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을 양상하는 사회

in #sigol-g6 years ago (edited)

이야- 오늘 김이사님 패션이 아주 이 공간을 밝혀주시는 것 같이 아름다우시네요!
아 그런가요? ^^ 오늘 특별하게 이 자리를 위해서 신경을 좀 썼어요.
그러셨구나. 역시...!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이사님이 오시니까 해가 쨍쨍한데요?
제가 원래 행운을 몰고 다닌답니다! 호호!

내가 어정쩡하게 몸을 담고 있는 곳에서의 대화 내용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못하는 병이 있다.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 이사님들의 모습을 보면 머리 뒤쪽이 쭈뼛쭈뼛 선다. 소름이 돋기도 한다.
어떻게 저렇게 대화를 핑퐁게임하듯이 바로바로 받아칠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하다.
그 전날부터 미리 대사를 준비한 게 분명하다.

아닌 말이 아니라 위의 4문장은 0.1초 단위로 이어질 정도로 빨랐다.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자.

이야- 오늘 지혜씨 패션이 아주 이 공간을 밝혀주시는 것 같이 아름다우시네요!
.... 그런가요? 칭찬 고맙습니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지혜씨 오시니까 해가 쨍쨍한데요?
....아..... 그러게요! 해가 났네요!

흠 그래 나라면 이렇게 대화를 했겠지. 그 사람이 들이민 크-은 선물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사회에서는 '멋대가리 없다'고들 할 수 도 있는 나의 태도. 그런데 나도 진심으로 느껴지면 "00씨가 오니까 해가 비추는 것 같네~"하는 말도 한다. 진.심.으.로.느.껴.지.면.

내가 남자였으면 '멋대가리없다'보다는 '과묵하다'정도로 평가되었을지도.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이 나오냐는 것이다.
마치 입에 넣자마자 맛이 끝내준다고 하는 것처럼 어떻게 그렇게 말이 바로바로 나올 수가 있지?
어디서 훈련을 하는 건가...? 문장의 첫 단어, 어조, 표정을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조합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예측을 해버리도록 다년간 훈련을 해온 것 같다. 실미도 같은데서.
그 작업의 오류로는 잘못 예측하는 것이 있다. 내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의미를 간파하고 내 말을 끊고 대답을 해버리고 있는 경우다. 그 쪽도 병인가?

왜 그렇게 하고 있을까?
좀 천천히 하면 안될까? 질문을 받았으면 마음에 질문을 던지고 시간을 좀 가지면서 대답이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면 안될까? 대답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안되는 걸까?
마치 레드불 3캔 정도 마신 것 같은 텐션으로 핑퐁게임하듯이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뒷골 땡기는, 지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예측을 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 해야하기 때문에 어깨도 언제나 긴장하고 있을테지. '저 사람, 무슨 얘길 하는지 저 사람보다 내가 먼저 알아야해!!!!!!'
나는 상대를 감히, 함부로 예측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고나서 진심과 진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혹여 대답을 늦게 하거나 어물쩡 거리면 다음 주제로 가차없이 넘어간다.
아주 칼 같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핑퐁게임을 열정적으로 해 나간다. 나는 그 게임 현황을 멀뚱히 보면서 사람들을 살펴본다. 저게 정말 인간다운 모습인가 살피는 중이다.

편안한 상태로, 진심을 담아서 하는 대화라면
그래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진심을 담아내는 말은 그렇게 바로바로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라는 애는 아주 소중한 애라서, 마음에서 조심조심 꺼내서, 말이라는 섬세하고 위험한 도구로 잘 감싸서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왜곡이 그나마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튼 나는 그들의 핑퐁게임을 보면서 한판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뭘 그렇게... 열심히들 하는 걸까.

언젠가 한번은 나도 핑퐁게임을 적극적으로 배워야지 생각을 했다. 룰도 익히고 스킬도 배우고. 그러지 않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연극판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첫번째 탈퇴는 퇴사였다.

퇴사 이후에 내 삶은 풍족해졌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고 내 몸과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것도 어색하지만 해 나갔다. 그런데 몸이 도시에 있으니 삶도 어정쩡했다.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데 계속 보게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래서 나는 아예 내 몸을 도시에서 들어 옮기기로 결심했다. 서울쥐가 시골쥐가 되는 여정을 공유하려고 한다.

선 스팀잇, 후 브런치 업로드 예정입니다.
과연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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