 모두 졸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우리 영성학교 훈련생들도, 주님이 생각보다 더디 오시므로 졸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귀신이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삼킬 자를 찾으며 영혼을 사냥하고 고통을 주면서 지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귀신을 잡는 사람보다 귀신을 따르는 자들이 많으며, 기도하는 사람은 현저히 줄고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적어집니다. 이런 말세에 우리가 영성학교로 인도하심을 입어 기도하는 자리로 부르심을 입었지만, 아직도 전심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기도는 졸면서 하기 일쑤인데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기도 자리에 앉았지만, 기도가 끝나도 마음이 순종에 대한 동기로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데도 염려와 부정적인 말과 혈기가 넘치는 행동이 다반사입니다. 매일 듣는 코칭이 새롭지 않고, 졸아도 여름이라 너무 더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쑥스러운 마음을 이내 정리하고 맙니다.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있고 잠자리도 부족한데도, 위기감이 각성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옆 사람이 경험한 기적이 내게는 안 일어나는데도, 울며불며 죽기 살기로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실감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훈련생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면 기도의 행위도 종교적인 행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매일 경험되고, 귀신과 빡세게 싸워서, 영적 세계가 실감이 나야 합니다. 실감이 나게 되면 기도에 미치게 됩니다. 체험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자라가고, 죄를 인지하는 것도 빨라지고, 이기는 힘도 커져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확확 일어나야 하는데, 돌밭 같은 마음에 간간이 오는 은혜를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내 상태를 정직하게 돌아보게 되면 남은 것은 마음을 찢는 회개뿐이 없습니다. 내 생애에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오늘 죽어서 주님 앞에 정산해야 할 사람처럼 기도하십시오. 지혜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자고 있는 세대를 깨울 수 있는 각성된 자들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가 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1. 각성

① 나는 죄인이다.

하나님과 나와 관계 안에서 나는 믿음이 없는 죄인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였다는 사실을 빨리 자각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씻어주심으로써 나와 관계를 맺어주신 분이십니다. 죄인의 회개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 상황이나 특정 사람과의 관계에 직면할 때 나오게 되는 나의 죄 된 반응을, 스스로 옳다고 합리화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하나님께 다가가고 있는 열심 있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마음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죄를 씻어주실 수 없습니다.

② 나는 믿음이 없다. I - 낙심함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18:1)

항상 기도하는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은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면서 결과가 내 생각만큼 빨리 나오지 않거나 부정적인 환경이 닥치면 여지없이 낙심으로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낙심은 불신의 다른 얼굴입니다. 귀신이 안 나가도, 몸이 빨리 안 나아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보상이 없으니까 낙심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바라고 기도한 셈입니다. 귀신은 낙심의 생각을 넣어주지만 받아들인 것은 나의 의지이므로 귀신과 싸우는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생각을 받아들인 믿음이 없는 나를 회개해야 합니다. 초보는 낙심해버리고 나서 압니다. 기도하다 보면 낙심이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는 절대 낙심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미리미리 기도하십시오.

③ 나는 믿음이 없다. II – 밤낮 부르짖지 않음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 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눅 9:40-41)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쫓지 못한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답답해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귀신의 포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도한 것마다 100% 응답이 왔나 살펴보십시오. 아니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문제해결을 구하는 가난한 과부의 비유를 끝으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 7-8)

밤낮 부르짖는 사람의 기도 즉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응답이 없다면 그 이유는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기도에 가서 10여 분 기도하는 것으로 열심히 기도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5분도 기도를 못 하다가 아침 1시간, 밤 1시간 기도하게 되니까 무척 열심히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수준을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라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믿음이 있다고 여기십니다. 아직도 가정에 평안이 없고 고질병도 그대로라면 그 이유는 믿음이 없는 기도,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을 때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수준으로 기도하십시오

④ 나는 믿음이 없다. III – 순종하지 않음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행동과 결과와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불렀는데 아직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손을 대지 않으시고, 아이들의 상태도 거기서 거기라면 뭔가 이상한 것입니다.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10~20%는 들어주시는 것 같으니 나는 진도가 나가고 있는 거로 생각하신다면 미혹에 걸려 넘어져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기적이 연속되지 않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삶의 곳곳에 불순종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 잡듯이 뒤져서 찾으십시오. 불신앙의 모습( 낙심, 좌절, 염려, 원망, 쓴 뿌리, 게으름, 비교의식, 요동치는 믿음 등 )을 찾아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우리가 전심으로 기도할 때 점점 하나님만 생각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면 내 숙제 다 했으니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마음에 들어오고, 주님께 은혜를 조금 받으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 힘으로 살려고 합니다. 가지치기했던 것들을 다시 야금야금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오실 때 종을 수종 들고 수고했다 위로하시는 인자하신 주인에게 매 맞는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맺음말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롬 12:2)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 살고 있기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태로워지고 식상해지는 것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새롭게 해주실 때 변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내 힘으로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기도로 생각이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내 노력으로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바꾸어 주십니다. 마음이 바뀌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마음이 안 바뀌고 있는데 행위만 하는 것은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다윗은 시편 63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것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가 하나님만 찾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육체도 마음도 고갈된 상태에 있을 때 육체의 필요에 시야가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 머물렀기에 굴곡이 깊은 삶의 궤적에도 최상의 은혜가 그에게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지 빨리 기도하고 싶어하는 갈망으로 가득 차도록 기도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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