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장의 일상

in #start-up6 years ago

친구야, 내가 '센터장'이 됐어. 너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센터장'이 대세야. [00 혁신센터]라고 이름 붙은 곳이 등장하면서부터 '센터장' 명함 가진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더라. 대표, CEO 직함보다 왠지 '센터장' 좋더라고.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 센터장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그래서 생각해봤지. 내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뭘 하며 사는지...

우리 인큐베이션 센터에는 40팀이 입주해 있어. 꽤 많은 편이지. 인원으로 따지자면 130명 정도 될 거야. 엄청난 거지. 내가 맡은 일은 40팀이 입주해있는 1년 동안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야. 각 팀의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더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일부터 마케팅, 투자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언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써놓고 보니 거창하지만 사실 내가 어떻게 어떤 팀을 "성장시킬" 수 있겠어. 그냥 주변에서 도와줄 일이 없는지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지.

말하자면 이런거야. 아침에 출근해서 A팀과 미팅을 했어. 외부에서 투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니 구성을 좀 봐달라는 거야. A팀 대표가 열심히 PT 하는 것을 듣고 도입부를 그렇게 얘기해서 심사위원들이 관심을 갖겠냐고 잔소리를 좀 했지. 좀 더 주목을 받기 위해 앞부분을 이러저러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더니 반가워하더라고. 그 후에는 B팀과 미팅이 있었어. 가는 길에 C를 만났는데 지난주에 투자받기 위해 VC와 만났던 일이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얘기를 나눴어. 잘 되었는지 궁금해서. 관심 갖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는데 정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VC에게 연락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스마트폰 메모 앱에 적어 두었어. 요즘은 적어두지 않으면 깜빡깜빡하거든.

B팀과의 미팅은 편치 않았어. 요즘 들어 홈페이지 방문자수와 콘텐츠 조회 수 등 전반적인 실적인 대폭 떨어지고 있었고 향후 전략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거든. 드라이아이스를 펼쳐놓은 무대처럼 회의실에 구름이 펴 오르고 뭔가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원인 파악을 잘 했더라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해 얘기 나누며 방향을 잡았어. 오랫동안 함께 할 좋은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한 일인데...

점심은 D팀과 먹었어. D팀이 사업 전략을 피보팅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서 경험 많은 컨설팅 회사 대표님을 연결시켜 주는 자리였거든. 역시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프로젝트를 많이 하셔서 팀이 고민해봐야 할 포인트를 잘 정리해 주시더라고. D팀 대표 얼굴에 고마움이 넘쳐흐르고 안도의 표정이 느껴져 정말 다행이야.

오후에는 센터 내부 회의를 했지. 다음 달에 있을 네트워킹 행사들 기획하고 특강 강사 섭외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 해야 할 일을 쌓아 놓으면 천정까지 닿을 것 같아~~. -_-

간신히 책상에 앉아 이메일 훑어보고 답장을 할까 했더니 E팀에서 면담 요청이 왔어. 원래 사업 아이템이 아닌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꿨다며 설명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얘기들을 마구 뱉어내고야 말았어. 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래도 잘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E팀은 나은 편이지. 얼마 전 F팀은 결국 팀이 깨지고 센터에서 퇴소했어. 아, 허탈함이여...

이 번잡함 속에서도 G팀이 원하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지. 그래, 나의 하루는 그래도 해피엔딩이라 위안 삼을 수 있었던 게 어디야...

너무 미주알 고주알 늘어 놓았나? 그냥, 다 필요 없고... 센터장의 일상은 가난한 살림에 아이를 여러 명 키우는 엄마의 그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큰 애 등록금도 내야 하고 둘째 교복도 사줘야 하고 셋째 병원도 데려가야 하고 넷째 운동화도 사줘야 하고 울고 있는 다섯째도 달래야 하는 그런 마음. 그래도 모두들 잠든 모습 보면 더없이 사랑스러워 미소 짓게 되는 그런 마음이랄까... 물론 엄마의 사랑에는 언감생심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입주 팀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 것이 행복이려니... 그렇게 살고 있다. 횡설수설 하소연이 돼버린 안부 인사는 이만 접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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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영어 번역본은 다음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steemit.com/en/@babeltop/day-in-the-life-of-a-center-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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