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니즈 20개가 반영된 비뇨기과 디자인 1

어라! 비뇨기과는 남자들만 가는 병원 아닌가요?

공간에 대한 고민은 효율성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공간이 어떤 곳인지에 따라 오가는 사람들과 머무는 이들이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죠. 이번 비뇨기과 리모델링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더해진 일이라 만족도 높은 결과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은 아주 미약했음에도 불구하구요.
.아주 오래전, 비뇨기과와 피부과를 같이 운영하는 클리닉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원장님은 연세가 좀 많은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 비뇨기과는 남자 환자들이 대부분일 텐데, 여자 선생님이 진료를 보신다니 아이러니하네.ʼ 제가 가진 선입견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봅니다. 당시 원장님도 비뇨기과 환자보다 피부과 환자들을 더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비뇨기과보다 피부과에 맞춰 더 신경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저에게 있어 비뇨기과를 설계하는 데에 딱히 특이점을 되짚어볼 만한 게 없는 과목이란 편견을 형성했던 아주 옛날의 기억이 다네요.

이 글은 어제 기차를 타고 쓴 글인데 지난 해 즐겁게 진행했던 프로젝트 비뇨기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깁니다. 긴긴 과정이었고 일하면서 추억도 많았었는데 우연하게도 기차간에서 글을 다 마무리하게 되나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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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요즘 성장하고 있는 신도시 동탄에 오픈한다는 골드만 비뇨기과를 만나게 됐습니다. 동탄 지역은 SRT역이 들어서면서 역세권 중심으로 한창 개발이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답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도 황량한 벌판의 역 주변 거리에서 거대한 크레인들이 곳곳에 건물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골드만 비뇨기과가 들어설 건물도 이제 막 지어진 탓에 아직 제대로 상점들이 채워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허허벌판에 150 평의 규모로 비뇨기과를 오픈한다고? 아직 상권도 안 만들어졌고, 인기 진료과목도 아닌데... 용기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여유가 많으신 건지 환자들이 아직 찾아오기 부담되는 이 장소에 비뇨기과 병원을 세워도 가능한 걸까?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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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비뇨기과 전문의가 현재 3곳의 병원을 나눠 운영하고 계신데 동탄을 확장 개원하면서 여성 비뇨기과 환자들까지 돌보는 것을 전제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보다 좀 더 환자의 폭을 넓혀 생애주기마다 체크가 가능하도록 찾아가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비뇨기과에 남자들만 환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여성 환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비뇨기과에서 필요로 하는 제가 모르고 있던 세부적인 공간들이 진찰실 이외 에도 훨씬 많기 때문에 동선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남녀 환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는데 .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치료를 위해 찾는 비뇨기과. 병원 관계자들도 이 병원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지 병원 운영이나 치료의 수준을 포함하여 공간 그 자체로도 기존의 병원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니 차별화된 비뇨기과 병원을 신대륙같은 신도시 동탄에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할 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가득 실은 함선에 제가 몸을 담게 된 셈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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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의 비뇨기과 설계를 앞두고 저는 이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구나 하고 서둘러 리서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외 비뇨기과 디자인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병원장님께서 추천해주시는 병원들을 우선순위로 먼저 벤치마킹했습니다. 한 군데는 남자 선생님이 원장님이었고, 또 다른 곳은 여자 선생님들이 진료를 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묘하게 두 곳의 분위기가 달랐는데, 우리가 만들어야 할 비뇨기과의 특성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출입구로 들어가는 비뇨기과인지 아예 따로 출입구를 다르게 구분시켜야 할 지 그 선택부터 무엇이 좋을지에 대한 혼란이 생기더라구요.
성별이 다른 환자들이 함께 있어야 하는 곳. 바로 이 지점이 공간 구성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사실 비뇨기과에 오는 분들은 다른 진료과목과 비교해서 자신의 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있죠. 그런 마당에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하면 되레 찾기가 꺼려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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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한 워크숍을 소집해서 다 같이 이런 고민들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설계 레이아웃을 디자이너 입장에서 만들기 보다는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들을 들어보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니까요. 자그마치 4시간이 넘는 워크숍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 넘치는 가운데 진행이 되었습니다. 평소 간호사 복을 입고 계셨던 얌전하신 간호사 선생님들이 알고 보니 패션 감각 넘치는 걸그룹과 아이돌 수준의 모습이었는데 그 분들의 아이디어가 창대하여 그간 제가 생각하고 있던 틀에 박힌 이미지의 비뇨기과의 공간에서 이런 분들이 어떻게 제 끼를 누르면서 일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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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나온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가니 결국 구체적인 동선 구축에 대한 실마리들의 방향이 잡혀 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요구사항이 나왔죠. 내용이 길지만, 잠시 소개해보겠습니다.

