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은 인생을 맡기는 것이다.

in #steemchurch6 years ago

일전에 소그룹 모임에서 동역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에는 F=ma라는 공식이 있다. 쉬운 예제문제에서는 학생들이 공식을 적용하여 잘 푼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잘 풀지 못한다. 어려운 문제의 대다수가 문제의 길이가 길고 설명이 복잡하게 나오는 문제를 말한다. 아무리 복잡한 질문의 문제라고 공식을 단순하게 적용하면 풀 수 있지만, 문제가 복잡한 설명에 휘말려버리기 때문에 공식을 적용할 생각을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풀지 못하고 시험장을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당하셨으므로, 이를 믿으면 자신의 죄가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이며, 이 사실을 믿는 게 기독교의 믿음의 본질이다. 그 밖에도 기도하는 것마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도 믿음이고, 자신의 삶과 영혼을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것도 믿는 것도 믿음이다. 이렇게 믿음의 항목은 여러 가지이지만, 믿음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시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믿음의 공식을 적용할 수 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녀로 부르시고 백성으로 택하셔서, 당신의 삶과 영혼을 행복하게 해주시기 때문이 아닌가? 그 사실을 믿고 있다면 최상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당신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턱 맡기는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게 믿음의 공식이다. 하나님께 당신의 삶과 영혼을 맡기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며 각종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는 이유이다. 믿는 자녀로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천국의 자격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 부유하고 형통하게 살게 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이지,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봉사를 하고 있는 자신의 신앙행위에 근거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본질적인 믿음의 토대를 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믿음의 근거로 삼고 있다. 아무리 문제가 복잡하게 나와도 F=ma라는 공식을 적용하여 문제를 풀면 되는데, 정작 복잡다단한 삶의 현장과 교회에서의 신앙행위를 하다보면, 본질적인 믿음의 공식을 잊게 되어 아무런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위의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바울의 말씀은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으라는 취지의 말씀이다. 그래서 당신은 삶의 현장에서 그런 믿음을 보이고 있는가?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는 그런 믿음을 결심하고 있겠지만, 세상에 나가 온갖 부정적인 뉴스와 암울한 환경, 그리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각종 자료와 통계숫자를 들먹이며 불안과 공포의 미래를 예시하는 결론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믿음의 말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조급한 마음으로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의 지식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복잡한 문제에 휘말려서 공식을 잊어버리고 있는 수험생과 같은 모습이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경을 읽을 때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믿음을 보이는 삶의 현장에서는 믿음을 상실한 채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크리스천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위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는 세상에서 최악의 실패를 경험하고 극도의 가난에 직면할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견고하게 믿고 의지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자신의 삶과 영혼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이끄시고 평안한 삶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14:28~31)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신도 물위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탁해서 실행에 옮겼다. 처음에는 신기한 경험으로 흥분한 상태에 있었지만, 곧 바람이 세차게 불고 물결이 높이 일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가 믿음을 상실하자마자 물에 빠져 들어갔다. 당신이 믿음이 있기에 교회에 나오고 십일조를 드리고 각종 교회봉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신가? 아니라면 당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바탕을 둔 믿음이 아니라 성경지식과 신앙행위에 바탕을 둔 믿음일 뿐이다. 그래서 평안하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이유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당신의 영혼과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증거가, 바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상태는 교회뿐이 아니라 직장과 가정, 사업장을 포함한 삶의 현장에서이다. 그러나 교회에 있을 때 혹은 기도하고 있을 때는 평안한 마음이 있지만, 직장이나 사업장에 있을 때에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철썩 같이 믿지 못하고 있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교회에 다닌 신앙의 근거가 자기확신이나 자기암시 혹은 머리에 저장한 성경지식에 불과했던 것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의 삶과 영혼을 믿고 맡기지 못하면서, 교회마당을 밟는 교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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