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국가 싱가포르 이야기 3 다인종/다문화 국가의 탄생

in #singapore7 years ago (edited)
  • 위소프 빈 이샥 Yusof Bin Ishak

매년 8월 9일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한 것을 기리는 싱가포르의 National Day이다. 재작년(2015년)이 50주년으로,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였다. 위소프 빈 이샥 이라는 인물은 1965년 신생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첫 번째 President, 즉 대통령이었다. 그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리콴유(Lee Kwan Yew)는 뭐냐. 그는 첫 번째 Prime Minister, 즉 총리였다. 영국이나 일본, 혹은 여러 유럽의 국가들처럼 싱가포르 역시 의원내각제를 정치 시스템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은 큰 실권이 없고, 모든 국정은 총리가 주재하는 걸로. 아마 도비곳을 가보면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도비곳 플라자 싱가푸라Plaza Singapura 쇼핑몰 옆에 엄청 큰 광장과 정문이 있고, 그 앞을 무장한 병력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싱가포르의 대통령이 거주하는 Istana 궁전이다. 이스타나 라는 단어 자체가 말레이 어로 궁전이라는 뜻.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일 년에 한번?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총리의 집무실 역시 이 이스타나 궁전 내에 있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는 국가들의 경우 혈통을 매개로 해서 군주권이 계승되는 것에 반해, 싱가폴의 경우 대통령도 국민에 의한 선거로 선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의회가 지정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1993년 이후부터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선출직이 되었다고 한다. 임기는 6년. 연임가능. 현재의 대통령은 토니 탄 컹 얌 이라는 분이다. 현 총리는 리셴룽이라고, 리콴유의 아들내미이다.

아마 싱가포르를 한 번 이라도 여행해 봤다면 이 싱가포르의 첫 번째 대통령, 위소프 빈 이샥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바로 모든 종류의 싱가포르 달러 지폐에 공통적으로 새겨져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첫번째 대통령이다. 사실 정치 시스템상으로 봤을 때, 그는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서 실세 리콴유 총리의 꼭두각시 정도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오해. 위소프 빈 이샥이라는 인물은 딱히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 싱가포르 독립의 상징, 싱가포르 인종화합의 상징과도 같다. 리콴유가 괜히 ‘모셔와서’ 대통령으로 앉힌 것이 아니란 말씀. 그리고 이는 그가 영국에 의한 식민통치, 말레이시아 독립을 위한 투쟁, 말레이 연방의 결성이라는 아수라장을 거치면서 말레이 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할 만한 삶의 궤적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Utusan Melayu(현재 Utusan Malaysia의 전신. 현재까지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신문)라는 신문을 제작 배포하면서 말레이시아 독립투쟁, 민중 계몽, 말레이 연방 성립 등에 펜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특유의 민주적 사고방식 때문에, 당시 술탄에 의한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던 말레이 연방 내부의 정치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신문에 대한 지분을 모두 내놓고 축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야인으로 돌아간 그를 모셔온 이가 바로 리콴유 였다. 이때가 1959년. 비록 말레이 연방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영국 식민정부처럼 잘 꾸려 가보려고 하던 싱가포르였지만,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인이 뒤섞여 있던 상황에서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인종간 갈등이 폭발할 지경에 이른 위기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가뜩이나 중국계 인구가 다수인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마저 중국계가 될 경우 그 뒷감당은 누가 할까. 특히 1964년 싱가포르의 독립 바로 전 해에는 인종간 갈등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날 뻔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슬림으로서 로컬 말레이 인종인 위소프 빈 이샥의 존재는 그가 거쳐 온 정치 행보와 더불어 ‘싱가포르가 추구하는 체제는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롭게 사는 데에 있는 것’ 이라는 국가비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복잡한 정치 공학적인 전략 혹은 계산이 깔려있는 인선이었지만, 그는 1965년 싱가포르의 독립 이후 그 역할을 잘 수행하여 세 번 연임에 성공, 1970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싱가포르의 말레이 로컬 인종 대통령이었다. 그의 상징성은 무형의 유산으로서 지금까지도 싱가포르라는 도시의 사상적 기반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인종 간 갈등, 긴장관계의 재발이다. 혐오발언 및 관련 행위는 절대 금지. 추방을 각오해야 한다. 이게 바로 싱가포르의 모든 지폐에 리콴유가 아닌 위소프 빈 이샥 이라는 인물이 새겨져 있는 이유.


모든 지폐의 앞면이 그의 얼굴로 도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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