  1. 수술실과 환자실이 모아져서 동선이 편리했으면 좋겠다.
  2. 대기실에서 의사 이동 동선이 안보이게 해야 한다.
  3. 수술실 베드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쓰면 청결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4. 직원탈의실이 넓었으면 좋겠다. 05. 자기장 치료실이 현재 너무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5. 환자가 진료실 앞에 종합병원처럼 대기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6. 진료실 앞 화장실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7. 진료실 찾기가 불편하여 팻말이나 사인이 필요하다.
  8. 혈관주사 맞을 때 누워있고 싶다.
  9. 혈관주사실 칸막이가 필요하다.
  10. 혈관주사실이나 대기실에 안마의자가 있으면 좋겠다.
  11. 남녀 화장실이 떨어져 있게 설계되었으면 좋겠다.
  12. 화장실 냄새가 많이 나서 불만이 들어온다.
  13. 가고 싶은 화장실 있는 비뇨기과으면 좋겠다.
  14. 화장실에서 파도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15.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수술실이었으면 좋겠고, 자동문 설치가 필요하다.
  16. 수술대에 온열매트가 있어서 춥지 않게 하고 천정에 좋은 귀 같은 게 있어서 수술하는 동안 환자가 지루하지 않게 하면 좋겠다.
  17. 수납할 때 환자가 내역을 볼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어떤 검사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관련 비용의 산출 내역을 확인가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18. 안내책자가 사람들이 쉽게 꺼낼 수 있게 높이를 편하게 조절했으면 좋겠다.
  19. 접수할 때 간단한 상담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20. 검사실 공간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지 않게 프라이버시를 고려했면 한다.
  21. 자기장 치료 받는 시간이 10~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치료에 대한 소요되는데, 치료에 대한 정보와 효능을 안내하는 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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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 스텝 모두가 함께 한 워크숍은 공간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방향 설정으로 시작해서 그동안 서로의 속마음에 담아두었던 것까지 보여주는 직원 단합 대회의 장이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니 처음 “이런 워크숍을 왜 하는가?” 라면서 위크숍이 의미없으시다던 원장님들까지 적극적인 참여자로 의견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열정 가득찬 뜨거운 공감의 시간으로 무르익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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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제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골칫거리 따위는 슬슬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요? ‘사용자가 참여하는ʼ 공간디자인의 묘미를 다시 한 번 맛보게 되니까요. 처음부터 함께 하는 디자인은 디자이너로서도 매우 유용합니다. 단지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특정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그들의 요구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공감까지 이루어지니 이제 모두가 디자인의 주체자가 되어 마음이 모아지게 된 셈이죠. 한정된 공간에 사용자들이 움직이면서 생길 수 있는 충돌을 미리 방지하는데 효율적입니다.

늘상 디자이너가 그려다 준 공간들은 각기 개개인의 입장에서 위치의 불만과 크고 작음의 절 충이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어서 도면의 만족도가 상당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동선과 각각의 공간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희 디자이너 입장을 사용자 개개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병원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능동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코크레이션 워크숍은 디자인 설계과정에서 여러모로 뜻 깊은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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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전까지의 과정스토리는 여기까지구요. 디자인에 대한 결과물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norapassion/22117956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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