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설교만을 쫓는 자들은 결코 만족이 없다.

in #steemchurch6 years ago

필자에게 종종 상담하는 이들 중에서, 자신이 사는 곳에서 혹시 추천해줄만한 교회나 목회자, 혹은 유투브 동영상 설교가 있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그런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교류하는 목회자는 한명도 없다. 또한 유투브 동영상이나 인터넷방송에서 설교를 들어본 적도 한 번도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상담하는 크리스천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현재 자신이 다니는 교회나 목회자에게 만족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교회나 목회자 혹은 설교를 통해 영혼과 마음을 흡족하게 채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원하게 말씀드리겠다. 그런 교회나 목회자 혹은 설교는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설교방송이나 유투브 동영상을 검색해보면, 우리나라 아닌 전 세계에서 유명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안방에서 24시간 들을 수 있다. 필자에게 상담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보았지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의 입을 통해 그런 설교자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절대로 만족함을 얻을 수 없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어보고 결정을 한다. 그래서 설교가 현학적이고 감성을 터치하는, 소위 은혜로운 설교를 하는 지로 평가한다. 그래서 설교를 듣고 감동이 와서 눈물을 죽죽 흘리거나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면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은혜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교회 문을 나가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라디오나 텔레비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열어놓고 하루 종일 설교를 듣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경영학개론에서 나오는 한계효용의 법칙처럼, 처음 설교를 들을 때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지지만 두 번 세 번 설교를 들으면 만족함이 줄어들다가, 이내 식상해져서 다른 설교동영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예배설교가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함을 찾는 이유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3: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당신이 만족하다는 느낌은 무엇인가? 바로 기쁨과 평안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당신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만족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그래서 당신이 찾고 있는 목회자의 설교나 그런 설교를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제공해주고 있는가? 당신이 좋아하는 설교자는 대부분 해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감성을 터치하는 쫀득쫀득한 내용으로, 당신이 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위로나 격려, 축복 등의 덕담을 늘어놓는데 유능한 목회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의 말미에서 제시하는 제안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를 열심히 믿어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회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같이 말하는 배경에는 이미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음을 의심하지 말고, 성령이 안에 계신 것을 굳게 믿으며 성령께서 깨어나도록 믿음의 행위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설교를 들으며 어떤 결심을 하는가? 아하! 예배의식에 더욱 성실하게 참석해야지 성경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지, 새벽기도에 나가야겠다.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결단하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결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그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더라도 당신은 만족이 없을 것이다. 그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가장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들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자신의 삶을 만족스러워하고 마음과 영혼이 평안하고 기쁘게 살고 있는가? 아마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평신도보다 못한 열악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마음은 피폐되고 영혼은 황폐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아는가? 바로 그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자동적으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지, 누가 그 이유를 속 시원히 말해주시라.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은 예배의식에 참석해서 설교를 듣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와 말씀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는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주하는 기도이다.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이 그런 기도를 통해 성령을 만났지 아니한가? 또한 성령이 오셨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낙심하고 떠나가지 않도록 깊고 친밀한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만이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습관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고,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성경지식을 쌓으며 입에 발린 위로와 귀를 간질이는 덕담으로 채우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정으로 영혼의 만족을 원한다면,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집어치우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죽기 살기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 길만이 당신의 영혼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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