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까?

in #steemchurch5 years ago

이런 투의 질문을 받는다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을 게 분명하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즉답을 하기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대답은 필자가 대신 해 주겠다. 성령이 안계시다는 게 정답이다. 그러면 사나운 눈초리로 들이대면서, 왜냐고 묻고 싶을 게다. 성령이 계신 증거는 명쾌하다. 평안과 기쁨이 안에 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평안과 기쁨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아주 기본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안과 기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방언이나 뭐 다른 증거를 대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에게 자신에게 성령이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그냥 예수를 믿는다는 증거가 성령의 역사 때문이기에 자신에게도 성령이 계시겠거니, 하고 알고 있을 뿐이다. 방언이 성령의 활동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잣대로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는 방언은 그동안 자신이 암기해놓은 구절을 반복해놓는 것에 불과하다.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기도가 몰입이 되어야 비로소 시작되며, 그것도 자주 바뀐다. 그러나 평생 바뀌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어낸 방언이라는 게 정확한 답변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가 평안과 기쁨이라면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고 느낌이 다를 수 있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니코틴이 체내에서 결핍 증세를 보이면 즉시 불안과 초조, 산란함이 시작된다. 그래서 담배를 다시 피워서 부족해진 니코틴을 다시 채워 넣어야한다. 알코올 중독자도 그렇다. 그들은 알코올이 체내에서 부족한 증세를 보이면 금단현상을 일으키기에 알코올의 포로가 되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술을 위장에 털어 넣어야 된다. 그러나 담배나 술을 모르는 어린아이라면 니코틴이나 알코올의 부족현상에 대해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성령의 내주도 이와 같다. 성령이 내주하는 크리스천이라면 늘 기쁨과 평안이 자신 안에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찬송을 흥얼거리고 영으로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가슴속에는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사람이라면 성령의 각종 은사도 적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평안과 기쁨이 늘 자신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 그런 감정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즉각 알아차리게 된다. 평안이 사라지고 냉랭함과 건조함이 들어차고, 그런 어두운 상황이 오래되면 불안과 걱정, 염려,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변질되고 증폭되는 과정을 거쳐 분노와 짜증이 섞여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느끼자마자 즉각 평안과 기쁨의 공급원인 기도를 시도하게 된다. 만약 기도가 막혔다는 느낌이 들면 심각해지면서 기도의 문이 다시 열리 때까지 회개기도를 반복한다. 막힌 상태가 적어도 하루를 넘어 여러 날 걸린다면 불편해지고 어두워진 마음을 참고 견디며 성령께 간구하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그래서 드디어 기도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활동이 감지되면서 평안과 기쁨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평안과 기쁨의 상태를 모르기에 그런 기도에 대해 무지하다. 자신은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하거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가르치지 않는다. 성령 충만이라는 게 온갖 악기를 동원하고 찬양을 하고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격앙되는 마음의 상태에서를 성령 충만이라고 호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 충만이라면 기도할 때뿐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나서도 몇 시간 동안 이러한 감정이 지속되어야한다. 성령께서 기도할 때만 계시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유행가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을 때도 느끼게 되는 격앙된 감정에 불과하다. 진정한 성령 충만은 열정적인 찬양이나 통성기도가 없이 침묵기도를 해도 얼마든지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감정을 격앙시키는 행위는 성령의 열매가 없다. 성령과 깊게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이 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가면 성령의 증거가 지속되면서 성령의 열매가 맺게 된다. 성령의 열매는 즉각적인 기도응답, 문제해결,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치유하는 등의 영적 능력과 다양한 은사를 받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부족한 성품이 거룩하게 변화하고 세속적인 인생관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관으로 바뀐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새벽기도를 규칙적으로 해도 이런 은사나 변화가 없다면 그냥 종교적인 행위만 반복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평안을 주시면서 자신의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하셨다. 성령이 내주하면서 들어오는 평안은 세상의 욕구가 채워지면서 얻어지는 기쁨과 평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런 기쁨은 얼마 안가 또 다시 격상된 욕구를 채워야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은 세상의 욕구와 상관없이 늘 채워진다. 물론 쉼 없는 기도와 말씀의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하지만 말이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가르치시며 진리로 인도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놀라운 영적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늘 기쁨과 평안한 가운데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능력이 사라진 종교행위만을 반복하고 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을 체험하려면 전심으로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가능하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천국에 가려면 이 습관을 지녀야 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천국의 자격은 물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세상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세상을 이기고 형통하며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게 아니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으며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였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마음이 쓰레기통 같고 건조하고 냉랭하며 불안하고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면 성령을 다시 찾을 것을 권한다. 성령을 되찾는 것은 선택사상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성령이 안 계시면 여전히 당신은 지옥으로 가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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