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킨 이력
벚꽃이 4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94년 이후에 쭉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엔 그날도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이 병아리 떼처럼 몰려 있었다. 바로 닭 강정집 앞이다. 휴대폰 게임을 하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자 머슴아, 옆집 미용실 대문에서 졸린 얼굴로 가르랑 대는 하얀 페르시아 고양이를 어루만지는 어린 소녀들의 난장 속에서, 나는 사장 아가씨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화창하네요. 하하하.
"네. 어서 오세요. 자주 오시네요."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하얀 수선화처럼 고운 자태의 사장님이 내원사 시냇물보다 더 맑고 경쾌한 소리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사장님은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의 재잘재잘 대는 소리를 다 받아 주고 있었는데, 이곳이 닭 강정 집인지 아니면 학교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 말고,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학교 말이다. 사장님이 거기 나온 예쁜 선생님 닮았다. 히메라 선생님. 나는 대(大) 자로 달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사셨나요?”
“아니에요. 저는 전라도 목포가 고향이에요.”
“그런데 표준어를 쓰시네요. 서울 사람 같아요.”
“아. 학교를 서울에서 오래 다녀서 그쪽 억양이 남은 것 같네요.”
그러고는 치킨이 익는 동안, 나는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때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나는 아무 사람들이나 만나면 심각한 정치 이야기도 하고, 읽었던 책 이야기도 하고, 아이유 이야기도 하고 그런다. 사장님은 훌륭한 청자였는데, 그때도 아마도 잘 들어주었던 것 같다.
“오오. 아름답네요. 정말 예뻐요.”
사장님은 뜬금없이 창밖을 바라보면 말했다. 나의 시선도 창밖을 향했다.
가게 앞에는 커다란 상록수가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잎 새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수 백 개의 둥근 원을 만들어 현란한 춤을 추었다. 그것은 마치 천상의 물고기가 나무 사이로 헤엄치면서 꼬리로 찰싹찰싹 치며 만들어 낸 물결 같았다.
“네. 정말 아름답네요. 저런 걸 핀 홀 현상이라고 하지요.”
“네? 핀 홀이요?”
“잎의 간격이 바늘처럼 촘촘해서, 태양과의 거리를 점대칭으로 태양의 모양이 거꾸로 비치는 거죠.”
“오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 혹시, 선생님이세요?”
“아니요. 어디서 주워 들었어요. 하하하.”
또, 한 번은 사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결혼은 안 하세요?"
나는 뭐라고 말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깐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신선놀음하느라 사람을 못 만난다고. 아니, 나의 의식의 시간이 현실 세계와 다르게 흘러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고. 내 의식에서 하루가 흐르면 현실 세계는 한 달이 흐른다고 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살짝 보조개가 들어간 미소를 지으며, 참 재밌는 분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퍽 기뻤다. 내가 재밌다니. 아마도 하하하 하고 크게 웃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그곳에 들렸다. 그리고 수많은 정치 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 이야기가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넘어갈 때쯤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짧게 스포츠머리를 한 뚱뚱한 남자가 빨간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걸 보았다. 그는 나를 보자 무심한 얼굴로 인사하면서, 손님 뭐 드릴까요? 하는 것이다. 순간 나는 크게 상심했다.
"대(大) 자로 달콤 양념이랑 후라이드 주세요."
"네? 달콤 큰 거 하나 하고, 후라이드도 따로 큰 거 하나요?"
"아니요. 반반으로요."
그는 주문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는 기계적으로 자신의 할 일을 순서대로 진행했다. 엄숙한 표정으로 매우 진지하게 치킨을 튀겼고, 군인처럼 상자의 각을 칼 같이 잡아서 포장을 했고 계산대 앞에 섰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특히나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뭔가를 이야기를 하였으나 사장님의 돌부처처럼 무표정한 반응에 나의 입도 멈춰 버렸다. “저기 제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없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여기, 카드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것을 받았다. 그는 계산대 앞에 모니터를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카드를 긁었다가 다시 버튼을 누르기를 서너 번 반복하더니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 어린 모습으로 나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쥐어 주었다. 순간, 나는 그가 아마 착한 사람 일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설마 여러 번 결재된 건 아니겠죠. 하하하.”
그는 나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저기. 혹시 여기 사장님이 바뀌었나요?”
“아니요.”
"전에는 아가씨 분이 했었던 걸로 아는데요.”
"아. 네. 얼마 전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랑이 접니다.”
"네?”
"아. 그 여자분이 제 집 사람입니다."
"아. 네."
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서너 번 끄덕였다. 짧은 순간 또 한 차례 실망감이 스쳐 갔지만, 정말 잠깐만 그러다가 그런 기분도 이내 사라졌다. 어차피 사장이 바뀐 건 아니지 않은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닭을 샀다. 어떤 날은 히메라 선생님이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슈렉 아저씨 혼자 있던 날도 있고, 어떤 날은 부부가 함께 있었다. 아저씨도 점차 익숙해져서 나의 이야기를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또 꾸준히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았다. 참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사건과 사고가 많았다. 장자연 사건, 용산 철거 참사, 세월호 사건, 제주 강정 마을 사태, 홍준표가 경남 도지사로 된 이야기, 급식 문제, 보편 복지 이야기, 그리고 광화문 촛불 운동과 탄핵 뒷 이야기 등등. 그동안 여자 사장님도 많이 모습이 변해 갔다. 점점 허리 쪽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그 살이 꾸준히 몸을 타고 올라와 턱선을 잡아먹고 볼살을 두툼하게 찌웠다. 8년 전과 비교하면 외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히메라 선생님에서 슈렉의 피오나 공주로.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여자 사장님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친절했고, 여전히 가게는 수많은 아이들로 붐볐다. 그리고 나는 치킨의 메뉴를 조금씩 바꾸어갔다. 처음 1,2년은 여전히 달콤 반 후라이드 반에서 매콤 반 달콤 반이 되었다가 매콤 반 후라이드 반과 그냥 후라이드 대자를 거쳐서 현재 간장 대자로 메뉴를 바꿨다. 그동안 내가 먹은 치킨의 양을 합치면 백악기에 살았다는 거대 공룡 아르젠티노사우르스의 넓적다리만큼은 안 되겠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쨌다고? 아니. 그냥 그렇다고.
겨울 저녁, 찬 공기에 덜덜 떨며, 혼자서 이런 잡생각을 할 때, 여자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장, 대(大) 자 맞으시죠?"
"네.”
나는 짧게 대답하고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몹시 춥네요."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둬 두는 소용돌이가 약해지면서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와서 그렇다는군요."
내가 평소 하던 말투로 여자 사장님이 말했다. 시간은 참 많은 걸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